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팀 허정무(왼쪽)감독과 박태하 코치가 26일 알타흐에서 열린 북한과 그리스의 평가전을 지켜보기 위해 캐시 포인트 아레나에 들어서고 있다.
아르헨도 전력분석원 파견 수첩에 꼼꼼히 메모
박태하 코치 외신들 주목 받자 “나 기자야 기자”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란 말이 새삼 실감났다.
북한-그리스 평가전이 열린 26일(한국시간) 오스트리아 알타흐 캐시 포인트 아레나의 또 다른 볼거리는 정보전이었다.
독일의 매치 에이전시를 통해 취재신청을 한 미디어는 100여 명.
하지만 경기 당일 20여 명이 추가로 취재 허가를 받았다. 취재진을 위해 마련된 부스는 인산인해를 이뤘고, 본부석 스탠드 맨 위에 마련된 좌석에도 빈자리가 거의 없었다. 물론 AD카드 발급을 요청한 이는 기자들 외에도 웨스트햄, 에버턴 등 유럽 클럽의 스카우트들이 있었지만 대개 상대국 전력을 분석하기 위한 각국 대표팀 코칭스태프와 따로 파견된 관계자들이었다.
허정무 감독과 박태하 코치 또한 스카우트로 분류돼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킥오프 2시간 전.
마라도나인줄 알았네…아르헨티나의 트레이너가 26일(한국시간)열린 북한-그리스전을 지켜보며 그리스 전력에 대해 메모하고 있다.
일찌감치 자리를 차지한 아르헨티나 국적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르헨티나 대표팀 사령탑 마라도나를 연상케 하는 외모와 옷차림, 함께 동행한 통역원, 수첩 따위를 꺼내 뭔가를 꼼꼼히 적어 내려가는 한 남자의 모습은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는 북한 선수들의 얼굴이 담긴 A4 용지 크기의 리포트 자료를 소지하는 등 정황이 불리했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길 꺼려했다.
한국 기자들이 다가선 뒤에야 아르헨티나 현지 클럽 뉴웰 올드 보이즈에서 선수로 뛰었고, 로사리오가 고향인 트레이너라고 간략히 소개했다.
물론 자신이 잘 구분하지 못한 부분들에 대해 역으로 이것저것 되물으며 본연의 임무에도 충실했다. 스탠드 곳곳에서 이뤄지는 이 같은 모습에 그리스 스태프와 취재진은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허 감독이 찾아온 것도 잘 알고 있었고, 간혹 질문공세도 폈다.
허 감독은 한국 교민을 통해 “오늘 그리스가 어떠냐”는 그리스 기자의 질문을 받곤 “잘하고 있다고 전해 달라. 몸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같다”는 정도의 짤막한 답변을 했다. 그나마 박 코치는 계속 눈치를 주는 외신들에 “난 한국 스태프가 아닌 기자”라고 속이고 있었다.
그리스 미디어 담당관은 “한국 외에도 모든 국가에서 왔을 것”이라며 “우리도 코치가 2차례 한국의 평가전(벨라루스, 스페인)을 찾아 관전할 예정”이라고 팁을 던져줬다.
그리스 선수단은 유럽 예선 때와 비슷한 등번호를 달았다.
정대세가 23번, 안영학이 22번이 선명한 유니폼을 입은 북한과는 달랐다.
“모두가 똑같은 입장”이라며 초연한 반응을 보인 그리스. 과도할 정도의 이 친절함이 과연 자신감의 표현인지, 아니면 숨겨진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전력 분석에 불편함은 없었다.
허정무호로서도 나쁠 것 없었던 시간이었다.
알타흐(오스트리아)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