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민경삼 단장이 ‘2007년 코리안시리즈 챔피언’이란 문구가 적힌 구단 버스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선수 출신인 그에게 이번 한국시리즈 우승은 개인적으로 총 5번째, 단장으로선 첫 번째 감격이다.대구|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김성근=훈련량 독한 훈련 익히 알아”
때론 고참 유니폼 벗긴 악역도 자처
현재의 SK 밑그림 그린 프런트 수장
선수로, 매니저로, 단장으로 KS 접수2009한국시리즈 7차전. 나지완(KIA)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은 SK 선수들은 경기종료 직후, 덕아웃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멍하니 벽을 응시하는 선수들. 침묵만이 흘렀다. 이 때 한 편에서 적막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잘했어.” SK 민경삼 단장(47·당시 운영본부장)은 뜨거운 박수로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절치부심한 SK는 마침내 챔피언의 지위를 되찾았다. 그는 이번에도 그라운드 한 편에서 조용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선수로서, 매니저로서, 운영본부장으로서, 그리고 단장으로까지…. 프로야구의 여러 위치를 섭렵하며, 개인통산 5번째 한국시리즈 우승 감격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선수에서 프런트의 수장인 단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 한국시리즈 4차전이 열린 19일, SK 민경삼 단장을 만났다.
○그렇게 독하게 훈련을 했는데…
“내가 선수였는데 그 기분을 왜 모르겠어요. 나도 모르게 위로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는 지난해 한국시리즈 7차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일본 고지 캠프에서부터 시작된 지옥훈련. 선수들은 새벽별을 보며 하루를 열었고, 밤별을 보며 하루를 마감했다.
“그렇게 독하게 훈련을 했는데….” 민 단장이 선수들의 마음을 더 잘 헤아리는 이유는 그 역시 신일고 재학시절, SK 김성근 감독의 제자였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김성근=훈련량’이었어요. 다들 눈빛이 살아있었죠.”
○어머니의 리더십 ‘리더는 물 위의 낙엽 같다’
30년의 세월이 지나도 스승의 흔적은 그의 마음 곳곳에 남아있다. “언젠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었어요. ‘리더는 물위의 낙엽과 같다’고. 밑에 물이 떠받쳐줘야 낙엽이 물 위에 떠있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30년의 세월 속에서 사제지간은 감독-단장으로 다시 만났다. 현장과 프런트의 수장으로서 갈등도 있을 수 있는 관계다. “많은 사람들이 제가 많이 껄끄러울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감독님이 더 조심스럽고 힘드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 단장은 큰 전력보강 없이도, 또다시 우승을 안겨준 김 감독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버지의 리더십, ‘냉정할 때는 냉정하게’
스포츠동아 이효봉 해설위원은 “대학시절 민경삼 단장은 가장 많은 견제아웃을 잡아낸 3루수였다”고 평한다.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센스 있는 멀티내야수로, 1990년 LG 우승에 기여했다. 그 때도 한국시리즈 최종전이 열린 곳은 대구였다. 민 단장은 자신이 선배들의 그늘에 가려 일찍 선수생활을 접었기에 ‘세대교체’에 대해서는 칼같이 냉정하다. 김기태, 최태원, 김경기 등 ‘대선수’들의 유니폼을 벗기는 ‘악역’을 맡은 것도 그였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현재의 SK를 그리는 밑그림이 됐다.
○미래는 히스토리
16년 전인 1994년. 매니저로서 LG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던 순간부터 그의 꿈은 단장이었다. “당시 인터뷰 기사에도 나와 있어요. 주변 사람들은 좀 황당해했었죠.” 그리고 밑바닥부터 프런트 수업을 쌓았다. 그는 “미래는 히스토리”라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평가 속에서 미래가 열린다는 의미다. 매니저 시절 3∼4시간 자면서 선수들 뒷바라지한 수고가 지금의 그를 구성하는 것처럼…. 바로 SK의 야구가 그렇다. 민 단장은 “공·수·주에서 SK가 고급야구를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98만 관중을 문학구장으로 불러 모은 마케팅 전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야구는 결국 사람관리
“야구는 사람이 점수를 내는 유일한 구기종목이잖아요. 야구는 결국 사람관리죠. 프로야구의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2군이 더욱 활성화돼야 합니다.” 이제 한국프로야구에서 김광현 같은 천재가 아니고서야 신인이 바로 1군 무대를 밟기는 어렵다. “2군은 특성화의 공간이 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테마를 가진 선수들. 주루면 주루, 수비면 수비, 이런 선수들이 육성되도록 체계적으로 관리해야지요.” SK 우승에 기여한 조동화, 김강민 등은 2군에서 오랫동안 실력을 갈고 닦은 케이스다. 최근 4년간 3번을 우승한 팀의 단장은 현재의 기쁨에 머물지 않고, 미래의 우승반지를 이야기 하고 있었다.
대구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