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체전 개편안은 전통 민속종목 고사(枯死)안인가.’ 대한체육회의 전국체전 구조조정안이 경기단체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2009년 12월, ‘전국체전 개편안’을 발표하고, 수개월째 이를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전국체전 정식종목과 참가인원의 축소. 전국체전 비대화와 과열경쟁, 경기력 저하 등을 개선하자는 의도다. ‘전국체전 슬림화’를 수차례 강조한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의 의지가 적극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두산그룹 총수 출신인 박 회장은 ‘효율성’의 논리를 강조한다. 전국체전 역시 기업과 마찬가지로 국제경쟁력이 필요한 종목(올림픽·아시안게임 정식종목) 위주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씨름과 검도, 궁도 등 전통 민속종목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가뜩이나 투자가 적은 이들 종목이 전국체전에서까지 빠진다면, 시군청 팀들이 대거 사라질 위기에 놓이기 때문이다. 대한검도회는 “대한체육회가 올림픽·아시안게임 종목만 육성한다는 것은 체육전반의 진흥에 힘써야 하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박태호 체육진흥본부장은 “전통 민속종목 중 순환식으로 매년 2개는 전국체전 경쟁부분에, 1개는 비경쟁부문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해당경기단체에서는 이조차 “학년별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전통 민속종목을 동호인종목(비경쟁)으로 전락시키기 위한 술수”라며 반대하고 있다.
‘보호’보다 ‘배제’의 논리를 택한 대한체육회의 처사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타 경기단체에게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올림픽정식종목인 모 경기단체의 임원은 “이런 식이라면, 위에서 지침 내려왔으니 죽이자는 식 밖에 더 되느냐”며 동정표를 던졌다. 전국체전 전반을 심의하는 전국체전위원회 내부에서도 종목축소는 안 된다는 의견이 주류인 것으로 알려졌다. 체전위원회에는 각 경기단체 임원이 다수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대한체육회 최종준 사무총장은 “기반을 없애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화를 시도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일단 10월 경남에서 열리는 제91회 전국체전에서는 종목축소가 반려됐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올림픽 정식종목과 타 종목 간의 차등배점제가 도입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종목축소의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우려의 시선도 나오고 있다. 대한씨름협회 관계자는 “대한체육회가 전국체전을 올림픽 예선으로 잘못 생각하는 것 같다. 계속 밀어붙이기 식이라면 단체행동도 불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