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경기는 사기에서 갈린다. 적을 무너뜨리기 전에 우리 편부터 평상심을 잃지 않아야 된다. 말은 쉽지만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먼저 반응하는 것이기에 통제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점에서 두산 김경문 감독은 초탈의 경지에 접어든 느낌이다. 2004년 부임 이래 딱 한 시즌만 빼고, 6번 포스트시즌에 올랐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감독이다. 부담감의 정도를 묻자 “두산팬들께 어떻게 보답할지만 생각한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진기자들이 다가서자 일부러 일어서주는 ‘관록’도 보였다. “저기(롯데)는 4선발까지 있지만 우리는 1,2선발 외에 나머지는 대기”라고 했지만 “5점 이상만 뽑으면 이길 것이다”라는 말도 했다. 불펜 싸움이나 투수 교체 타이밍에서는 자신 있다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이에 맞서는 롯데도 실패했던 과거 2년과 달리 이번에는 들뜸보다 차분함이 분위기를 지배했다. 정규시즌 때와 달리 홍성흔, 조성환 등 미디어 친화적 선수들도 말을 아꼈다. 독감에 시달려 29일 준플레이오프 등판 당일까지 오한이 가시지 않은 송승준의 컨디션을 감안해 불펜도 전원대기를 시켜 놨다. 롯데의 어느 선수는 “이번만은 감이 좋다. 삼성을 괴롭히려면 두산보다는 우리가 올라가야 된다”라는 말도 했다. 침착 대 침착이 지배한 준플레이오프 덕아웃 풍경이다.
잠실 |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