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 여자하키국가대표 이선옥은 아기를 위해서라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최선을 다할 각오다. 사진 제공 | 이선옥
여자 하키 ‘1호 엄마’ 이선옥의 꿈
출산 후 컴백 9개월 만에 태극 마크
세계 올스타 녹슬지 않은 실력 과시
“후배들에게, 내 딸에게 금 쏠겁니다”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 한국여자하키는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떨칠 것으로 기대됐지만,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다. 초반에 앞서고도 잇따라 역전패를 당하며 경험부족이 아킬레스건으로 꼽혔다. 대표팀 고참이던 이선옥(29·경주시청)의 어깨도 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 석 달 뒤였다. 이선옥은 소속팀에 긴 휴가를 신청했다. 그리고 “딱 1년 뒤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했다. 2010년 11월. 그녀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벼르고 있다. 2년의 시간 동안 이선옥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출산 후 컴백 9개월 만에 태극 마크
세계 올스타 녹슬지 않은 실력 과시
“후배들에게, 내 딸에게 금 쏠겁니다”
○ 2008베이징올림픽, 최초의 아줌마 선수
여자핸드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아줌마 투혼이다. 하지만 여자하키에는 그 간 기혼선수가 없었다. 베이징올림픽에서 기혼선수는 이선옥이 유일했다. 그녀의 남편은 하키계에서 애처가로 소문난 고철윤 씨. 국제대회에 나갈 때면 공항까지 나와서 부인을 배웅해 대표팀 후배들의 부러움을 살 정도다. 이선옥은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고 생각했다. 운동을 핑계로 차일피일 2세 계획을 미루는 것도 마음의 짐이었다. 이선옥은 과감하게 ‘엄마’와 ‘국가대표 선수’의 겸업을 선언했다. 새 생명을 잉태한 것은 휴가를 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몸에 좋다는 것은 죄다 먹었다. 그리고 2009년 9월, 딸 강민을 얻었다. 하키보다 더 소중한 것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최초의 엄마선수
스틱 대신 아기를 안고 누웠다. 그렇게 단꿈을 꾸던 시간도 잠시. 다시 푸른 필드가 그리워졌다. 그리고 1년 전의 약속을 떠올렸다. 남편도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다시 스틱을 잡으려고 하니, 딸을 얻은 흔적이 남아있었다. 이선옥은 “18kg이나 체중이 불었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감량작전 돌입. 원래의 몸으로 돌아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이선옥은 “모유수유를 하면서부터 살도 빠졌다. 딸도 (운동복귀에) 도움을 준 것 같다”며 웃었다.
그리고 출산 후 6개월 만인 올 3월, 다시 소속팀 경주시청으로 돌아왔다. 주변에서는 ‘과연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있었지만, 역시 엄마는 강했다. 2008년 국제하키연맹(FIH) 월드올스타, 베이징올림픽 팀내 최다득점(5골)의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필드로 돌아온 지 3개월 만인 6월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여전히 그녀는 대한민국 최고의 최종수비수였기 때문이다. 광저우아시안게임대표팀에서는 최고참으로 주장완장까지 차고 있다.
○ 14개월 된 딸에게 바칠 아시안게임 금메달
광저우로 떠나오기 전. 이선옥은 이제 갓 돌이 지난 딸의 사진을 휴대폰에 담았다. 그리고 딸에게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엄마가 꼭 메달 따올게. 건강해야 돼, 딸.” 강민이는 엄마의 얘기를 아는 지, 모르는 지 옹알이를 하고 있었다. 마치 “엄마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는 것처럼. 고된 훈련이 끝나면 이선옥은 다시 휴대폰을 만지며 내일의 기운을 충전한다.
이선옥은 대한민국 하키의 새로운 롤 모델이다. 최초의 아줌마선수, 그리고 최초의 엄마선수까지…. 후배들은 그녀를 보며 꿈을 키운다. 그래서 그녀에게 이번 아시안게임은 더 중요하다. 여자하키대표팀 임흥신(43) 감독은 “주장으로서 후배들도 잘 이끌고 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체력적으로 힘이 들어도 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더 이를 물겠다”고 하는 이선옥. 과연 엄마의 금빛 꿈은 실현될 수 있을까. 여자하키대표팀은 13일 태국과 예선 첫 경기를 치른다.
광저우(중국) |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