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바닷길 요트 질주] 날뛰던 바다…설치던 모기…시련마저 달콤했다

입력 2010-06-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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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적 항해거리 2,816km
집단가출호는 1년간 항해끝에 한반도 바닷길 요트 일주에 성공했다. 화석연료가 아닌 자연의 힘만으로 달린 3000여km의 여정 곳곳에서 목숨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고비를 넘기도 했고 도전 뒤에 찾아오는 성취감에 환호하기도 했다. 허영만 선장(왼쪽에서 세번째)과 선원들이 항해의 최종 목표지점이었던 독도에 도착한 후 스포츠동아 깃발을 들고 자축하고 있다.

19. 되돌아본 한반도 일주, 좌충우돌 에피소드 5선 <끝>

만화 ‘식객’의 작가 허영만 선장이 이끄는 요트 ‘집단가출호’가 5월 2일 최종 목적지인 독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5월 25일 기사). 2009년 6월 5일 경기도 전곡항을 출발한 지 장장 10개월이 걸린 대장정이었습니다. 허선장과 대원들이 총 18회에 걸쳐 스포츠동아에 보내 온 항해 과정과 에피소드는 독자들의 큰 호응과 사랑을 받으며 절찬리에 연재됐습니다.

한반도 요트 일주라는 대업을 완수한 허선장과 대원들이 그 동안 지면에서 미처 소개하지 못한 다섯 개의 뒷얘기, 잊지 못할 사건을 모아 보내왔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 바닷길 요트일주’를 애독해준 독자에 대한 마지막 선물입니다. <편집자>

1. 지독한 바다 모기와의 사투



가리고 싸매도 모기떼 공습에 속수무책

전국일주 항해 초기, 집단가출호 대원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것은 강풍도 파도도 아닌 모기였다. 모기의 습격은 6월에 들른 서해의 무인도인 선갑도에서 시작돼 9월 흑산도까지 계속됐다. ‘깔따구’로 불리는 바다 모기는 육지의 모기와는 여러 면에서 수준이 다르다. 우선 스텔스 기능을 갖추고 있다. ‘앵∼’하는 모기 특유의 비행음을 전혀 내지 않아 언제 어디서 날아오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텐트 없이 침낭과 매트리스만 사용해 야영하는 이른바 비박(biwak)을 원칙으로 삼은 탓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침낭을 아무리 꽁꽁 여며 뒤집어써도 숨은 쉬어야하므로 작은 틈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특히 얼굴을 집중적으로 물어뜯었으며 얼굴을 가리는 손도 무사하지 못했다.

육지 모기의 경우 물린 뒤 한두 시간이면 가려움증이 사라지는 것에 반해 바다 모기는 긁으면 잠깐 시원한 듯하다 불과 5분 후면 또 가려운 증상이 장장 1주일간 지속된다.

집단가출호 대원들에게 ‘무인도에 간다면 가져가야할 것은?’이라는 질문을 한다면 첫째 모기장, 둘째 모기약, 셋째 모기향이다.

2. 축산항 피항 사건

풍랑 엎친데 로프 절단 덮쳐…긴급 피항

3월, 영덕 강구항을 떠나 강릉을 향하던 집단가출호는 뜻밖의 강력한 풍랑을 만나 전국일주 항해 중 최대의 고초를 겪었다. 새벽 5시 출발할 때만해도 일기예보는 비교적 강한 바람이 불 뿐 풍랑주의보가 내려질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강구항을 떠난 지 불과 한시간만에 최고 30노트의 역풍을 만난 것이다.

바람은 정면에서 불어와 거의 제자리걸음인 가운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축범 아웃홀(강풍이 불 때 돛의 면적을 줄일 수 있도록 설치된 로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고 이어 폭우가 쏟아졌다. 주 돛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헤드세일 하나만으로 2.5m의 파도를 뚫으며 가까스로 영덕 축산항으로 피항할 수 있었다. 이 날 피항으로 계획된 거리를 소화하지 못한 탓에 집단가출호는 이후 속초까지 올라가는 동해 북상 항로에서 몹시 서둘러야했다.

3. 신안 우이도 좌초 사건

어…어…악!…낮은 수심에 끝내 좌초

낯선 항구에 들어갈 때 가장 신경 쓰이는 부분이 수심이다. 요트가 바람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것은 배의 아랫부분에 설치된 킬(keel) 덕분인데 바로 이 킬 때문에 수심이 낮은 곳에서 배가 얹히는 경우가 심심찮게 생기곤 한다.

킬의 길이를 고려할 때 수심이 3.5m 이상이어야 안심할 수 있는 집단가출호는 지난해 9월 신안군 우이도에서 대형 좌초사고를 당했다.



해도에 나타난 수심과 현지 어민들의 말을 믿고 선착장 가까이 접근했다가 덜컥 얹혀버린 것이다. 마침 썰물 시간이어서 바닷물이 점점 빠져 배의 오른쪽 측면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누웠다. 다행히 바닥이 부드러운 모래였고 물결이 잔잔해 다시 밀물이 들어오면서 배는 무사히 위기를 벗어났다. 뒤늦게 알고 보니 우이도 앞 바다는 방파제가 설치된 후 물의 흐름에 변화가 생겨 매우 빠른 속도로 모래가 퇴적되며 수심이 낮아진 것이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우리는 수심이 미심쩍을 때는 로프에 추를 매달아 깊이를 재는 원시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4. 식객의 굴욕, 놀래미 쓸개탕

허선장이 끓여낸 매운탕…“맛이 왜 이래”

집단가출 대원들 중 제일 먼저 낚시에 성공한 사람은 허영만 선장이었다. 굴업도 부근에서 드리운 낚시에 씨알 굵은 놀래미를 3마리나 연거푸 잡아 올린 것이다. 마수걸이에 큰 성과를 내 의기양양해진 허선장은 직접 매운탕을 끓여주겠다고 팔을 걷어붙였다. 생선을 손질하고 고춧가루를 풀고 파 마늘을 넣고 보글보글….

간은 허선장이 항상 갖고 다니는 신안 천일염으로 맞췄다. 나머지 대원들은 밥을 지어 놓고 숟가락을 빨며 매운탕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렸다. 끼니 때가 훨씬 지나 배도 어지간히 고팠거니와 다른 사람도 아닌 당대 최고의 ‘식객’, 허영만 화백이 직접 요리하는 매운탕이니 기대가 클 수밖에. 마침내 찌개가 완성되고 첫술을 뜬 대원들의 표정이 차례로 일그러졌다. 기대했던 생선 매운탕의 진하고 얼큰한 맛은 커녕 마치 사약처럼 쓰디썼기 때문이다. 원인은 생선을 손질할 때 떼어버렸어야 할 쓸개를 함께 넣고 끓였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놀래미 쓸개탕은 대원들 사이에 두고두고 회자되며 ‘식객’ 허영만 선장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5. 여수 소리도에서 만난 폭풍

새벽 폭풍에 빠져버린 닻…충돌 위기일발

겨울로 접어든 12월, 여수시 남면 소리도 서항에 닻을 내린 우리는 다음 날 풍랑주의보가 내려질 것이라는 사실을 일기예보와 해양경찰의 경고를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묘박 위치가 튼튼한 방파제의 보호를 받는 항구의 안쪽이었으므로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닻에 연결해 설치하는 쇠사슬을 물결이 잔잔할 때 쓰는 가볍고 얇은 것으로 택한 것이 결국 화근이었다.

새벽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의 강도는 예상치를 웃돌았고 결국 해저를 물고 있던 닻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방파제가 큰 파도는 막아줬지만 문제는 서있기 조차 어려운 강풍이었다. 서쪽으로 열린 항구는 북서풍에 취약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배에서 자고 있던 대원들이 안간힘을 썼지만 닻이 뽑힌 배는 안쪽으로 계속 밀려 해안 암벽과 충돌 직전의 상황까지 몰렸다. 최후의 순간에 고무보트를 이용, 고정된 바지선과 배를 연결하는데 성공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 와중에 한 대원의 이가 부러지는 아픔이 있었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cafe.naver.com/grouprunway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 지금까지 <‘식객’ 허영만과 함께 떠나는 한반도 바닷길 요트일주>를 애독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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