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찮은 대만…드림팀 “도하 굴욕, 이번엔 설욕!”

입력 2010-11-1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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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대표팀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첫판에서 대만에 패하면서 동메달에 그치는 수모를 겪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대만만 만나면 대부분 진땀승부를 벌였다. [스포츠동아 DB]

야구 대표팀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첫판에서 대만에 패하면서 동메달에 그치는 수모를 겪었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굵직굵직한 대회에서 대만만 만나면 대부분 진땀승부를 벌였다. [스포츠동아 DB]

■ 야구대표팀, 98년 이후 대만전 리뷰
4년전 AG 김재박호, 첫 경기 2-4 무릎
라이벌 맞대결마다 연장 등 진땀승부
베이징올림픽 金제물 기분좋은 추억도
1998방콕아시안게임과 2000시드니올림픽부터 야구 종목에선 프로선수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 한국야구는 프로선수의 아시안게임 및 올림픽 출전 허용에 기민하게 대처해 알찬 결실을 수확했다. 당장 프로선수 위주의, 이른바 ‘드림팀’을 구성해 1998방콕아시안게임과 2002부산아시안게임을 잇달아 제패했고, 마침내 2008년 베이징에선 아시아 국가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일궜다. 2006년과 2009년 1·2회 대회를 치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연이은 선전도 한국야구의 질적 성장을 상징한다.

이처럼 한국야구는 최근 10여 년간 화려한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라이벌들의 견제는 여전하다. 광저우아시안게임 예선 첫 판에서 상대할 대만도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적수. 프로선수의 국제대회 참가가 이뤄진 방콕아시안게임 이후의 상대전적을 면밀히 살펴보면 더욱 뚜렷해진다. 2진급 프로선수들이 참가하는 야구월드컵과 대륙간컵을 제외하더라도 그간 한국은 대만과 여러 차례 진땀 승부를 펼쳤다. 방콕아시안게임 이후 한국과 대만의 야구대결사를 되돌아본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한국은 방콕아시안게임에 LA 다저스 박찬호와 뉴욕 메츠 서재응까지 합류시킨 초대 드림팀을 출전시켰다. 더블리그로 치러진 예선에서 2차례 대만을 상대했다. 12월 7일 1차전에선 7회 16-5의 콜드게임 승리를 거두며 막강 드림팀의 면모를 과시했다. 그러나 나흘 뒤 2차전은 대만의 추격에 막판까지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선발요원인 박찬호를 8회부터 마무리로 투입하는 응급처방까지 써가며 5-4, 1점차 승리를 따냈다. 프로 12명, 아마 10명으로 구성된 원조 드림팀은 대만전 2승을 바탕으로 결승에선 일본까지 꺾고 6전승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부산아시안게임도 4년 전과 비슷한 양상이었다. 해외파를 제외한 채 국내 프로 21명, 아마 1명으로 팀을 꾸린 한국은 10월 3일 예선리그 2차전에서 대만을 7-0으로 가볍게 제압했다. 그러나 10월 9일 다시 마주친 대만과의 결승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예선에서 대만 타선을 5이닝 2안타 8탈삼진 무실점으로 잠재운 박명환이 결승에선 1-0으로 앞선 3회 갑자기 난조(3안타 1볼넷)에 빠지면서 2실점해 역전을 허용했다. 다행히 4회 김종국의 동점 적시 2루타, 장성호의 재역전 밀어내기 볼넷, 대만 투수 린위에핑의 폭투로 3점을 얻어 다시 주도권을 틀어쥔 뒤 임창용∼송진우의 황금 계투(5이닝 1실점)로 4-3 승리를 따냈다.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대회



2004년 아테네올림픽 티켓이 걸린 대회. 김재박 감독이 이끈 한국은 대만과의 1차전에 연장 10회 접전 끝에 4-5, 통한의 1점차 패배를 당했다. 김 감독의 ‘대표팀 사령탑 징크스’가 시작된 첫 판이었다. 정민태에 이어 등판한 임창용이 9회 동점을 내준 뒤 조웅천이 연장 10회 대만 포수 가오즈강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말았다. 한국은 2차전 상대인 중국에만 6-1 승리를 거뒀을 뿐 3차전 상대인 일본에 다시 0-2로 무너져 한국프로야구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2006년 WBC 아시아 라운드

김인식 감독이 사령탑을 맡은 제1회 WBC. 한국은 3월 3일 도쿄돔에서 열린 WBC 첫 경기 대만전의 2-0 승리를 바탕으로 ‘4강 신화’의 서막을 올렸다. 하지만 대만전은 결코 쉽지 않은 승부였다. 4·5회 홍성흔, 이종범의 2루타 한방씩으로 1점씩을 뽑은 한국은 9회말 2사 1·3루,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대만 대타 잔즈야오는 7회부터 등판한 박찬호에게서 2루쪽으로 빠지는 중전안타성 타구를 날렸다. 그러나 유격수 박진만이 몸을 던져 포구하고는 2루수 김종국에게 토스하는 ‘신기’에 가까운 호수비로 한국을 구했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년 전 ‘삿포로 치욕’이 ‘도하 참사’로 확대됐다. 공교롭게도 삿포로에 이어 도하에서도 대표팀 사령탑은 김재박 감독. 얄궂은 운명처럼 결승전 없이 단일 풀리그로만 치러진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한국의 첫 상대는 3년 전처럼 대만. 사회인야구 위주로 팀을 꾸린 일본을 고려하면 첫 경기 대만전은 사실상의 결승전. 대만도 LA 다저스 소속의 좌완 파이어볼러 궈홍즈를 선발로 내세워 임전무퇴, 배수의 진을 쳤다. 2·3회 선취점 기회를 놓친 한국은 4회초 대만 천용지에게 선제 솔로홈런을 허용한데 이어 요주의 대상 천진펑∼린즈성에게 잇달아 안타를 내주며 추가 1실점했다. 4회말 이진영의 좌전적시타로 1점을 따라붙었지만 5회초 곧바로 선발 손민한이 셰자시엔에게 우월1점홈런을 얻어맞아 궁지에 몰렸다. 4·6회 득점 찬스를 놓친 한국은 2-3으로 뒤진 8회 천용지에게 다시 통한의 쐐기 1점포를 내주고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2-4 패배. 기가 꺾인 한국은 이틀 뒤 일본에도 7-10으로 무릎을 꿇으며 결국 동메달에 그쳤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김경문 감독이 9전승 신화로 올림픽 금메달을 일군 베이징올림픽. 대만은 예선 5차전 상대였다. 직전까지 미국 중국 캐나다 일본을 연파한 한국을 대만은 예상 밖으로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한국의 9-8 승리를 이끈 주역은 고영민이었다. 9번 2루수로 선발 출장한 고영민은 1회 4점을 뽑은 뒤 계속된 2사 1·2루서 대만 우완 선발 양지엔푸의 2구를 받아쳐 좌중간 펜스를 넘기는 3점포를 터뜨렸다. 7-0 리드. 이 한방이 없었더라면 대만의 맹추격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정재우 기자 jac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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