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대하 머리만 떼내 스토브에 직화구이 바삭! 이맛이 새우다

입력 2010-11-18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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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화대교∼초지대교 <하>

연미정 주막집 할머니의 두부부침으로 기운을 차린 나그네들은 쇠말(자전거)을 타고 논길, 들길을 달려 강화도 북쪽을 빙 돌아 강화도의 북서쪽 모서리에 해당하는 창후리 선착장에 이르렀다.

창후리 선착장은 교동도를 연결하는 연락선이 들고나는 곳이다. 30분 전에 떠났다는 배가 아직도 지척에 있는 교동도에 닿지 못하고 바다에 떠있다.

잠 시 후 안내방송이 나온다. 현재 밀물이 들어오고 있는데 교동도 방향에서 밀려드는 조류가 거세 배가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선착장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출발한단다. 수심이 얕고 크고 작은 섬들이 많아 물살이 거센 강화만에서 뱃시간을 결정하는 것은 물때다. 보통 10분이면 건널 수 있는 코앞의 섬도 역류에 배를 띄우면 한 시간 가까이 걸리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은 ‘시간이 없네’, ‘큰일 났네’하며 웅성거렸지만 섬 주민들은 저마다 편하게 자리를 잡고 기다린다. 그들의 표정에는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서만 발견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담겨 있었다.


갯벌선 망둥이 낚시 한창
날 저물어 캠프 구축 야영모드
제철 대하에 와인도 한잔
전국투어 첫날밤은 깊어가고



장화리에서 야영하며 새우를 구워먹고 있는데 반가운 손님이 찾아왔다. ‘식객 빈대떡’ 편에 등장했던 ‘오두산 막국수’의 이승하가 멀리 파주에서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달려온 것이다. 유도선수 출신으로 깍짓동 몸집을 가진 이승하는 우락부락한 겉모습과는 달리 매우 섬세해 와인에 조예가 깊은 소믈리에이자 내공 있는 바리스타이기도하다. 그는 와인과 함께 깨지기 쉬워 좀처럼 갖고 다니기 어려운 와인잔까지 갖고 왔다. “허화백님이 북쪽 DMZ 부근에 오시면 반드시 찾아뵙겠다고 약속했는데 DMZ에서 가까운 강화도에서 자전거 여행을 하고 계시니 가만 있을 수 없었다”고. 뜻밖에 와인이 등장하면서 자전거 전국일주의 첫 밤이 한층 우아해졌다.

강화도 화도면 장화리의 한 펜션 주차장에 캠프를 마련한 뒤 평화로운 저녁을 맞은 자전거 식객. 소박하게 새우 소금구이에 소줏잔을 기울이다 와인을 갖고 찾아온 이승하 덕분에 예정에 없던 와인파티가 벌어졌다. 캠프 뒤쪽 해안에 설치된 가로등 불빛이 바다에 반사되어 야영 분위기는 황홀했다.




● 가을 제철인 망둥어 요리의 비법, 망둥어찜

집단가출 자전거 식객들은 해안선을 따라 남쪽으로 내쳐 달렸다. 중간중간 끊긴 곳이 있긴 하지만 자동차 도로와 격리된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고 몇 개 나타난 언덕도 모두가 자전거로 오르내리기에 무리가 없을 만큼 경사가 완만하다. 오른쪽에 바다를 두고 쭉 뻗은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은 농로를 달리는 한적한 맛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갯벌에서는 망둥어 낚시가 한창이다. 망둥어는 고추와 함께 큰다고 한다. 고추 모종을 심는 봄에는 손가락 크기로 먹잘 것이 없으나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이면 씨알이 굵어진다는 얘기다. 망월리에서 낚시로 잡은 망둥어를 손질하고 있던 50대 아저씨를 만났다. 가을이 깊어 망둥어는 이미 한 뼘 넘을 만큼 컸다.

아저씨가 귀띔해준 망둥어를 먹는 법은 3가지. 회를 떠먹는 수도 있지만, 무를 넣어 매운탕을 끓이면 시원한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아저씨가 제일 좋아하는 요리법은 소금, 마늘, 깨로 양념을 한 뒤 꾸둑꾸둑 말려 쪄먹는 것이란다.

“강화 사람들은 겨울철 농한기에 술추렴을 할 때 망둥어찜 안주를 주로 먹어요. 살이 결대로 쪽쪽 찢어지는데 짭조름하고 씹는 맛이 있거든요. 꽁치구이하고, 콩이 또 많이 나니까 두부도 술안주로 좋고….”

비포장도로로 60여km를 달린 뒤여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허기가 밀려온다. 망월리, 외포리를 통과해 장화리에 이르자 해는 기울었다. 이번 자전거 전국일주에서는 날이 저물면 여관에 들지 않고 침낭과 매트리스로 캠핑을 하기로 했다. 자전거 여행길을 더 깊이, 더 현장감 있게 체험하기 위해서다.

노을이 장엄한 해안제방 위에서 오늘의 야영지를 찾고 있는데 해안경계 근무 중인 군인들이 다가와 만류한다. 해안제방은 일몰 이후 민간인 출입금지란다. 하는 수 없이 인근 펜션 주인의 허락을 얻어 펜션 앞 마당에 캠프를 마련했다.

저녁 메뉴는 한창 제철인 대하구이다. 코펠에 소금을 넉넉히 깔고 인근 양식장에서 사 온 살아있는 대하를 얹어 스토브에 올려놓자 식욕을 자극하는 새우 냄새가 낮게 퍼진다.

해안길로 논둑길로 1박2일 120km…‘쇠말’은 달렸다
자전거를 탄 식객들은 잘 닦인 아스팔트길보다 좀 돌아가더라도 호젓한 들길을 선호한다. 길섶에 제멋대로 자라난 풀과 흙, 돌덩이가 MTB의 바퀴에 거칠게 닿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도 자동차의 매연과 먼지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달리는 느낌을 좋아하는 것이다. 강화도의 가을 들녘을 가감없이 가슴에 담아두려면 역시 들길을 달려야 한다. 작은 사진은 해안제방길.




“저기∼ 초지대교가 보인다”…전국 자전거 둘레길 첫 점을 찍다

자전거는 체력 소모가 큰 운동이다. 때문에 라이딩 중에는 물을 자주 마시게 되는데 호스가 달린 배낭형 물통도 쓰지만 대개는 자전거의 거치대에 물병을 꽂아서 갖고 다닌다. 정상욱 부대장은 무려 1.5리터 짜리 대형 페트병 물통을 자전거에 매달고 다녔다. 땀을 많이 흘리므로 물도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라는 설명이다. 일반적인 것보다 서너배는 더 큰 물통을 달기 위해 특수 제작된 사막 횡단용 초대형 물통 거치대도 마련했다. 물 1.5리터의 무게는 1.5kg. 자전거 무게는 몇 그램이라도 줄이기 위해 부품을 교체하기도 하는 등 안간힘을 쓰는데 자전거 바퀴 한 짝보다 더 무거운 물을 갖고 다니는 셈이다.


장어구이 비법 “세워라” 동검도의 한 장어구이집에서 만난 갯벌장어. 초벌구이를 한 뒤 먹을 만한 크기로 잘라 석쇠 위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로 세워두는 것이 자전거 식객이 추천하는 장어구이의 핵심적 팁이다.


50cm 크기 강화도 별미 갯장어 점심
고단백 식사덕…페달 밟는 발 힘 불끈
이틀전 출발했던 강화대교가 코 앞
1박2일 120km가 강행군?
‘자전거 둘레길 개척’ 이제 시작!


허화백에 따르면 새우는 석쇠에 얹어 숯불에 구워야 머리와 꼬리까지 바삭하게 익어 제 맛이다. 하지만 몸으로 때워야 하는 자전거 여행길에 화로까지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노릇. 새우 소금구이는 새우를 한 켜만 얹고 뚜껑을 연 채 구워야 맛있게 익는다. 새우를 너무 많이 넣거나 뚜껑을 닫으면 습기가 달아날 곳이 없어 구워지지 않고 삶아지기 때문이다.

숯불이 없는 탓에 새우 머리는 따로 떼어뒀다가 알뜰하게 마시멜로(marshmallow)를 굽듯 길다란 나뭇가지에 꿰어 스토브에 직화로 구웠다. 휘발유 냄새가 약간 나는 듯도 했지만 과자처럼 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강화도에서 맞은 전국일주 자전거 여행의 첫날밤은 그렇게 새우 향과 밥 짓는 내음으로 저물었다.

장어구이 비법 “세워라”
동검도의 한 장어구이집에서 만난 갯벌장어. 초벌구이를 한 뒤 먹을 만한 크기로 잘라 석쇠 위에 닿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로 세워두는 것이 자전거 식객이 추천하는 장어구이의 핵심적 팁이다.




● 강화도 별미, 갯장어 구이를 만나다

이튿날 일행은 동막리, 여차리, 흥왕리로 연결된 남쪽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강화도의 남쪽은 마니산 때문에 농토가 비좁은 탓에 간척사업으로 갯벌을 메워 논농사를 짓느라 논이 바다 쪽으로 내몰려 있다. 우리는 가급적 자동차 도로를 버리고 논과 바다가 만나는 경계선의 비포장 제방길로 코스를 이어나갔다. 오른쪽으로 장봉도와 드넓게 펼쳐진 갯벌을 바라보며 달리는 제방 위에서는 검문소를 몇 개 만났으나 주민등록증이 있으면 통과하는 데 별 무리가 없다.

점심 무렵 강화도 본섬과 둑길로 연결된 동검도로 들어갔다. 갯벌에 사는 갯장어는 강화도의 별미 중 하나. 찾아 들어간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자 이글이글 불땀 좋은 숯불화로가 식탁에 앉혀지고 이어서 50cm는 됨직한 갯장어가 나왔다.

장어의 맛을 결정짓는 것은 장어 자체의 선도와 굽는 방법이다. 불길이 강한 석쇠의 중심에서 살짝 익힌 뒤 곧바로 양 옆으로 옮겨, 장어에서 기름이 자글자글 나올 정도의 약불에 은근히 구워야 한다. 장어굽기의 핵심은 장어가 익으면 곧바로 모로 세워놓는 것. 장어는 석쇠를 떠나면 부드러운 맛을 잃기 때문에 계속 석쇠 위에 있어야 하는데 불기운이 장어 속살의 촉촉함을 빼앗아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 불기운이 닿는 면적을 줄여주는 것이다.

깻잎에 채로 썬 생강과 마늘을 놓고 된장을 떼어 넣은 뒤 마지막으로 구워진 장어를 얹어먹는다. 1kg에 6만원이나 하는 놀랄 만한 가격만 아니라면 끝없이 먹을 수 있겠다 싶을 만큼 갯벌장어는 맛있었다.

여차리에 있는 갯벌장어영어법인 직영점(어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다)에서는 좀 더 싼 가격에 갯벌장어를 먹을 수 있다고 한다.

고단백 장어를 먹어선지 점심 식사 후의 페달링에 힘이 붙었다. 허화백을 필두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강화도의 가을 벌판을 누볐다. 초지대교를 지나 출발점인 강화대교 앞 인삼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이틀간 달린 거리가 약 120km다.

평소 자전거를 길게 타봐야 한 두 시간이 고작이었던 대원들은 자전거에서 내리자 엉덩이가 저려 어기적거리며 걸었고 우리는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마라톤 코스 42.195km를 달리며 결승선이 보이는 것은 마지막 100m 정도다.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결승선을 확신하며 달려간다.

강화도는 우리의 출발점이자 결승선. 앞에 펼쳐진 길은 멀고도 멀다. 계절이 적어도 두 번 반은 바뀐 뒤라야 다시 이곳 강화도에 도착해 대한민국 자전거 둘레길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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