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를 보았다’에서 연인을 죽인 연쇄살인마에게 처절한 복수를 가하는 수현 역을 연기한 이병헌.
복수? 누구나 한번쯤 꿈 꿨던 것
상업성·예술성 조화 자신있어요”
“복수를 꿈꿔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배우 이병헌은 잔혹한 복수극을 펼친 자신의 연기를 두고 이렇게 되물었다.
12일 개봉한 영화 ‘악마를 보았다’(감독 김지운)에서 연인을 죽인 연쇄살인마에게 처절한 복수를 가하는 이병헌은 “꼭 잔인한 방법이 아니더라도 미운 사람에게 복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것”이라고 했다.
두 차례에 걸친 제한상영가 등급으로 폭력성에 대한 논쟁이 일었던 ‘악마를 보았다’는 영화가 개봉한 뒤 잔혹한 표현이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날 오후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난 이병헌은 “영화를 만든 입장이라 관객이 얼마나 잔인하게 느낄지 둔해지는 부분이 있다”면서도 “작품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한 시절이 있다는 건 나의 필모그래피에서도 나쁘지 않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병헌은 ‘악마를 보았다’의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다고 했다. 하지만 촬영 과정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처럼 간단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꾸만 가라앉는 감정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시나리오에선 해소감을 느꼈는데 촬영하니 감독, 최민식 선배, 나까지 우울한 분위기에 빠졌다. 내면적으로 침체된 상태에서 촬영했는데 개봉 전 제한상영가 등급이 나오니 약간 ‘이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특히 ‘살인마’ 최민식을 쫓다가 그의 아킬레스건을 자르는 장면을 두고 이병헌은 “이렇게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며 굉장히 피로해졌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이병헌은 영화에 대한 자신감이 대단했다. 상업성과 예술적인 코드가 한 데 섞여 있다고 자부하며 “노골적으로 상업영화로 만들었다면 더 많은 관객이 들겠지만 상업성과 예술성에서 남들이 손가락질하지 않을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이병헌은 이 영화에 대해 자신의 또 다른 활동무대인 미국 측에서 보내온 반응도 소개했다. 영화 촬영 전 미국 에이전시와 만나 출연 계획과 영화의 내용을 알렸다는 이병헌은 미국인들이 복수 영화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예로 들며 “미국에서 리메이크될 가능성을 얘기하는 관계자들도 많았다”고 밝혔다.
최근 3년 동안 이병헌은 누구보다 활발한 연기 활동을 벌여왔다.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시작으로 다국적 프로젝트 ‘나는 비와 함께 간다’, 할리우드 진출작 ‘G.I. 조’에 이어 드라마 ‘아이리스’와 ‘악마를 보았다’까지 쉴 틈이 없었다.
작품 활동에서는 흥행가도를 달려왔지만 올해 초 불거진 송사로는 마음고생을 적잖이 하고 있다.
이날 1시간30여 분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도 이병헌은 법적 분쟁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도 “진실은 언젠가 밝혀질 것”이라고만 답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이병헌과 권 모 씨가 벌였던 소송에 대해 ‘쌍방불출석’으로 분쟁을 없던 일로 매듭지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