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있죠.
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실력이 곧 국력입니다.
한국-그리스의 조별리그 1차전 경기 전날. 포트 엘리자베스에 있는 취재진 숙소 근처 바를 찾아 맥주를 한 잔 했습니다. 그날이 남아공-멕시코의 개막전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습니다.
강호 멕시코를 상대로 자국이 선전을 펼쳐서인지 남아공 국민들은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습니다. “바파나 바파나”를 외치며 악수를 청하고 “내일 경기 반드시 이겨라”며 덕담을 건넸습니다.
그리스 팬들도 상당했습니다. 포트 엘리자베스 지역에만 그리스 이민자가 150여 가구랍니다. 물론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온 원정 응원단도 적지 않았고요. 그들은 그리스대표팀의 상징인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맥주잔을 한 손에 든 채 경기 전날의 기대감에 잔뜩 취해 있었습니다.
한국 기자들을 보면 여지없이 다가와 “내일 경기 잘 해보자”며 맥주를 한 잔 권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의 패배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 듯 했습니다.
한국 기자들은 승리 가능성을 반반으로 점치고 있었지만 그리스 사람들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스코어 뿐 아니라 경기 내용에서도 한국이 그리스를 완전히 압도했죠.
경기 다음날. 대표팀 베이스 캠프지인 루스텐버그로 다시 가기 위해 포트 엘리자베스 공항을 찾았습니다. 그리스 팬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틀 전의 그 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슬금슬금 눈치만 보네요.
다음 상대가 아르헨티나와 나이지리아여서 사실상 16강 진출은 포기한 듯한 인상입니다. 경기장에서 본 몇몇 그리스 기자들도 만났습니다. 어깨를 으쓱하며 “승리를 축하 한다”고 악수를 청하는 표정에서 씁쓸함이 엿보입니다. 맞습니다. 월드컵에서는 대표팀 실력이 곧 국력입니다.
루스텐버그(남아공) | 윤태석 기자 spro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