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호기자의 야생일기] 20승+30홈런…상상만해도 즐거운 투타겸업 선수

입력 2010-05-2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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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런왕 베이브 루스는 사실 특급좌완투수로 먼저 주목을 받았다. 1916년 풀타임 2년차 루스는 23승에 방어율 1.75를 기록할 정도로 뛰어난 투수였다.

명예의 전당에 오른 야구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만약 당시 아메리칸리그에 지명타자 제도가 있어 투·타 겸업이 가능했다면 루스가 300승과 800홈런을 동시에 달성했을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코페트의 즐거운 상상은 현실이 될 수 없을까? 한국프로야구에는 지명타자 제도가 있다. 그리고 현대 야구는 투수 분업이 철저하다. 만약 류현진이(듬직한 체구와 동글동글한 얼굴이 루스와 닮았다) 타자 겸업을 선언, 매년 중심타자로 30홈런을 날리면서 선발투수로 15∼20승을 거둔다면 어떨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뛴다.

대부분 전문가는 투·타 겸업의 가능성을 낮게 본다. 먼저 투·타 겸업을 하려면 양쪽 모두에서 주전급 활약을 해야 하는데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프로에서 그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리고 투수와 야수가 쓰는 근육이 다르기 때문에 부상위험이 매우 높은 점도 발목을 잡는다. 그러나 김성한 전 KIA 감독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10승 5패 방어율 2.89에 타율 0.305, 13홈런(4위), 69타점(1위)을 동시에 달성하며 투·타 겸업에서 성공하기도 했었다.

최근 퓨처스리그(2군)에서 전혀 의도치 않은 투타겸업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그 주인공은 롯데 2년차 좌완투수 하준호(21). 지난해 야구명문 경남고를 졸업하고 2차 1번(전체 2순위)으로 롯데에 입단한 유망주다.

고교시절 하준호는 173cm로 키가 비교적 작은 편이지만 140km 후반 대 빠른 직구를 갖고 있다. 그리고 하준호는 올해 퓨처스리그에서 또 다른 재능을 꽃피우고 있다. 롯데 2군은 야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출전 선수가 부족해지자 하준호를 종종 외야수로 출장시키고 있다. 타격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어 포지션 변경까지 가능성을 열어둔 실험이다.

일단 ‘본업’ 투수로 하준호의 퓨처스리그 성적은 9경기에서 12.1이닝을 소화했고 8안타 9탈삼진 방어율 1.46으로 빼어나다. 타자로는 4경기에 출장해 8타수 3안타 1타점 1득점으로 타율 0.375를 기록했다.



출장 경기가 많지 않고 퓨처스리그 성적임을 감안해도 투·타 양쪽 모두 수준급이다. 하준호는 외야 수비도 좋다고 한다. 발이 빨라 주루에도 능하다. 롯데는 하준호를 투·타 겸업으로 키울 계획이 없다. 하지만 외야를 지키다 결정적 순간 마운드에 올라 경기를 끝내는 짜릿한 장면은 만화에서만 가능할까? 즐거운 상상이다.

이경호 기자 rush@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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