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 가을이야기] “너무 고맙고, 미안한 아내” 권오준 심장이 고동칩니다

입력 2010-10-08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삼성 권오준. 스포츠동아DB

“제가 지금까지 30년을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선택이 두 가지 있어요. 하나는 군대에 빨리 다녀온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 삼성 권오준(30·사진)이 힘주어 말합니다. 첫 번째 선택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야구를 할 수 있게 도왔다면, 두 번째 선택은 인생 전체를 안정시켜줬다는 겁니다.

권오준은 2003년 겨울에 아내 박지혜(28) 씨를 만났고, 2005년 겨울에 결혼했습니다. 권오준이 스물 다섯, 박 씨가 스물 셋. 젊다 못해 파릇파릇하기까지 한 부부. 하지만 두 사람은 7년을 함께 하면서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습니다. “연애 때부터 그랬어요. 저는 저대로 아내 속상할 일은 안 하려 하고, 아내 역시 언제나 제 마음을 편하게 해주려고 애썼거든요.” 게다가 어린 아내는 속도 깊었습니다. “결혼식 준비 때문에 훈련을 잘 못했으니 신혼여행은 내년에 가자”는 남편의 말에 불평 한 마디 없이 따랐습니다. 결혼 이듬해 권오준이 역대 최다 홀드(32개) 기록을 세웠으니, 가치 있는 양보였던 셈입니다.

늘 그랬습니다. 국내 최고의 불펜 투수로 군림하던 그가 두 번째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고 재활하는 동안, 아내는 갓 태어난 아들 혁준(2)을 보살피면서 묵묵히 남편을 다독였습니다. 3년. 20대 후반의 야구선수에게는 너무 길고 무거운 공백. 하지만 박 씨는 내색 한 번 없었답니다.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아기는 커가는데 저는 늘 아프기만 했으니까요. 그런데도 제 마음을 늘 편하게 해줬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그래도 이제 하염없는 기다림의 시간은 지나갔습니다. 힘든 한 해를 보냈던 권오준이 이렇게 다시 가을잔치에 나서게 됐으니까요. “가을에는 늘 컨디션도 괜찮고 좋은 공을 던졌던 기억이 나요. 큰 경기에서는 마음가짐과 집중력이 중요하잖아요. 지금 100%는 아니지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자신감을 찾아요.” 절친한 동생 오승환과 윤성환의 몫까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깁니다. 이미 먼 발치에서 팀의 포스트시즌 경기를 지켜봐야 하는 아픔을 겪어 본 그입니다. “엔트리 발표가 났을 때 함께 있었는데, 할 말이 없더라고요. 그럴 때는 위로도 소용없다는 걸 알거든요. 워낙 성실하고 능력있는 친구들이니까, 지켜봐 주고 기다려 주는 수밖에요.”

권오준은 대구구장 관중석에 앉은 아내와 아들 앞에서 힘차게 공을 뿌릴 겁니다. “부상 없이 야구했다면 좋았겠만, 누구나 겪는 일이니 어쩔 수 없잖아요. 앞으로는 아내가 제 야구를 좀 편하게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집 밖에서 아내를 자랑하면 팔불출이라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권오준은 ‘자랑스러운 팔불출’입니다.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