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범. [스포츠동아 DB]
○완벽한 전략의 승리
나이지리아와 조별리그 3차전에서 보인 허정무 감독의 전술과 전략은 완벽했다. 허정무 감독은 수많은 시나리오를 준비했고, 각각에 걸맞은 철저한 분석을 했던 흔적이 엿보인다.
첫째, 나이지리아는 전통적으로 긴 패스를 하기 보다는 짧은 패스로 조금씩 상대 문전을 향해 이동하는 스타일의 플레이를 추구해 왔다.
서서히 공간을 갉아먹는다고 할까. 크게 위협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개인기와 탄력이 좋은 나이지리아로서 당연한 선택이다.
허 감독은 이 부분을 집중 공략했다.
철저히 전진 압박과, 밀집 수비를 구축해 상대를 괴롭혔다. 미드필드 밸런스는 처음에는 잘 맞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차츰 나아지는 분위기였다.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여기에 있지 않았나 싶다.
두번째는 상대가 파울수가 많다는 부분을 역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정수와 박주영의 2골 모두 세트피스 상황에서 비롯됐다. 위축되지 않고 거친 상대를 우리에게 유리하게 이끈 영리함은 칭찬해 줄 만 하다.
세트피스의 중요성은 이렇듯 큰 경기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공략법들을 많이 준비한 것 같다. 상대에 따라 달리 준비하는 철저한 대비책이 16강의 원동력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흔들어! 흔들어!
공격진에 유난히 자리이동이 많았다. 이는 변화가 많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포지션 체인지가 활발해 다이내믹한 움직임이 여럿 눈에 띄었다.
오른쪽 날개 이청용이 좌우를 가리지 않았고, 최전방 공격수로 나선 염기훈 역시 그랬다. 왼쪽 날개 박지성의 몸놀림이 다소 둔탁하긴 했어도 충분히 이름값은 했다고 본다.
염기훈은 전반까지 측면보다는 중앙에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고, 후반 들어 측면까지 고루 커버했다. 다소 부족했다는 항간의 얘기도 있으나 역할에 걸 맞는 활약을 했다.
쉼 없이 좌우를 흔드는 데 상대가 버텨낼 턱이 없다. 나이지리아로서는 점점 위험 지역에서 거칠게 나올 수밖에 없었고, 우리로서는 유리한 상황을 유도했다.
미드필드와의 연계 플레이도 아주 좋았다. 허리진 중앙을 맡은 기성용과 김정우는 수비형 본연의 ‘압박’ 및 ‘1차 저지선’ 임무 외에도 적극적인 공격 본능을 발휘했다.
나이지리아가 ‘너는 너, 나는 나’ 사고방식 속에 디펜스 가담이 느린 것도 유리한 방향으로 작용했다. 4-2-3-1 포메이션을 가동해 중원을 두텁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헐거워 보이는 까닭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하겠다.
○수비진은 좀 더 정비하길
냉정히 말해보자. 아직도 수비진은 개선이 필요하다.
위험 공간을 비워둔 채 여러 번 끌려 나가는 인상이 짙었다. 비록 골은 넣었지만 중앙 수비수 이정수와 조용형은 본인들이 지켜내야 할 라인에 없었다.
동점 상황에서 막판 밀릴 때 가슴 철렁한 순간이 자주 나왔다. 우리가 잘한 것보다 나이지리아 공격진이 못했다고 하겠다. 4실점을 허용한 아르헨티나전과 비교해도 거의 나아지지 않았다.
왜 끌려 나가느냐. 왜 지키지 않았느냐. 계속 되새겨야 한다. 여전히 위험했다. 다시 한 번 강조컨대, 센터백의 최대 임무는 ‘안정’이요, 또 ‘안정’이다.
페널티킥을 내준 이유로 김남일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이는 것을 안다.
그러나 염기훈을 빼고 꺼내든 김남일 카드는 허 감독으로서는 당연했고, 최상의 선택이었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안정과 노련미를 기대한 까닭이다. 허리가 탄탄해야 모든 포지션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 더욱이 김남일 투입 이후 기성용이 공격에 가까운 위치로 전환해 최초 4-4-2 포메이션이 4-2-3-1 형태가 됐다.
비록 위험한 파울이 몇 번 나왔고, 실수를 했으나 나쁜 변화는 아니었다. 결과론이지만 우리는 이기는 상황이었다. 미드필드의 안정을 찾기 위해 벤치로서 선택은 김남일 밖에 없었을 것이다.
누가 봐도 허 감독의 판단이 옳았다.
정리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