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시진 감독. 스포츠동아DB
“야구를 잘하려면…연필로 쓰세요”
전력분석 통한 데이터 있지만…
스스로 메모해야 플레이 객관화
‘복기’ 효과로 잘못된 부분 깨달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 언젠가 생각해 냈던 그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을 때,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하윤은 수필 ‘메모광’에서 ‘메모는 뇌수(腦髓)의 분실(分室)’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야구에서도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프로의 자세는 ‘메모광’
전력분석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각 팀은 상대투수와 타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둔다. 선수들은 필요에 따라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력분석회의도 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자신이 “직접 정리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신을 객관화 시키는 과정이다. 범타로 물러났을 때, 상대타자로부터 결정타를 맞을 때, 실패의 지점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것은 이후 승부의 밑거름이 된다. 그 시간만큼은 철저히 외로운 숙고(熟考)를 거듭하기 때문.
김 감독은 강병식(33)을 예로 들었다. 강병식은 대학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한 강타자였지만, 프로입단 이후에는 막강한 현대타선에서 주로 대타요원으로 활약했다. 김 감독은 “승부처에서 나가는 타자이기 때문에 상대투수들에 대한 정보를 메모할 것을 더 강조했다. 그것이 프로의 자세”라고 했다.
비단 야구 뿐 만이 아니다. 2008베이징올림픽 펜싱 여자플뢰레 은메달리스트 남현희(29·성남시청) 등 아마추어의 거물급 선수들도 “학창시절부터 경기들을 스스로 정리했다”고 증언한다. 일기형식의 훈련일지는 올림픽메달리스트들의 피와 땀을 증명하는 주요 레퍼토리다.
○A급 투수라면 110개의 투구를 모두 복기해야
메모는 특히 ‘복기’라는 지점에서 더 효과가 크다. 김 감독은 “잘 던지는 투수들은 110개의 투구를 거의 모두 복기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투구가 일종의 ‘목적의식’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프로기사들이 자신의 경기를 ‘한 수, 한 수’ 모두 기억하는 것과 같다.
넥센 투수들 가운데는 올 시즌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김성태(28)가 메모에 일가견이 있다. 복기를 통해 주자상황별 승부 포인트까지 정리한 오답노트는 그의 자산. 김성태의 올 시즌 연봉은 2800만원에 불과하지만, 연봉 인상요인이 충분한 선수다. “결국 메모가 곧 돈이 된다”는 김 감독의 설명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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