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워하는 허정무 감독

입력 2010-06-27 00: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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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복병 우루과이에 1-2로 패한 뒤 허정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57)의 얼굴은 아쉬움이 많은 표정이었다. 월드컵 원정 사상 첫 16강 진출이란 신기원을 이뤘지만 더 높은 곳까지 오르고 싶은 욕심이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허 감독은 국내 감독 월드컵 첫 승과 16강 진출이란 두 마리 토끼는 잡았다.

허 감독은 화합과 자율, 긍정의 리더십으로 한국축구의 국제경쟁력을 업그레이드시켰다.

허 감독은 지난 2007년 12월 대표팀 사령탑을 맡았을 당시만 해도 '진돗개'라는 별명처럼 고집스럽고 일방통행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그는 아시아 3차 예선을 3승3무로 마무리한 뒤 2008년 9월10일 북한과 최종예선 1차전에서 1-1로 비겨 세 경기 연속 무승부 행진으로 수비 불안과 골 결정력 부족 드러낸 것에 대한 언론의 비난이 거세자 취재진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는 등 '불통' 이미지를 보였다. 선수단 내에서도 다소 권위적인 모습으로 비쳤던 게 사실이다. 그러던 그가 주변의 권고와 자발적인 심경 변화로 확 달라졌다.

허 감독은 2008년 10월 아랍에미리트(UAE)와 아시아 최종예선에 '캡틴'을 맡아왔던 김남일(톰 톰스크)이 경고 누적으로 뛰지 못하게 되자 주장 완장을 박지성(맨체스터유나이티드)에게 넘겨주면서 선수단의 자율을 강조했다. 허 감독은 박지성에게 "경기장에서는 네가 감독이다. 감독이 전달하지 못하는 부분은 주장이 대신 이끌어야 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그가 읽어왔던 책에서도 그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지난 1월 남아공 전지훈련 때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자서전인 '긍정이 걸작을 만든다'는 책을 탐독하며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신바람의 중요성을 선수들에게 주지시켰다.

그는 지난달 25일 오스트리아 전지훈련을 시작하면서 최고 경영자와 유명 인사들의 친화 리더십을 다룬 '따뜻한 카리스마'를 읽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는 부드러운 힘을 강조하는 것도 이런 변화와 맞물려 있다.

허 감독은 선수들과 미팅 후에는 주장 박지성을 중심으로 선수들끼리 이야기할 시간을 꼭 준다. 또 훈련 시간에도 패스 게임이나 볼 뺏기에 동참하며 항상 밝은 표정으로 선수들과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한다.



이런 변화는 이운재(수원), 안정환(다롄 스더), 김남일, 이동국 등 고참급 선수와 이승렬(FC서울), 김보경(오이타) 등 젊은 선수들이 혼합된 선수단의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그러나 경기를 할 때는 강한 카리스마를 내세운 승부수도 그가 가진 리더십의 또 다른 특징이다.

그는 주변의 반대에도 새로운 선수를 찾기 위해 계속 실험해왔고 '유럽파' 박주영(AS모나코)과 이청용(볼턴), 기성용(셀틱)을 대표팀의 주전으로 기용하며 세대교체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조별리그 1차전이었던 그리스와 경기에서 2-0 승리를 수확한 뒤 아르헨티나와 2차전에서 1-4 완패를 당했지만 동요하지 않다. 대신 '파주침주(破釜沈舟.밥 지을 솥을 깨고 돌아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말로 배수진을 친 결연한 자세)'라는 고사성어를 빗대어 퇴로를 차단하는 비장한 각오로 마침내 한국의 사상 첫 원정 16강의 꿈을 실현시켰다. 자율과 긍정의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한편 강한 배짱으로 소신을 밀어붙인 '승부사' 허 감독의 지도력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인터넷 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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