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사커] “스카우트 할테니 스폰서 물어와!”

입력 2010-07-0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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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중하위권 구단들은 한국 선수를 영입하는 조건으로 기업 스폰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스타디움에서 펼쳐진 나이지리아와의 3차전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16강 진출이 확정되자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스포츠동아 DB

한국선수의 유럽진출과 스폰서
스페인 이탈리아리그 중하위권 팀
몇몇 한국선수들에 이상한 러브콜

5억원 안팎 서브스폰서 유치 요구
기업들 “인기없는 팀에 푼돈 안써”
한국이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오르며 태극전사들의 주가도 덩달아 뛰었다. 유럽 프로축구 이적시장과 맞물려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보인 몇몇 선수들의 이적 소식이 터져 나와 관심을 끈다.

물론 유럽 구단들은 선수의 기량과 성장 가능성, 연봉이나 이적료 등을 두루 고려해 영입 여부를 결정한다. 그러나 이런 것 말고도 한국 기업의 스폰서 유치가 이적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일부 있다. 축구 선수들의 유럽 진출과 스폰서의 상관관계를 살펴본다.

○스폰서 유치가 선결조건?

유럽 모 구단이 한국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며 한국 기업 스폰서를 유치해오면 입단 계약을 맺겠다고 조건을 제시하는 식이다. 해당 선수 에이전트는 이를 위해 국내 기업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판다.

업계 관계자들은 작년 겨울 네덜란드 빌렘Ⅱ와 계약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이근호가 대표적인 예라고 입을 모은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에이전트는 “네덜란드에는 외국인 선수 최저 연봉 하한선이 38만유로(당시 환율 7억3000만원)로 정해져 있다. 구단에서 5억원 수준의 서브 스폰서만 유치해오면 계약을 맺겠다고 해서 당시 이근호 에이전트가 국내 기업들을 찾아 다녔지만 결국 실패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근호 에이전트는 “빌렘 지역에 국내 대기업 공장들이 있다고 해서 입단이 되면 스폰서 유치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오갔을 뿐이다”고 부인했다. 이근호 말고 다른 사례도 들어볼 수 있다.

이번 남아공월드컵에서 대표팀 주전으로 뛰었던 한 선수는 최근 프리미어리그 중하위권 팀으로부터 비슷한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또 다른 에이전트 역시 “작년 여름에도 이탈리아 프로리그 라치오에서 서브 스폰서를 조건으로 한국선수를 영입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전해와 거부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검증 안 된 선수들이 대상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보다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네덜란드 리그 팀들이 이런 조건을 내거는 사례가 많다.

한 에이전트는 “잉글랜드를 제외한 대다수 유럽 리그는 비(非) 유럽연합(EU) 선수 보유제한 조항을 두고 있어 한국 선수를 쓰려면 그만한 보상이 따라야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경향이 있다”고 털어놨다.

잉글랜드에 비해 이탈리아, 스페인 리그 쪽은 한국보다 일본 선수들이 먼저 진출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일본 기업 스폰서를 끼고 입단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폰서를 요구하는 구단들은 리그 내 중·하위권 팀들이다. 각 리그를 대표하는 빅 클럽들이 이런 방식의 스폰서 유치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이들이 요구하는 스폰서 금액도 5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거금이 필요한 메인 스폰서가 아닌 서브 스폰서다. 한 에이전트는 “심지어 1∼2억원을 요구하는 구단도 봤다”고 말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청용(볼턴), 박주영(AS모나코), 이영표(알 힐랄), 설기현(포항) 등 현재 유럽에서 뛰고 있거나 과거 활약했던 선수들까지 이 범주에 포함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대표팀 부동의 주전으로 검증된 선수들이어서 스폰서를 요구 조건으로 내걸고 입단 계약을 추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케이스다. 스폰서 유치 조건을 제시받는 선수들 대부분은 대표팀 내에서도 주전 자리를 꿰차지 못한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조차 아직 완벽하게 검증이 안 된 실력을 갖췄다는 의미다.

○입단 성공사례 없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이런 스폰서 유치 사례로 입단에 성공한 케이스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한 에이전트는 “선수나 대리인이나 이제는 이런 식의 방법으로는 유럽에 진출할 수 없다는 걸 학습효과로 깨달았을 것이다”고 말했다.

스폰서를 요구하는 구단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선수, 에이전트는 같은 생각을 한다. 몇 십억, 몇 백억도 아니고 5억원 안팎의 소액이니 기업을 설득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그러나 이는 오산이다. 스포츠마케팅 한 전문가는 “메인이든 서브든 유럽 프로 축구단에 스폰서를 할 수 있는 기업은 한국에 몇 개 안 된다. 뻔하다. 이들에게는 금액이 이슈가 아니고 마켓(시장)이 이슈다. 그 시장이 과연 기업 제품 판매나 이미지 제고에 도움이 되는 지를 보고 클럽의 지명도까지 꼼꼼히 따진다.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중하위권 구단에는 5억원이 아니라 5000만원도 투자할 기업이 없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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