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시절 임호균-에이스 최동원.스포츠동아DB
그러고보니 벌써 26년 전 일이다. 나는 1983년 말 삼미에서 롯데로 트레이드됐다. 1984년 전기리그에서 1위를 차지한 삼성은 후기리그 1위가 멀어지자 껄끄러운 OB 대신 페넌트레이스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한 롯데를 밀어줬다. 그러나 후기리그 마지막에 져주기 경기를 하면서 삼성은 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다. 또한 타격 1위를 다투던 재일교포 롯데 홍문종에게 고의적으로 9연속 볼넷을 내주면서 삼성 이만수를 타격왕으로 만들어준 것도 지금까지 부끄러운 일로 회자되고 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롯데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한국시리즈에서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삼성이 3승2패로 앞선 가운데 잠실구장에서 6차전이 열렸다. 선발투수였던 나는 4회까지 3-1로 앞서자 최동원에게 마운드를 물려줬다. 내가 삼성을 상대로 완투한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러면 확실한 카드는 최동원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6차전 승리는 7차전 승리 분위기로 이어질 수 있었기에 강병철 감독에게 “지금부터 최동원이 던지는 것이 더 승산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드렸다. 강 감독도 나의 말에 수긍했는지 5회부터 곧바로 최동원을 올렸다. 그러면서 롯데는 6차전을 잡고 3승3패 균형을 맞췄다.
나름대로 계산한 것은 6차전에서 최동원이 단순히 구원등판하는 것보다, 구원승을 챙기면 7차전에 대한 의욕을 불태울 것이라 생각했다. 나의 말을 최동원은 순수하게 받아들였고, 최종 7차전에서도 선발투수로 나서 혼신의 힘을 다해 공을 던졌다. 그리고 8회에 터진 유두열의 극적인 3점홈런으로 롯데는 한국시리즈 우승 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 영원히 기록될 최동원의 한국시리즈 4승은 그렇게 탄생했다.
당시의 판단과 결정을 그때나 지금이나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개인의 1승도 중요하지만 팀의 우승은 야구선수 생활 중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영광이기 때문이다.
이제 포스트시즌에 돌입한다. 장기 레이스인 페넌트레이스에서는 분명 선수층이 두꺼운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둘 확률이 높지만 단기전인 포스트시즌은 다르다. 전력면에서는 다소 처지더라도 집중력과 단결력이 강한 팀이 이길 수 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2003년 플로리다 말린스와 뉴욕 양키스의 월드시리즈가 좋은 예다. 플로리다가 초호화 군단 양키스를 이길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지만 예상을 뒤엎고 플로리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만큼 야구에서 팀워크는 중요하다. 크고 작은 희생들이 함께 어우러질 때 가장 값진 것, 바로 우승을 얻어낼 수 있다고 믿는다.
임 호 균
삼미∼롯데∼청보∼태평양에서 선수로, LG∼
삼성에서 코치로, MBC와 SBS에서 방송해설을
했다. 미국 세인트토머스대학 스포츠행정학
석사. 선수와 코치 관계는 상호간에
믿음과 존중, 인내가 이루어져야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