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열리는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한국-아르헨티나의 경기를 앞둔 세 사람의 감회는 남다를 것이다.
이들 세 명은 24년 전인 1986년 6월 2일 멕시코시티 유니버시티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1986년 멕시코 월드컵 A조 조별리그 첫 판에서 맞대결을 벌였던 당사자들이다.
당시 허정무 감독은 요즘으로 치면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고, 독일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뛰고 있던 차범근 위원은 최순호(현 강릉 FC 감독)와 투 톱을 이뤄 최전방 공격을 맡았다.
슈퍼스타로 각광을 받고 있던 마라도나 감독은 발다노와 함께 아르헨티나의 투 톱을 맡았다. 1978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우승을 한 뒤 8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아르헨티나는 우승 후보 1순위로 꼽힐 정도로 막강 군단이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 무대에 오른 한국도 선수 면면을 보면 역대 어느 대표팀 못지않게 화려했다.
차범근 허정무 최순호를 비롯해 박창선(전 경희대 감독), 조광래(현 경남 FC 감독), 조영증(현 대한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 정용환(현 부산시축구협회 시설이사), 박경훈(현 제주유나이티드 감독), 변병주(전 대구 FC 감독), 김주성(현 대한축구협회 국제국장), 김평석(전 축구대표팀 코치), 김종부(현 중동고 감독), 김용세(전 일화), 조민국(전 고려대 감독), 오연교(2000년 작고) 등 한국 축구사에 이름을 남긴 스타플레이어들이 포진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은 그때까지만 해도 '우물 안 개구리'였다.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뛰어났지만 월드컵을 대비한 훈련 방법이나 세계 축구의 흐름을 잘 알지 못했고 선수들은 처음 서 보는 월드컵 무대에서 발이 얼어붙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국은 아르헨티나에 1-3으로 패했다. 발다노에게 2골, 루게리에게 한골을 빼앗겼고, 박창선이 후반 27분 25m짜리 중거리슛으로 한국축구의 월드컵 1호 골을 터뜨리며 영패를 면했다.
이날 패인은 김평석 허정무 김용세 박경훈이 돌아가며 마라도나를 막으려 했으나 효과적으로 봉쇄하지 못하고 무더기 파울을 내줬기 때문이었다. 한국이 이날 기록한 17개의 파울 중 11개가 마라도나를 막으려다 나온 것이었다.
당시 아르헨티나대표팀의 빌라르도 감독은 경기 후 "모든 골은 마라도나의 발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의 잦은 반칙으로 킥을 찰 기회가 많아졌고 여기서 골이 나왔다"고 분석했다.
마라도나는 경기 후 "한국 선수들이 그렇게 거칠게 나오리라고는 생각 안했다. 쉬운 경기는 아니었다. 한국팀은 축구 뿐 만아니라 태권도까지 동원해 축구를 했다"며 비난 성 코멘트를 했다.
이에 대해 허정무는 "엄연히 주심이 있고, 심판이 경기 운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로선 최선을 다한 경기였다"고 받아 넘겼다.
또한 차범근은 "뒤늦게 대표팀에 합류해 발을 맞출 시간이 적었던 게 아쉽다. 최전방 스트라이커로서 골을 못 넣어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이후 세 사람이 한마음으로 뭉친 적도 있었으니 1995년 때의 일이다. 2002년 월드컵을 유치하기 위해 한국이 일본과 치열한 경쟁을 벌일 당시 마라도나는 한국의 든든한 응원자였다. 펠레를 주축으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의 지원을 받는 일본에 맞서 마라도나는 1995년 9월 자신이 소속된 아르헨티나 프로축구팀 보카 주니어스를 이끌고 한국에 와 경기를 하면서 한국의 유치 활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1994년까지 월드컵에 4번이나 나간 한국이 한번도 나가지 못한 일본보다 앞서지 않느냐.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이 월드컵을 개최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이런 마라도나 감독이 이번에 "한국팀 전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한 것은 연막술이 틀림없다.
24년 만에 월드컵에서 다시 만나게 된 한국과 아르헨티나 축구대표팀, 그리고 허정무 차범근 마라도나…. 이번 맞대결 후에는 세 사람의 입에서 또 어떤 말들이 나올까.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