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이것이 궁금하다] 54년 역도金 ‘주스 17병’으로 따냈다

입력 2010-11-0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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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AG 계체 직전에 메달 저울질
김성집·고종구 주스로 체중 올려 금

4회 자카르타AG 정치적 싸움 시끌
한국, 졸지에 육상·역도 불참 추락


전 세계인의 60%가 거주하는 아시아. 아시아는 이미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영역에서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동력이다. 스포츠에서도 아시아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한·중·일 3국은 이미 세계적인 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올라서 있다. 아시아 최대의 스포츠제전인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개막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아시안게임의 역사와 뒷이야기들을 Q&A 형식으로 풀어본다.


Q. 한국은 아시안게임 창설의 주축국가?

A. 아시안게임의 창설은 1947년 당시 인도의 IOC 위원이던 손디가 주도했다. 그는 1948런던올림픽에 참가한 13개 아시아국가에 초청장을 발송해 그 중 한국, 타이완, 필리핀, 버마(현 미얀마), 스리랑카, 인도 등 6개국 대표가 참가한 가운데 아시안게임 준비협의회를 열었다. 하지만 한국은 전쟁의 포화 때문에 1951년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제1회 아시안게임에 불참했다.


Q. 역도선수들이 대회가 열린 현지에서 체급을 올린 적도 있었다?

A. 한국은 1954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회 대회부터 아시안게임에 출전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이 획득한 금메달 8개 중 5개가 역도에서 나왔다. 한국은 당초 7개 체급 중 미들헤비급과 헤비급을 제외한 5체급에 8명을 출전시킬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하니 역도 강국 이란이 국내 사정으로 불참한 까닭에 한국은 일부 선수의 체급을 올려 참가종목을 늘려도 메달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김창희, 김성집, 고종구가 각각 한 체급을 올리기로 했다. 1996년 대한올림픽위원회(KOC·2009년 대한체육회로 통합)가 발간한 ‘KOC 50년사’에는 “당시 계체 직전 김성집이 3홉들이 오렌지주스 5병, 고종구가 12병을 마시고 한계체중을 넘어섰다”고 기록돼 있다. 체급을 올린 3명의 선수가 모두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의 작전은 대성공으로 마무리 됐다.




Q. 제4회 자카르타 대회에서 한국이 추락한 이유는?

A. 1962자카르타아시안게임. 개최국 인도네시아는 대회 개회 직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아시아경기연맹 가맹국인 이스라엘과 타이완에 ID카드 발급을 거부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이스라엘과 타이완이 아시안게임에서 빠진다면 아시안게임 육상에 참가하는 선수는 IAAF로부터 제명당할 것”이라고 공식발표했다. 국제역도연맹(IWF) 역시 같은 조치를 취했다. 한국은 IAAF와 IWF의 결정을 따랐고, 자카르타 대회 육상과 역도 종목에 불참했다. 한국은 2·3회 대회에서 각각 8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는데 2회 대회에서는 총7개, 3회 대회에선 총 4개의 금메달이 육상 또는 역도에서 나왔다. 금맥 종목의 출전이 불가능해지면서 4회 대회에서 한국의 금메달 개수는 4개로 줄었다.


Q. 한국이 첫 종합2위를 차지한 대회는?

A. 한국은 1998방콕아시안게임부터 3회 연속 종합 2위를 기록 중이다. 중국에 금메달 1개 차이로 뒤진 1986년 서울 대회 이후로는 1994년 히로시마 대회를 제외하면 최근 6개 대회 중 5개 대회에서 종합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최초로 종합 2위에 오른 대회는 1966년 방콕아시안게임이었다. 한국은 복싱, 사격, 역도의 선전으로 금메달 12개를 획득했다.


Q. 중국이 최초로 참가한 대회는?

A. 중국은 아시아 스포츠의 최강국이다. 1982년 뉴델리 대회 이후 아시안게임 종합 1위를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 중국의 아시안게임 첫 출전은 1974년 테헤란 대회였다. 이 대회는 북한, 라오스 등 공산권 국가와 이라크, 바레인 등 중동 국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Q. 한국의 첫 번째 아시안게임 개최는 1986년보다 앞설 수도 있었다?

A. 1966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경기연맹 총회에서는 1970년 제6회 아시안게임 개최지를 서울로 결정했다. 하지만 예산부족 등 국내사정에 따라 한국은 대회를 반납했고, 제6회 아시안게임은 결국 방콕에서 열렸다. 한국은 16년 뒤인 1986년 처음으로 아시안게임을 개최했다.


Q. 한국 복싱은 12체급을 모두 석권한 적이 있다?

A. 1980년대까지 한국의 메달 박스였던 복싱은 1986서울아시안게임 12개 전 체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겼다. 한국은 양궁에서도 1990년 베이징, 1998년 방콕, 2006년 도하 등에서 남녀개인단체 등 4개 세부종목을 모두 석권했다.


Q. 광저우아시안게임의 규모가 베이징올림픽보다 더 크다?

A. 아시아의 인구는 무려 40억명. 아시안게임은 참가 선수와 임원 규모만 놓고 보면 이미 올림픽을 앞선다. 광저우아시안게임에는 42개 종목에 걸쳐 45개국, 1만2000명이 참가한다. 반면 2008베이징올림픽에는 28개 종목에서 205개국, 1만500명이 자웅을 겨뤘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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