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코스 안부러운 ‘3인 3색’ 인간승리
‘신궁의 나라’ 그 명성은 중국에서도 이어졌다.여자양궁대표팀이 21일, 중국 광저우 아오티 아처리레인지에서 열린 2010광저우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세계 최강의 전력을 확인했다.
대표팀은 결승에서 중국과 4엔드까지 220-22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2차례 슛오프. 결국 대표팀은 30-27로 이겼다. 이로써 한국여자양궁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4연패를 기록했다.
금빛 시위를 당긴 주현정(28·모비스)과 윤옥희(25·예천군청), 그리고 기보배(22·광주시청). 그녀들은 소위 엘리트 코스만을 밟은 선수들이 아니었기에 감동은 더 컸다.
161cm 윤옥희 근력 키워 작은 키 극복
● 윤옥희, 신체적 조건의 핸디캡 딛고 선 악바리
윤옥희의 프로필 신장은 161cm. 여자양궁 선수로 작은 키다. 손가락 역시 짧은 편. 현대모비스 구자청 감독은 “손가락이 짧으면 슈팅 타이밍이 길어질 때 화살을 부드럽게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한다.
지금이야 윤옥희가 대표팀의 에이스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최정상급 실력은 아니었다. 예천군청에 입단한 이후 고된 훈련이 시작됐다. 러닝과 웨이트트레이닝으로 단신 핸디캡을 만회할 수 있는 근력을 키웠다.
결국 실업팀 1년 차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윤옥희는 대표팀 선수 가운데 슈팅타이밍이 가장 길다. 아주 미세한 감각까지 느끼면서 활을 쏘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21일 결승전에서 9·10점을 쏘면서도, “아차”하는 표정을 지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선수들은 활시위를 오래 동안 당기면서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근력이 필수다. 윤옥희는 그 교본으로 꼽힌다.
12월25일 회사원 송대선(30) 씨와의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 윤옥희는 23일 여자개인전에서 2관왕에 도전한다.
늦게 꽃핀 주현정 망설임 없는 강심장
● 주현정, 여자양궁 최초의 대기만성형 선수
주현정이 2008베이징올림픽 여자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 그녀의 이름은 낯설었다. 한국여자양궁은 김진호부터 김수녕까지 여고생 신궁들의 무대였다. 박성현, 윤옥희 등도 이미 실업초년차인 20대 초반부터는 정상권에 섰다.
현대모비스 구자청 감독은 “주현정처럼 20대 중·후반에 와서 꽃을 피운 선수는 사실상 최초”라고 했다. 8명을 추리는 대표선발전에서 항상 그녀의 이름은 9번째. 운동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지만, “정상에 서 보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결국 대표팀 자리를 꿰찼다. 특히 2008년 양궁선수인 계동현(현대제철)과 결혼한 이후 더 실력이 안정됐다는 평.
주현정은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활도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단체전에서 그녀의 장점은 더 빛을 발한다. 주현정은 윤옥희와는 정반대로 망설임 없이 활을 쏘는 스타일이다.
바람의 영향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주현정이 첫 번째로 나와 활을 당기면, 뒤 선수들은 그녀가 벌어준 시간 덕에 편안하게 활을 쏜다.
명문대 대신 신의 지킨 의리파 기보배
● 기보배, ‘필드의 채연?’, ‘양궁계의 의리녀’
대표팀 유수정 코치는 “여기까지 올라오는 선수 중에 마음속에 독이 없는 애가 누가 있겠냐?”고 한다. 막내는 운동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고달플 수 있는 있는 자리. 하지만 기보배는 털털하고 싹싹한 성격으로 선배들의 사랑을 받는다.
“국제 대회 경험이 부족하지 않냐?”고 물으면, “저 예전에 세계대학선수권도 나가봤다”고 대답할 정도로 당찬 면도 있다.
동료들은 그녀에게 “가수 채연을 닮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정작 본인은 그냥 웃고 넘긴다. 대한양궁협회 서거원 전무이사에 따르면, 국제대회 때마다 “소개 좀 시켜줄 수 없냐?”는 얘기를 가장 많이 듣는 주인공도 그녀다.
미모 뿐 아니라 의리도 갖췄다. 소년체전 4관왕 이후 고등학교 시절 찾아온 슬럼프. 고3때 서울지역 양궁명문대학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기보배는 어려운 시기부터 자신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준 광주여대로 진학했다.
당시 서울지역 대학 진학을 권유하는 부모에게 “광주로 안가면 양궁을 관두겠다”고 폭탄선언을 할 정도로 신의가 깊다. 기보배 역시 23일 개인전에서 2관왕에 도전한다.
광저우(중국)|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