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S와 함께하는 월드컵 과학] 20. 아프리카 축구의 특징

입력 2010-06-22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공격=해외파, 수비=국내파 ‘따로국밥’


유럽무대 뛰는 선수 대부분 공격수
수비수로 구성된 국내파와 엇박자

월드컵은 자신을 위한 기회일 뿐…
국가관 약하지만 체격-근성 뛰어나



● 아프리카 스포츠에 대한 편견


‘흑인의 운동능력이 타고난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아직까지 논쟁거리다. 유전자 차이니, 사회적 불평등 탓이니 하는 이 논쟁을 풀어줄 해법 중 한 가지는 ‘왜 흑인만 주목하는가?’라는 역 질문이다. 예를 들어 우리 양궁선수를 근거로 ‘황인종은 양궁에 타고 났다’ 라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흑인이 스포츠 계에서 주목을 받게 된 이유는 국제 스포츠이벤트에서 흑인의 출현이 너무 갑작스러웠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아마추어리즘을 내세워 돈 버는 행위를 금지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흑인은 현실적으로 참가자체가 불가능했다.

미국도 잠재력을 가진 대표 선수 또는 후보 선수를 학생 위주로 발굴하는 제도를 지녔기 때문에 고등교육에서 인종적 평등이 실현되기 전까지는 국제수준의 우수한 선수가 있더라도 발굴되기 힘든 처지였다.



또한 당시 아프리카는 대다수 신생독립국가로서 내전과 먹고사는 문제로 스포츠에 고개를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는 가운데 몇 가지 사건이 터진다.

1960년 로마올림픽 마라톤 경기가 끝난 후, 세계 언론에 비상이 걸렸다. 종전기록을 8분 이상 단축한 2시간 12분대의 기록을 세우며 우승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의 출현 때문이었다. 아베베와 그의 조국, 아프리카와 흑인은 당시 선진과학이 설정한 한계를 넘어섰다는 미스터리로 받아들여진다.

이후 각종 스포츠에서 유럽과 미주 출신의 흑인이 부각되면서 스포츠에서 흑인의 신체적 능력에 대한 편견은 상식으로 굳어진다.

아프리카 출신 축구선수의 월드컵 도전은 1934년 이집트로부터 시작되지만, 월드컵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알리게 된 것은 1986년 아프리카에 본선진출권이 주어질 때부터다. 1990년 나이지리아는 개막전부터 아르헨티나에 승리하고 8강에 올라 잉글랜드에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아쉬운 패배를 하지만 그들의 선전에 세계는 경악했다. 아베베가 국제사회에서 아프리카 스포츠의 영주권을 획득한 계기를 만들었다면, 나이지리아의 월드컵에서의 선전은 명실상부한 시민권을 획득했던 것에 비유된다.


● 슬픈 대륙 아프리카

근대 제국주의 침략사에서 현재 나이지리아가 위치한 서아프리카는 노예무역의 사냥터였다. 당시 서구 열강은 흑인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평가해야 하는가에 대해 논쟁할 만큼 무지했고, 그 무지는 노예제도의 잔혹함으로 이어졌다. 서아프리카인의 잔혹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2차 대전 이후 멋대로 그어 놓은 국경선으로 인해 연일 내전과 쿠데타가 발생했는데, 서구열강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전에 뒷돈을 대기도 했다.

나이지리아만 하더라도 지난 40년간 니제르강의 유전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정유회사 ‘쉘(shell)’의 내전개입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노예무역의 전통은 축구에서도 되풀이된다. 1990년대 초부터 가나 선수 3명을 이탈리아 토리노클럽이 스카우트한 이래, 2007년 현재 유럽리그에서 뛰는 아프리카 선수는 약 730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UN이 1999년 특별보고서를 통해 현대판 노예무역이라고 비난한 가운데, 여전히 서아프리카지역의 체격조건과 근성이 뛰어난 나이지리아, 카메룬 출신선수에 대한 유럽리그의 러브콜은 그치지 않는다.

현재 남아공에는 아약스구단이 직접 운영하는 ‘아약스 케이프타운’이라는 유소년 구단이 있다. 이것은 모두 아프리카 국가들의 궁핍한 처지를 이용한 선진국 배불리기 이상이 아니다.


● 나이지리아 팀의 아킬레스건

나이지리아 팀의 약점은 이 같은 서아프리카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나이지리아 내전으로 1999년도부터 집계된 희생자만 1만 명이 넘고, 2004년 종교분쟁으로 국가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최근 대통령이 신병 치료차 해외에 머무는 사이 부통령이 내각을 해산하는 사건 정도는 해프닝으로 취급될 정도다.

이런 사정은 축구도 마찬가지다. 새롭게 부임한 감독 라예르베크는 최종주전을 확정하면서 제대로 선수소집도 할 수 없어 TV화면에 의지해야만 했고, 입국요청에 일부 선수는 여러 사정으로 제 때에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그뿐인가. 축구 행정의 후진성은 마치 2006년 우리가 상대했던 토고를 보는 듯하다.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본선 직전 기존 감독이 사퇴한 상태에서 신임 감독의 팀 장악력 또한 구설수에 오르고 있으며, 본선 진출 이전에 평가전을 치르면서도 아프리카 축구의 고질적 약점인 월드컵 본선 출전수당을 놓고 선수들이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팀원의 구성도 문제인데, 유럽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프리카 출신 선수의 대다수가 공격수이기 때문에 수비수로 구성된 국내선수와 공수간의 조화가 무너졌고, 당초 수비라인을 책임질 것으로 기대되던 조지프 요보(에버턴)의 활약도 지금까지 기대 이하다.

워낙 국가관이 약한 탓에 민족주의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선수들에게 있어 이번 월드컵은 단순히 자신을 위한 기회일 뿐이다. 그들의 월드컵은 국내선수에게 향후 유럽진출의 기회, 해외선수로서 몸값을 올릴 수 있는 기회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상대팀의 문제를 보고 기뻐할 수밖에 없는 경쟁의 속성 상, 지금까지 나이지리아의 행보는 우리에게 안도감을 준다. 다만 이런 사실은 객관적 정황일 뿐, 아르헨티나전 패배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 편파적인 현지 응원, 혹시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나이지리아 팀의 투혼이 결합된다면 의외의 결과도 가능하다.

하지만 태극전사들이여 명심하라. 지금 그대에게 필요한 것은 ‘너 소냐, 나 최배달이야’라는 식의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이다. 분명 상황은 우리보다 그들이 좋지 못하다.

한태룡 KISS 선임연구원
실천형 스포츠 애호가
스포츠사회학 전문가.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