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전을 마치고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는 김단비 브르노(체코)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세계선수권 브라질 격파 선봉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만진 소녀의 꿈은 ‘국가대표’였다. ‘프로선수’는 한참 뒤에야 생긴 목표였다.
그녀는 “나 뿐 아니라 언니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요즘 선수들이 태극마크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일각의 비판에 대해 “달아보라. 뛰어보라. 이겨보라. 어떤 말로도 그 기분을 표현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23일 체코에서 개막한 제16회 세계여자농구선수권. 이름 때문에 ‘단무지’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그녀는 이름처럼 ‘단비’가 돼 내렸다.
브라질(세계랭킹4위)과의 1차전을 치르기 전까지 대표팀(9위)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하은주, 최윤아(이상 신한은행), 김정은(신세계) 등 주축들이 대거 부상으로 빠진데다가 이미선(삼성생명)마저 현지에서 출전이 어려워졌기 때문.
하지만 대표팀에는 ‘샛별’ 김단비(20·신한은행·사진)가 있었다.
김단비는 23일(한국시각) 예선 C조 브라질전에서 임달식(신한은행) 감독의 히든카드로 깜짝 등장, 2스틸에 13점을 쓸어 담았다. 브라질에 61-60으로 신승을 거둔 대표팀은 25일 맞붙을 말리(23위)보다 객관적 전력이 앞서 사실상 12강 진출이 확정됐다.
김단비는 “아직은 아무 것도 몰라서 막(과감하게) 할 수 있는 것 같다”고 수줍게 웃은 뒤, “태극마크를 달고 좋은 성적을 냈던 언니들이 우리를 믿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세대교체의 기수다운 포부를 내놓았다.
60∼70년대, 여자 농구는 한국에서 가장 국제경쟁력이 있는 구기종목이었다. 대접도 대단했다. 1967년, 체코에서 열린 제5회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뒤에는 2만 명이 운집한 환영대회에서 선수들이 훈장을 받기도 했다.
태극마크에 대한 선수들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세월은 흐르고, 국가관도 변했지만 그것만은 그대로다.
대표팀 최고참 정선민(36·신한은행)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국농구의 자존심, 자긍심, 매운 맛을 보여주자고 다짐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정신은 대표팀 막내에게까지 이어져, 대표팀에 단비를 몰고 올 구름을 부풀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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