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 드리블은 파울로도 못 막는다

입력 2010-06-15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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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거인 메시…그는 누구인가
어린시절 성장호르몬 장애 희귀 질환
FC바로셀로나 전폭지원…역경 극복
펠레 “스피드, 마라도나보다 더 낫다”


축구스타는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전 세계 팬들의 가슴 속에 ‘전설’로 남기 위해서는 꼭 월드컵을 거쳐야 한다. 1958스웨덴월드컵과 1970멕시코월드컵은 ‘축구황제’ 펠레(브라질)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고, 1974서독월드컵은 ‘카이저’ 프란츠 베켄바우어(독일)를 탄생시켰다. ‘축구신동’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가 대관식을 한 대회도 바로 1986멕시코월드컵이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5·포르투갈)와 카카(28·브라질), 웨인 루니(25·잉글랜드)까지. 남아공월드컵에서도 전 세계 별들이 ‘최고’의 칭호를 얻기 위해 달린다. 하지만 하늘 아래 2개의 태양은 존재할 수 없는 법.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가장 유력한 후보로 단연 리오넬 메시(23·아르헨티나)를 꼽는다.


○마라도나의 재림? 아니 청출어람

작은 키에 왼발잡이. 좁은 공간에서도 2, 3명은 제쳐버리는 폭발적 드리블. “슛은 골대 안으로 하는 패스”라는 펠레의 얘기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골까지. 메시는 ‘마라도나의 재림’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침이 없다.

1979년 세계청소년선수권을 통해 세계무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마라도나. 메시 역시 2005년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두 선수 모두 스페인 FC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유럽무대 데뷔전을 치렀고, 생애 첫 월드컵(마라도나는 1982스페인대회, 메시는 2006독일대회)에서는 주인공이 아니었다. 생애 2번째 월드컵의 조별리그에서 한국을 상대한다는 사실도 같다. 심지어 메시는 ‘신의 손’으로 득점을 올린 적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슷한 점은 환상의 드리블 능력이다. “마라도나는 파울로도 막을 수가 없는 선수였다. 파울을 하러 가면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라는 일부 선수의 증언처럼, 메시 역시 순간동작이 민첩하다. 심지어 펠레는 “스피드 측면만 보자면 마라도나보다 메시가 더 낫다”고 평가했다. 2007년 헤타페전에서 메시가 5명을 제치고 넣은 골은 마라도나가 1986멕시코월드컵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넣은 그 유명한 골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마라도나는 최근 “메시가 멕시코월드컵 때의 나보다 낫다”고 추켜세웠지만, 메시는 “100만년이 지나도 마라도나보다 잘 할 수는 없다. 비교 자체가 마라도나에 대한 모욕”이라며 전설에 대한 예의를 지켰다. 하지만 남아공월드컵은 메시를 마라도나와 같은 대열에 올려줄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메시-호날두, 라이벌 2차대전

2008∼200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 FC바르셀로나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결은 메시와 호날두의 세계 최고 공격수 전쟁으로도 관심을 모았다. 결과는 메시가 쐐기골을 넣은 FC바르셀로나의 2-0 완승. 현재는 ‘황금발 논쟁’에서 메시가 호날두에 앞서있다.

카를로스와 히바우두 등 브라질 스타들과 티에리 앙리를 비롯한 유럽 선수들까지도 “세계 최고는 호날두가 아닌 메시”라는 발언을 쏟아낸 바 있다. 와신상담의 호날두와 파죽지세의 메시. 남아공월드컵은 2차대전이다.

두 선수는 신체조건부터 플레이 스타일, 성격까지 거의 모든 것이 대비된다. 호날두의 장점은 파괴력 있는 득점력. 장신을 이용한 헤딩과 무회전의 중거리 슛 등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반면 메시는 골키퍼의 타이밍을 뺏으며 정확히 구석으로 보내는 슛을 추구한다.

드리블에서는 호날두에게 화려한 옵션이 많다. 메시는 템포를 조절하고, 살짝 방향만 바꾸며 수비를 무력화하는 실속파. 동료들에게 공간을 만들어주고, 패스를 연결하는 팀플레이에서는 메시가 근소한 우위를 점한다.

히바우두는 “상대선수의 집중견제에 대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메시의 냉정함을 비교우위 항목으로 짚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리더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유다. 마라도나 감독은 이미 “메시를 위한 팀을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메시와의 면담내용을 아르헨티나의 월드컵전술에 반영했다.

○고난과 역경을 넘어선 천재

메시의 성공시대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어린시절 고난과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본이기 때문이다.

스물셋 생애의 전반기, 즉 나고 자란 아르헨티나에서 그의 삶은 한 마디로 고단하고 불우했다. 아버지 호르헤는 공장노동자, 어머니 셀리아는 청소부였던 아르헨티나의 전형적 블루칼라 집안에서 태어난 탓에 열 살이던 1997년 성장호르몬 장애라는 희귀한 질병을 발견하고도 치료할 형편이 못 됐다.

당시 그의 키는 고작 127cm. 5세 때부터 시작한 축구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아르헨티나의 명문 클럽도 일찌감치 군침을 흘렸지만 매년 60만페소(약 1억7000만원)에 달하는 치료비는 부담스러웠다.

묻힐 뻔한 그의 재능을 알아본 곳이 FC바르셀로나다. 흙 속 진주를 발견한 듯 FC바르셀로나는 치료비를 포함한 전폭 지원을 약속했다. 13세 때인 2000년 9월 그는 아버지와 함께 대서양을 건넜다. FC바로셀로나의 체계적 유스 시스템 하에서 차근차근 성장과정을 밟았다.

16세이던 2003년 11월 FC포르투(포르투갈)와의 친선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고, 이듬해 10월 에스파뇰을 상대로 프리메라리가에 선을 보였다. 그리고 2005년 5월 1일 알바세테전에서 호나우지뉴의 패스를 받아 마침내 프리메라리가 첫 골을 터뜨렸다. 만 17세 10개월 7일, 구단 사상 최연소 리그 득점기록이었다. ‘메시 천하’의 서막을 알린 전주곡이었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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