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 만난 견공|문학 명물 ‘SK 볼 도그(Ball dog)’ 미르] “박정권 오빠와 홈런 하이파이브 했죠 멍!멍!”

입력 2010-10-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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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멍! 정권오빠, 쐐기포 축하해요 SK 박정권(36번)이 6-4로 아슬아슬하게 앞선 6회말 1사 2루서 우중월2점쐐기포를 쏘아올린 후 덕아웃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SK마스코트견 미르와 하이파이브를 시도하고 있다.

이래봬도 개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후손 이에요
연봉은 3000만원… 신고선수들이 부러워 하죠
박경완·박정권·박재홍… SK 거포들이 내 절친
한국시리즈선 ‘홈런 하이파이브’ 특명 받았어요
1986년 인천도원구장. 삼미 슈퍼스타스를 이어 인천야구의 주인이 된 청보 핀토스는 새로운 이벤트를 선보였다. 투수 교체 시, 불펜투수는 ‘핀순이’라는 이름의 말이 끄는 마차를 타고 내야로 향했다. 마운드가 취약했던 청보는 어찌나 투수교체도 많았던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핀순이는 시즌 중, 산고의 고통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인천의 그라운드는 동물에게 금지된 구역이었다. 그리고 22년 뒤인 2008년. SK는 ‘미르(용의 순 우리말)’라는 이름의 ‘볼 도그(Ball dog)’를 문학구장에 선보였다. ‘주심에게 공 바구니 나르는 일’로 첫 걸음을 뗀 미르는 이내 인천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그녀(?)의 활약은 한국시리즈에서도 계속된다. 15일 한국시리즈 1차전을 앞두고, 미르를 만났다. 하지만 묻고 또 물어도, 그 흔한 “멍멍”소리 한번 내지 않고 눈빛으로 말하는 미르. 그래서 한국프리스비 협회 이종세(56) 회장의 도움을 얻었다. 6년 간 미르를 보살펴온 이 회장과의 인터뷰 내용을, 미르의 입으로 재구성했다.


○할아버지는 올림픽금메달리스트, 전 100만 분의 1 유전자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미르. 이제 6살이에요. 원래 이름은 독도였어요. 제가 태어나던 해 독도문제로 시끄러워서 주인님이 그렇게 지었대요. 2008년 팬들의 공모를 통해 새 이름을 얻게 된 거죠. 솔직히 처음에는 헛갈리기도 했어요. 내가 미르인지, 독도인지…. 제 할아버지는 대단한 분이셨대요. 2년에 한번씩 뉴욕에서 ‘웨스트민스터 월드 독 쇼’라는 게 열리거든요. 이를테면 ‘개 올림픽’이에요. 할아버지는 거기서 ‘수려한 용모’를 자랑하며 1등을 하신 분이래요. 몸값은 무려 5억원이었다고 하네요. 골든리트리버가 전 세계에 약 100만 마리라고 하니, 제가 100만분의 1 유전자를 물려받은 셈이죠.


○메디컬테스트·맹훈련…연봉 3000만원 쉬운 줄 아세요?

저는 1년이면 30∼60경기 정도 뛰어요. 주 임무는 주심에게 공을 가져다주고, 홈런 친 선수와 하이파이브 하는 것이죠. 1경기 50만원을 받으니, 어떤 신고 선수는 저한테 그러던 걸요? “네가 우리보다 낫다”고. 각종 이벤트 출연까지 합치면 연봉은 3000만원 정도죠. 저도 1억 정도는 값어치가 나가는 개랍니다.

제가 절대로 쉽게 돈 버는 것은 아니에요. 선수들이 메디컬테스트 받는 것처럼, 저도 SK랑 계약하고 동물병원에 갔어요. 그 때 위장 안에서 라이터만한 스프링이며, 헝겊조각들이 나왔거든요. 프로입단 못하는 줄 알고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또 수개월동안 훈련받느라 얼마나 힘들었다고요. SK 선수들 훈련량만 많은 게 아니라니까요.


○미르는 소녀가장, 영양보충 잘 해야 20마리 먹여 살리죠

저는 야구장 가는 날이면 너무 즐거워요. 아침부터 주인님이 목욕을 시켜주시고, 특식도 챙겨주세요. 훈제 연어, 소고기, 한 팩에 5000원 하는 우유까지…. 하긴 제가 우리 팀 20마리를 먹여 살리는 가장(家長)이니 그 정도는 먹어야 돼요.

야구장에 나오면 저는 빨리 공 바구니부터 달라고 해요. 그럴 때마다 주인님은 저를 진정시키고, 심판실에 데리고 가시죠. 사실, 저희들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솔직히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주심에게 공 바구니를 가지고 갔다가 그냥 돌아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많이 친해졌지요. 특히 김풍기, 최규순 심판님이 제게 과자를 많이 주세요. 저는 선수든 심판이든 과자 주는 분들이 제일 좋거든요.


○홈런 치면 저와의 하이파이브 잊지 말아 주세요

선수들 중에는 박경완, 박정권, 박재홍 선수가 저를 특히 예뻐해요. 아무래도 홈런 하이파이브 때문에 홈런타자들과 친해질 기회가 더 많았나 봐요. 사람들은 저를 복덩이라고 불러요.

이만수 수석코치님도 “너 나오는 날은 승률이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한국시리즈에서는 공 나르는 일은 안 하고, 홈런 하이파이브만 해요. 2∼3번만 하이파이브 하면 우리가 이길 수 있을 텐데…. 페넌트레이스에서는 홈런 가끔씩 치는 선수들이 하이파이브 잊고 그냥 지나쳐서 저를 민망하게 했거든요. 선수들, 한국시리즈에서는 그런 일 없기에요!문학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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