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보 ‘카리스마 리더십’ VS 박지성 ‘열린 리더십’

입력 2010-06-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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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히딩크 사단-2010 허정무호 분석
대표팀 선수단도 사람 사는 곳이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해보여도 일반인들이 몸담고 있는 조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용한 선수도 있고 활발한 사람도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선배도 있고 따뜻한 맏형 같은 스타일의 고참도 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그리스를 격파하며 기분 좋은 승전보를 전해 준 허정무호는 과연 어떤 스타일의 어떤 성격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돼 있을까. 그냥 들여다보는 것은 좀 밋밋하다. 4강 신화를 달성해 황금 멤버라 불렸던 2002년 히딩크 사단과 해외파와 국내파의 적절한 조화, 성공적인 세대교체로 역대 최강 멤버라 평가받는 2010년 허정무호를 비교해 살펴봤다.


○군기반장은?

히딩크 사단의 군기반장은 단연 정해성 코치였다.

용장형 지도자에 가까운 정 코치는 강력한 카리스마와 선수 장악력을 지녔다. 월드컵을 앞두고 유럽 전훈 당시 풀어진 선수들의 마음이 다잡으려다 자율을 중시하는 히딩크와 한 판 붙은 건 잘 알려진 일화.

물론 오해는 금방 풀렸다. 다 같이 하나 된 마음으로 4강 달성을 이끌었다. 히딩크도 나중에는 정 코치의 선수 장악력을 십분 활용했다.

허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번 선수단에서도 정 수석코치는 어느 정도 군기반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그러나 히딩크 때와 달리 감독을 보좌하는 든든한 조언자이자 대표팀을 실질적으로 통솔하는 2인자로 위치가 한 단계 더 격상됐다.

정 수석코치에 대한 허 감독의 신뢰는 크다. 보통 훈련 때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정 코치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위임한 채 지켜보기만 한다.

‘악동’ 이천수 VS ‘개그맨’ 이정수


○분위기메이커는?

2002년 분위기메이커는 이천수(29)였다.

평소에도 톡톡 튀는 발언과 외모로 많은 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라운드 안에서는 누구보다 저돌적인 플레이로 분위기를 주도했다. 특히 취재진으로부터 가장 사랑 받는 선수 중 하나였다. 진지하고 그 어떤 선수보다 달변이다. 대답도 거침도 없어서 가끔 위험 수위를 오가는 발언을 남겨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허정무호 태극전사들은 1순위로 김동진(울산)을 꼽는다.

인터뷰 때나 평소 플레이하는 모습을 보면 침착하기 그지없는데 동료들과 있을 때는 끊임없는 수다로 좌중을 웃긴다는 전언. 복병도 있다. 바로 이정수(가시마 앤틀러스)다. 어눌한 듯 하면서도 엉뚱한 발언으로 유명하다.

사실 대표팀의 분위기메이커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식사마’ 김상식(전북)이다. 특유의 경상도 사투리로 힘든 훈련에 파김치가 된 동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곤 했다. 그러나 김상식은 2006독일월드컵 멤버였기에 이번 비교에서는 논외의 대상이다.

허정무호에서 취재진에게 가장 인기 있는 선수는 차두리다. 질문의 요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다. 풍부한 독일에서의 선수 경험에 근거해 대답도 조리 있게 잘 한다. 최종 엔트리 선발을 앞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을 당시에는 유쾌한 팀 분위기에 대해 “즐겁게만 하다가는 이 즐거움이 사라질 수도 있다”고 뼈있는 한 마디를 던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캡틴 홍명보-박지성 ‘정신적 지주’



○정신적 지주


독자들이 예상하는 그대로다.

히딩크 사단에서는 홍명보(현 올림픽팀 감독)가, 허정무호에서는 박지성(맨유)이 정신적 지주다. 둘 다 주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2002년에는 동갑내기 황선홍이 홍명보에게 힘을 실어주는 존재였다.

허정무호에서는 이영표(알 힐랄)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홍명보와 박지성 모두 팀 전술에 핵심을 차지하는 뛰어난 기량은 물론 타의 모범이 되는 행동이 공통점이다.

그러나 스타일은 좀 차이가 있다.

2002년 당시 1969년생 홍 감독은 사실 어린 선수들이 말을 걸기도 어려운 상대였다.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우려가 있어 초반 히딩크의 눈 밖에 나기도 했지만 이른바 ‘오대영 사건’으로 팀이 위기에 처하자 다시 부름을 받은 케이스다. 팀 내 중고참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면 박지성은 선수들 간 수평적인 소통을 이뤄내며 ‘열린 리더십’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에는 어려워하던 후배들도 박지성에게 농담을 걸거나 장난을 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후배들에게 경외의 대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인터뷰 때마다 어린 선수들은 “지성이 형은 정말 대단하다” “존경스럽다”는 말을 아끼지 않는다.

루스텐버그(남아공)|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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