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호 등 유력후보 제치고 낙점…임태훈스토리

입력 2010-10-2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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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저우여 내가 간다”  두산 임태훈이 27일 SK 김광현 대신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되며 베이징올림픽과 WBC에서 맺힌 한을 풀 기회를 잡았다. 스포츠동아DB

“광저우여 내가 간다” 두산 임태훈이 27일 SK 김광현 대신 광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발탁되며 베이징올림픽과 WBC에서 맺힌 한을 풀 기회를 잡았다. 스포츠동아DB

대표팀 승선 기대도 안해 늦잠
좌완이 갈 줄 알았는데 얼떨떨
지금 내 처지 WBC때와 같아
올림픽 중도탈락 눈물 씻겠다


또다시 극적으로 국가대표팀에 승선했다. 두산 임태훈(22)이 건강상의 이유로 대표팀에서 제외된 SK 김광현 대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27일 오전 임태훈의 교체등록을 공식 발표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이어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대표팀에 얽힌 한을 단번에 풀어낼 찬스를 다시 거머쥐게 된 것이다.


○“당연히 좌완이 갈 줄 알았다”

임태훈은 엔트리 교체 발표 직후 스포츠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김)광현이가 빠져서 당연히 좌완투수가 갈 줄 알았다”며 “아침에 일어났더니 휴대전화에 난리가 나 있더라(웃음). 아직까지 실감도 안 나고 얼떨떨하지만 기회가 다시 주어졌으니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26일 김광현의 대체요원으로 거론된 선수는 SK 이승호(20번)와 정우람, 그리고 임태훈이다. 삼성 차우찬도 유력한 후보였지만 9월 발표된 62명 예비 엔트리에 들지 못해 제외 됐다. 대표팀 코칭스태프는 24시간이 넘는 긴 회의 끝에 임태훈을 최종 낙점했다.

김시진 대표팀 투수코치(넥센 감독)는 최종결정 전날인 26일 이미 김광수 두산 수석코치에게 전화를 걸어 임태훈의 컨디션을 체크했다. 플레이오프에서 감동의 역투를 펼쳤지만, 그 뒤에는 시즌 내내 그를 괴롭혔던 허리통증을 정신력으로 이겨낸 투혼이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임태훈은 “포스트시즌이 끝난 후 열흘 동안 푹 쉬면서 많이 회복됐다. 마무리훈련이 시작되고 헬스장에서 이틀간 운동을 했는데 통증이 없다. 좋은 컨디션으로 대표팀에 합류하게 돼 기쁘다”고 몸 상태를 설명했다.


○“대표팀에 맺힌 한 2010년에 푼다”

임태훈은 태극마크에 얽힌 사연이 유독 많은 선수다. 베이징올림픽 때 대표팀에 합류했다가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에서 부진해 KIA 윤석민과 교체됐다. 결국 국제대회 금메달과 병역혜택의 기쁨도 누릴 수 없었다. 대표팀에서 탈락한 날 “아침까지 술을 잔뜩 마시고 훌훌 털어버렸다”며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당시 상처는 두고두고 그를 괴롭혔다. WBC 때도 대만과의 아시아 예선 첫 경기를 앞두고 넥센 황두성과 교체돼 대회 직전 태극마크를 단 경우다.



하지만 임태훈은 “그게 실력”이라고 말했다. “내가 만약 야구를 특출하게 잘 했더라면 ‘극적인 대표팀 발탁’이라는 드라마도 없었을 것”이라며 일련의 사건을 모두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아시안게임 대체선수로 유력하게 거론됐던 26일 역시 일언지하에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손사래를 쳤다. 오히려 “(김)광현이가 빠진 직후에 지인들로부터 ‘네가 (아시안게임에) 가겠다’는 메시지를 많이 받았는데 설레발”이라며 “처음부터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년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오죽했으면 발표 날 휴대전화를 무음으로 한 상태에서 잠을 청했을까. 결국 이날 구단 매니저와 대표팀 매니저가 ‘오후 5시30분까지 대표팀 숙소로 이동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번갈아 연락을 취했지만 오전 10시가 훌쩍 넘어서야 통화가 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의 기대치는 말 그대로 ‘제로’였던 셈이다.


○“나의 처지는 WBC와 같다”

임태훈은 이날 대표팀 합류를 위해 급히 부산으로 이동했다. 오전 잠실구장을 찾아 김경문 감독을 비롯해 구단에 인사를 건넨 뒤 오후 3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표정은 의외로 덤덤했다. 2번의 쓰라린 아픔을 겪으며 들뜨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임태훈은 심지어 “지금 나의 처지는 WBC와 다를 게 없다”고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봤다. 누군가의 탈락으로 인한 교체발탁, 심지어 본인조차 기대하지 못했던 결과다. 하지만 기회의 소중함은 어느 선수보다 잘 알고 있다. “열심히 뛰겠다”보다 “이번에는 제대로 고생하겠다”는 말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가장 경계하는 대상도 대만, 일본이 아닌 바로 자신이다. 그는 “그동안 잘 하려고 의욕만 부리다가 번번이 탈이 났다”며 “국제무대나 포스트시즌이나 큰 경기지만 그냥 똑같은 야구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임태훈의 어머니 이순자 씨는 “아침 일찍 ‘하느님, 그동안 고생한 태훈이의 손을 잡아주시고 아픈 광현이가 빨리 낫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는데 들어주신 것 같다”며 웃고는 “늦게 합류한 만큼 더 열심히 하라고 했다. 대표팀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기원했다.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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