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로 꿈꾼 대화합… 만델라 ‘완결편’ 보다

입력 2010-06-12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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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전 흑백화해 연설했던 요하네스버그 구장서 개막식
수감중 재소자축구서 희망 봐
출옥뒤엔 월드컵 유치 노력
증손녀 숨져 개막식엔 불참
백인 정권의 흑인 탄압에 저항하다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27년간 복역한 수인번호 46664번 넬슨 만델라(92)는 감옥에서 풀려난 이틀 뒤인 1990년 2월 13일 대중 연설에 나섰다. 연설 장소는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경기장. 만델라가 복역 전 저항운동을 펼친 흑인 빈민가 소웨토 근처였다. 그를 보려고 모인 8만5000여 주민 앞에서 만델라는 평화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했다. 4년 2개월 뒤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342년간 이어진 인종 갈등이 치유되기 시작한 역사적 사건의 출발점이었다.

그로부터 20년 뒤인 11일 사커시티는 다시 열정과 희망에 휩싸였다. 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축구 월드컵이 이날 개막행사와 개막전을 시작으로 31일간의 대장정에 들어갔다. 만델라가 상생, 공존, 화합의 가치를 전파하기 시작한 상징적인 장소에서 아프리카의 새로운 역사가 또 한 번 펼쳐졌다. 화려한 색깔로 치장한 아프리카 전통 댄서들이 경기장을 메웠고 남아공 축구대표팀을 상징하는 노란 유니폼 차림의 사람들이 관중석을 메웠다.

개막식에 올 예정이던 만델라는 13세 증손녀의 갑작스러운 교통사고 사망 소식에 불참했지만 행사 중간 대형 스크린을 통해 “모든 역경을 극복해 나가자”는 요지의 영상 메시지를 전했다.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기 전만 해도 남아공은 인종 차별 국가라는 이유로 국제 스포츠대회 출전조차 금지돼 있었다.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월드컵 개최의 꿈이 현실이 된 배경에는 만델라가 있었다. 남아공 월드컵은 단순한 스포츠 행사가 아니라 여전히 흑백 인종과 빈부격차로 분열된 남아공 사회를 재건하기 위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만델라는 27년의 수감기간에 18년을 보낸 로벤 섬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스포츠가 지닌 화합의 힘을 보았다. 1960년대 초부터 이곳 젊은 정치범들은 축구를 했고 1966년에는 아예 교도소에 마카나축구협회를 만들어 ‘그들만의 리그’를 벌였다. 정작 만델라는 이 리그 참여가 금지됐지만 전체 죄수 가운데 절반 이상이 참가했고 공을 차는 동안만은 정치적 노선 차이, 죄수와 간수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는 장면을 지켜봤다.

대통령이 되자 그는 스포츠를 적극 활용했다. 이를 통해 피부색으로 차별받지 않는 ‘무지개 나라’를 만들려고 했다. 1995년 남아공에서 열린 럭비 월드컵은 그 첫 사례다. 만델라는 인종차별 종목으로 비판받던 백인 스포츠 럭비를 지원했고 최약체로 평가되던 럭비 대표팀은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기적처럼 우승해 흑백 화해의 계기가 됐다.

축구는 아프리카의 최고 인기 스포츠였기 때문에 만델라는 1994년부터 월드컵 유치 노력을 기울였다. 이를 위해 스위스의 국제축구연맹(FIFA) 본부도 두 번이나 방문했다. 당시의 유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그 열정은 후임 대통령인 타보 음베키와 제이컵 주마 현 대통령에게 이어져 16년 만에 현실이 됐다.

이날 개막행사에는 만델라를 줄곧 지지한 데즈먼드 투투 대주교를 비롯해 개막전에서 겨룰 양국의 대통령인 주마 대통령과 펠리페 칼데론 멕시코 대통령,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 등이 참석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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