[전영희기자의 호기심천국] 프로야구 클러치히터는 과연 존재하는가

입력 2010-05-08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클러치타자 존재 여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특히 야구통계가 발달하면서 클러치타자는 1982년 세계선수권 한대화의 3점홈런처럼 ‘결정적인 한방’의 인상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야구관계자들은 “해결사는 분명히 있다”고 입을 모은다. 7회 이후 2점차 이하의 득점권타율과 같은 일부 통계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스포츠동아DB

클러치타자 존재 여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특히 야구통계가 발달하면서 클러치타자는 1982년 세계선수권 한대화의 3점홈런처럼 ‘결정적인 한방’의 인상일 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야구관계자들은 “해결사는 분명히 있다”고 입을 모은다. 7회 이후 2점차 이하의 득점권타율과 같은 일부 통계도 이를 입증하고 있다.스포츠동아DB

한대화·호세 찬스때 꼭 한방…해결사는 있다!

클러치히터의 존재 여부는 오랜 논쟁거리였다. “흔히 해결사로 불리는 타자들을 통계적으로 분석해보면, 클러치상황과 평상시 타율의 차이가 미미하다”는 것이 세이버매트리션(야구를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사람들)의 주장. 이런 논리는 “원래 잘 치는 타자들이 결정적인 기회에서도 강할 뿐이다. 클러치히터란 기억의 각인효과일 뿐”이라는 결론으로 수렴된다.

하지만 최고의 클러치히터로 꼽히던 한대화(한화) 감독은 “한 두 장면으로 해결사란 별명이 붙었겠느냐”며 반론을 제기한다. 1982세계선수권 결승전의 3점 홈런 이외에도 한 감독은 1986년 승리타점왕(16점)에 오르는 등 결승타 제조기였다. 세이버매트리션의 대부격인 빌 제임스도 최근 “클러치히터가 존재할 수도 있다”고 한 발을 뺀 상황. 과연 야구에서 해결사란 존재할까.
○클러치히터는 기억의 각인 효과?


세이버매트리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단적인 예는 데이비드 오티스(보스턴)와 알렉스 로드리게스(뉴욕 양키스)의 비교다.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클러치히터인 오티스의 통산타율은(5월6일까지) 0.280, 통산장타율은 0.543이다.

하지만 득점권타율(0.295), 장타율(0.520), 포스트시즌 평균타율(0.283)과 장타율(0.520)은 통산기록과 큰 차이가 없다.

Late&Close상황(7회 이후 동점 또는 한 점을 이기고 있거나, 자신 또는 다음타자가 동점주자인 경우)에서는 도리어 타율(0.267)과 장타율(0.535)이 통산기록보다 낮다.

오티스가 클러치히터로 각인된 데는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푼 2004년 포스트시즌의 후광이 컸다. 당시 오티스는 포스트시즌 14경기에서 타율 0.400(55타수22안타)에 5홈런 19타점을 기록했다.



반면, “결정적일 때 못 친다”며 뉴욕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로드리게스도 통산타율(0.304)과 통산장타율(0.574)은 포스트시즌타율(0.302), 장타율(0.568)과 엇비슷하다. Late&Close상황에서도 타율(0.279)은 다소 낮지만 장타율(0.538)은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2005∼2006 포스트시즌의 기억이다. 당시 로드리게스는 1할대(29타수3안타) 타격성적표를 받아들며 이미지를 구겼다.



▼ 역대 해결사 누구?

한대화 감독, 현역시절 결승타제조기
86년 승리타점왕 등 기회에 특히 강해
호세·박재홍 7회 후 득점권타율 높아
이 종욱·김성갑 관중많을수록 더 잘쳐



○클러치타자는 있다. 7회 이후 박빙에서 강해지는 호세와 박재홍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우리가 몇 경기만 보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꼭 필요한 상황에서 안타를 치는 타자는 분명히 있다”고 못박았다.

넥센 이광근 수석코치는 “박재홍(SK)과 이승엽(요미우리)”등을 꼽았고, 넥센 이숭용은 “심정수가 역대 최고 해결사”라고 했다. 박재홍은 “홍성흔”이라고 답했다.

‘해결사를 득점권타율로 수렴할 수 없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 했다. 한대화 감독은 “10점 뒤지고 있는데 1타점은 중요도가 떨어지지 않느냐”면서 “해결사는 단순 통계로 찾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미국에서도 득점권타율의 맹점을 보완하기 위해 Late&Close라는 클러치상황 개념을 도입했다.

통계로 본 한국프로야구의 21세기 최고 해결사는 단연 ‘검은 갈매기’ 호세(전 롯데)다.

야구통계전문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호세는 2001년 이후 1000타석 이상을 뛴 타자들 가운데 득점권타율(0.345)과 7회 이후 득점권타율(0.373), 7회 이후 2점차 이하일 때 득점권타율(0.500)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호세의 통산타율은 0.309. 기회가 왔을 때 훨씬 강했다. 하지만 호세가 한국에서 4시즌만 뛰어 표본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점은 감안할 부분.

클러치 상황에서의 분전은 박재홍이 더 두드러진다. 6일까지 박재홍의 통산타율은 0.289, 통산 득점권타율도 0.285로 비슷한 수준이다. 하지만 7회 이후 득점권 타율은 0.356(261타수 93안타), 7회 이후 2점차 이하일 때 득점권타율은 무려 0.380(129타수49안타)으로 업그레이드 된다. 통산타율과는 무려 1할 가까운 상승폭.

10년 간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한 박재홍은 7회 이후 2점차 이하일 때 득점권 안타(49개) 수에서도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박재홍은 팀이 필요로 할 때마다 쳤던 선수”라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기억의 조작은 아닌 셈이다.


○숨은 클러치히터 김성갑·이종욱…“우린 만원관중 체질”

포스트시즌 기록을 살펴보면, 숨은 클러치히터도 눈에 띈다. 현역시절 주로 수비위주의 선수였던 넥센 김성갑 코치는 역대 포스트시즌 7회 이후 2점차 이하일 때 득점권 타율이 0.471(17타수8안타)에 이른다. 빙그레 시절 자주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기 때문에 표본도 충분한 편이다.

김 코치는 “나는 큰 경기 또는 관중이 많은 경기를 즐기는 편이었다”면서 “수비에서도 나에게만 공이 오면 다이빙캐치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빙그레와 해태와의 경기는 언제나 인산인해. 만원관중 앞에서의 출전경험은 포스트시즌에서 숨은 해결사 역할을 하는데도 큰 도움을 줬다.

메이저리그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은 “미국에서는 관중수가 많은 경기에서의 성적도 클러치 히터의 조건 중 하나로 꼽는다”고 했다. 대표적인 선수는 1977월드시리즈 6차전에서 3홈런을 친 레지 잭슨(전 양키스).

한국프로야구에서는 이종욱이 관중이 많을수록 강해지는 대표적인 선수다. 이종욱은 2만명 이상이 모인 경기에서 득점권 타율이 0.459(61타수28안타)로 통산타율(0.296)보다 무려 0.150이상 높았다. 잠실을 홈구장으로 쓰는 인기구단 선수인 까닭에 표본도 충분하다.

이종욱은 “나도 처음 1군에 올라왔을 때는 몸이 굳고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면서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관중이 많으면 약간 흥분감이 생겨 도리어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다”고 밝혔다.


▼ 클러치히터 조건

적당한 흥분상태 타석 집중력에 도움
부담 즐기고 배트는 가볍게 휘둘러야
상대투수 구질파악 우선 노림수 필수
박빙의 진검승부…경험도 무시 못해



○클러치히터의 조건, 평정심과 노림수

4월28일 사직에서 열린 넥센-롯데전. 5-5동점이던 9회말 끝내기 안타를 친 롯데 강민호는 “나에게 기회가 오면, ‘OK.됐구나.’ 싶다”고 했다.

해결사들은 부담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스포츠심리학전문가인 체육과학연구원(KISS) 김용승 박사는 “불안수준이 높아지면 심박수가 올라가는데, 이 때 적정수준의 상승은 신체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소위 사이키업(psyche-up) 상태다. “약간의 흥분이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높인다”는 이종욱의 증언과도 일치한다. 소위 클러치상황에서 “안 떨린다”고 말한 선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긴장감을 어떻게 다스리느냐.

‘2009플레이오프의 영웅’ 박정권(SK)은 “기회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타석에 선다”고 했다. 한대화 감독 역시 “해결사는 자기가 해결할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역설적인 설명을 곁들였다. 최대한 가볍게 배트를 돌리기 위해서다.

클러치상황은 상대 투수도 전력투구를 하는 진검승부. ‘노림수’ 역시 해결사의 조건이다. 박재홍은 “요즘 후배들은 다른 선수의 타석을 주의 깊게 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덕아웃에서 이미 수많은 상황을 가정해본 뒤 타석에 들어선다”고 했다. 상대 투수의 구질과 성향, 현재의 컨디션을 점검해 나와의 승부를 최대한 예측하는 것이다.

스포츠심리학에서 말하는 일종의 심상훈련이다. 이런 점에서 해결사에게는 ‘경험’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요소다. 박경완 역시 “진검승부에서는 투수의 습성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