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퀴즈왕’에서 ‘의외성의 코믹함’으로 웃음을 안겨준 류승룡은 아내와 둘만의 여행을 기다리고 있다.
퀴즈왕은 장진 감독 작품에 시나리오도 굿
변화 집착하진 않지만 똑같은 연기는 질색
‘퀴즈왕’은 나도 몰랐던 본능 끄집어낸 작품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는 세 가지 이유 중 하나만 충족하면 된다.”
첫 번째는 시나리오, 두 번째는 감독 혹은 감독의 역량에 대한 신뢰, 나머지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인 돈, 즉 출연료이다.
배우 류승룡은 16일 개봉한 영화 ‘퀴즈왕’(제작 소란플레이먼트)을 선택한 까닭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일단, 돈은 아니었고, 시나리오가 좋았던 데다 장진(감독)이었기 때문”이란다.
그는 서울예술대 연극과 출신이다. ‘퀴즈왕’의 연출자 장진 감독이 1년 선배다. 류승룡은 장 감독과 맺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뜻을 잘 알” 만큼 오랜 인연을 신뢰의 바탕으로 삼았다. 이제는 어엿한 주연급 배우의 자리에 오른 그가 김수로, 한재석, 정재영, 임원희, 신하균 등 이른바 ‘장진 사단’이 총출동한 ‘퀴즈왕’을 또 하나의 신작으로 삼은 것도 그 덕분이다.
‘퀴즈왕’은 133억원의 상금이 내걸린 퀴즈쇼에 출연하는 다양한 인간군상의 이야기다. 류승룡은 노름에 빠진 무능한 가장 역을 맡아 능청스런 사투리로 관객에게 웃음을 안긴다.
강한 카리스마로 똘똘 뭉쳐 있을 듯한, 실제로 전작들에서 보여진 강렬한 캐릭터의 이미지도 그렇지 않은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사투리의 리듬감이란 맛깔스럽다.
드라마 ‘개인의 취향’에서 세련된 동성애자로 출연해 남긴 진한 인상을 기억하는 관객으로서는 더욱 그럴 듯하다. 충남 서천 태생인 그는 “영화 ‘거룩한 계보’ 이후 사투리 연기는 처음이다”고 한다.
“서울 토박이 아니냐”는 되물음에 ‘삐딱한 선입견 아니냐’는 듯 입을 열었다.
“뭐, 서울에서 거의 자란 셈이니까…. 하지만 우린 좀, 집단최면 같은 것에 걸린 것 같다. 아님 집단적 오해일지도. 아주 만연되어 있다. ‘저 사람은 저럴 것이다’라는 것에. 어떤 사정과 어떤 모습이 있는지 속단하는 것 같다. 그런 걸 깨고 싶다. 한껏 멋스러울 수도 있고, 처절하게 망가질 수도 있다. 이번 영화도 그런 것이다.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의외성 말이다.”
- 변신에 대한 강박이라도….
“그런 건 없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배역에 충실할 뿐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있나. 쌍둥이도 제각각 다르다는데. 영화 속 배역에 충실하는 건 변신이랄 것도 없다. 모두 류승룡이다 하는 게 문제지. 그동안 변신과 운신의 폭이 컸다. 일부러 강한 역만 한 건 아니다. 영화 시스템상 배우의 검증된 영역만 쓰곤 하는데 장진 감독은 날 너무 잘 안다. 나도 몰랐던 걸 끄집어낼 줄 안다. 그건 어느 감독도 하지 못한다.”
- 그래도 극중 인물이 너무 많아 자칫 돋보이지 못할 거라는 부담도 있었을텐데.
“각자의 개인기와 색깔이 어우러져 하나의 큰 그림이 되는 거다. 욕심내지 않고 잘 녹아드는 것. 욕심이 과하면 튀는 거다.”
류승룡은 자신의 논리를 제대로 설명할 줄 알았다. 그의 말대로 “인문학적 상식”도 가득해보였다. 배우로서 “간접체험을 하기에 여행과 책, 다큐멘터리만큼 좋은 게 없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닌 듯했다.
- 이제 마흔이다. 40대가 되니 뭐가 다른가.
“나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39살의 마지막 무렵에 ‘시크릿’을 찍었다. 그리고 마흔에 개봉했다. 나이는 생각하지 않는다.”
- 바빴다는 얘기군.
“인생이란 계획한대로 되는 게 아니잖나. 영화(연극무대 출신인 그는 35살에 ‘아는 여자’로 스크린 데뷔했다)를 하기 전엔 더욱 그랬다. 결혼 뒤 신앙을 갖게 됐고 그 이후 여러 기회가 왔다.”
- 개인사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골프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고 치자. 만일 내가 골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하면 만나는 사람마다 그럴 거다. ‘왜 끊었느냐’고. 그렇게 물으면 (누구나)곤혹스럽지 않겠나. 배우라는 직업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느 정도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영화를 홍보하는 경우도 그렇지만, 내 개인을 알리려고 인터뷰를 하는 건 아니잖나. 배우는 연기할 때가 가장 아름답다. 가장 멋있고. 굳이 아름답지 않은 것을….”(웃음)
- 현재 ‘평양성’을 촬영 중이고 ‘된장’과 ‘아이들’의 개봉도 남겨두고 있다.
“조금씩 끝과 시작이 겹쳐 찍은 작품들이다.”
- 그렇게 작품을 계속하다 보면 소모되는 아쉬움도 남지 않을까.
“맑은 샘을 얻으려면 땅을 넓고 깊게 파라고 했다. 한 작품에 올인하면 다음에 보여줄 게 없어보이지만 깊게 파면 또 그 만큼 맑은 물이 나온다. 출연 작품 수를 줄일 수도 있겠지.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할 일에 대해 신중한 편이다. 게다가 아직 내가 책임지는 작품을 해보지 않았다. 더 늦기 전에 기회가 온다면 좋겠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