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룡 “첫 월드컵…선발…덜덜덜 떨렸죠”

입력 2010-07-0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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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룡. 사진=남장현 기자

정성룡이 털어놓은 “나의 월드컵은…”
“항상 꿈을 꿨던 바로 그곳에 제가 서 있었죠. 어떻게 잊겠어요?”

조금은 처진 눈매, 동글동글 복스러운 코, 서글서글한 웃음이 매력인 대표팀 수문장 정성룡(25·성남 일화).

한국 축구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이란 값진 위업을 달성한 남아공월드컵에서 정성룡은 조별리그와 16강전까지 4경기를 모두 뛰며 ‘슈퍼 세이프’를 선보였다. 실점(8골)도 꽤 많았지만 누가 정성룡을 탓하랴.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밤잠을 이루지 못한 채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는 5천 만 붉은 악마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국내 최고 수문장으로 떠오른 정성룡을 30일 성남 구단이 위치한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만났다.

● 착한 남자

“제가 스타라고요? 아뇨, 진짜 스타들은 동료들이죠.”

스타가 된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내내 싱글거리던 정성룡의 표정이 금세 바뀐다. 자신이 아닌, 동료들에게 모든 공을 돌리는 모습. 어쩌면 당연하지만 마주 앉은 상대가 정성룡이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전 전혀 한 게 없어요. 활약도 없었고요. 골만 배불리 많이 먹었잖아요. 감독님과 (코치)선생님들, 묵묵히 음지에서 지원하는 스태프. 그라운드를 후끈 달궈준 우리 사랑하는 동료, 선후배들이 진짜 주인공입니다.”

월드컵대표팀 해단식이 열린 6월29일 밤. 정성룡은 공식 행사가 끝난 뒤에도 고대했던 가족들과의 대면을 잠시 미뤄야 했다. 자신을 위한 팬 미팅 자리에 참석했다. 15명 안팎의 조촐한 숫자였지만 이들은 정성룡에게 너무 소중한 존재들이다.

포항 시절부터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이 마련한 자리를 마다할 수 없었다. 비록 한 시간도 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성룡에게는 당연했고,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임무이기도 했다.

“먼 곳에서 오신 분들도 꽤 있었어요. 너무 고마웠죠. 잠깐 얼굴이라도 보겠다는 그 분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어요? ”

● 내 인생 첫 월드컵

월드컵 최종 엔트리 23명에 포함되면 타 포지션은 대개 2대1 정도 경쟁률이다. 하지만 골키퍼는 다르다. 국제축구연맹(FIFA) 룰에 따라 3명을 선발해야 한다. 일단 자리가 한 번 결정되면 바뀌는 경우도 극히 드물다.

허정무 감독이 마지막까지 고심한 포지션도 바로 골키퍼 부문이었다.

정성룡 위에는 이운재(수원), 김영광(울산)이란 넘어서기 힘든 산이 있었다. 월드컵호가 출항할 때 정성룡은 “기회가 없더라도 선배들이 편하게 활약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덜컥 주연이 됐다. 높게 만 보였던 이운재의 아성을 넘어선 것이다. 조별리그 첫 상대 그리스와 대결을 앞두고 미팅룸에서 정성룡은 선발 통보를 받았다.

“소감이요? 살 떨리고, 피가 마른다는 느낌? 머리털이 곤두섰어요. 오만가지 별의별 생각이 들더라고요. 헌데, 한 번 무실점으로 경기를 하고 나니 자신감이 완전히 붙었죠. 아르헨티나에 비록 4골이나 내줬지만 오히려 자극제가 됐죠.”

라커룸 분위기를 얘기해 달라고 했다.

“우승할 때 기분 아시죠? 그리스전 끝나고 큰 고비 넘겼다는 생각에 안도했지만 16강에 올랐던 나이지리아전은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K리그에서 정상에 올랐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와 쾌감이 장난이 아니었죠. 천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을 소중한 경험이었죠. (이)운재 형과 (김)영광이 형이 악수를 해주는데 눈물이 났어요.”

사실 정성룡은 2-0으로 승리한 그리스전이 한국축구가 원정 월드컵에서 처음 거둔 무실점 경기라는 걸 귀국 후에야 지인들을 통해 들었단다.

잊을 수 없는 순간도 있을 터. 짧았던 악몽의 순간이자, 평생 기억 될 소중한 추억이 있다. 나이지리아전을 앞두고 대표팀 김현태 골키퍼 코치가 “페널티킥 상황이 오면 상대 키커는 아마 우체가 될 것”이라며 방향을 넌지시 알려줬다.

헌데, 이게 웬걸. 막상 우려했던 상황이 닥치자 자블라니를 들고 야쿠부가 다가왔다. 깜짝 놀란 정성룡. 벤치를 애타는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아무런 사인이 나오지 않았다고. 결국 마음을 굳게 먹고, ‘성남에서 배운 대로 하자’며 마인드 컨트롤을 했다.

“결과는 다 아시잖아요. (골)먹었죠. 뭘. 내가 머리가 나쁜가? 분명 키커가 볼을 놓고 서는 위치를 확인했는데, 반대로 몸을 날렸죠. (이)운재형이 방향을 일러줬다는데 전 못 봤어요.”

정성룡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일본과 파라과이의 16강전을 지켜봤다. 축구는 보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계속 어른거려 참을 수 없었다.

승부차기 끝에 파라과이의 승리. 연장전이 끝난 뒤 승부차기 순간이 다가오자 정성룡의 가슴이 쿵쾅쿵쾅 울렸단다. 누굴 응원했느냐고? 아마 대부분 한국인들의 생각은 동일하지 않을까? 힌트는 여기까지만.

● 좋은 아빠, 자상한 남편

이미 공개됐지만 정성룡은 월드컵 때 아빠가 됐다. 아르헨티나전이 끝난 다음 날(6월18일) 아들 사랑이(태명)가 태어났다. 원래 출산 예정일은 17일.

정성룡은 “아빠가 진 날에 태어나기 싫었나보다”며 웃었다.

착한 남편, 자상한 아빠가 되고 싶은 정성룡은 경기 당일 집에 전화를 걸지 않았다. 부인 임미정 씨는 문자 메시지 한 통 없는 남편이 야속하기도 하지만 이제 적응이 됐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정성룡의 변명은 무엇일까?

“괜히 임산부한테 폐를 끼치기 싫었어요. 말 한마디 잘못하면 탈이 날 수도 있잖아요. 일부러 자제한거에요. 전화를 안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고요.”

정성룡은 사랑이가 태어난 소식을 미정 씨와 친한 언니로부터 문자로 받았다. 월드컵 대회 중에는 영상으로 꼭 한 번 받았다고. 누굴 닮았느냐고 물었다. 헌데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저를 닮았다는 분도 있는데, 엄마를 닮았다는 사람도 있고. 잘 모르겠어요. 엄마 힘들지 않게 10분 만에 태어나준 걸 보면 확실한 건 복덩이인 것 같아요.”

탄천 |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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