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달리다보면 묘하게 끌리는 길이 있다. 옹진군 선재도의 남쪽에 자리잡은 목섬은 썰물이 되면 기다랗게 모래톱이 드러나 배를 타지 않고도 섬에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마침 물이 빠져 선재도에 들어서자마자 눈길을 사로잡은 고즈넉한 모래톱길의 유혹을 우리는 굳이 거부하지 않았다.
2.초지대교∼전곡항<상>
“학교가 끝나자마자 망둥어 낚시하러 그냥 달려가는 거야. 학교에 낚싯대를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갯벌 부근 풀 숲에 따로 숨겨두는 곳을 마련해뒀지.”자전거 행렬이 인천 송도신도시를 벗어나 소래포구가 보이는 곳에 이르자 이 곳이 고향인 정상욱 선배(한국외국어대산악부 OB/영원무역 상무)가 감회가 새로운 듯 어린 시절 추억담을 풀어놓았다.
“망둥어를 잡으면 나뭇가지에 꿰어서 선창에 있는 시장으로 가져가. 시장에는 항상 거래하는 아줌마가 있어서 한 마리에 1원이었던가...? 아무튼 망둥어를 사주셨지. 그렇게 해서 돈을 손에 쥐면 또 총알같이 달려가는 곳이 있었어. 바로 만화가게. 책장에 침을 발라가면서 진짜 열심히 읽었지.”
“망둥어 잡아 판 돈으로 만화책 꽤나 봤지”
정상욱 선배 소래포구 추억 아스라이…
이젠 관광지로 떴다던데 옛맛은 어딜갔나?
맵기만한 꽃게탕 식사에 식객들 한숨만…
허나 실망하지말자, 대부도가 기다린다!
40년 경력 ‘낙지 명인’ 찾아 힘찬 페달질
우리는 앞서거니 뒷서거니 페달링을 하면서 이제는 배도 나오고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정선배의 망둥어 잡던 까까머리 시절을 상상했다. 망둥어를 팔아 만화책을 읽었다는 대목에서 허영만 화백이 짐짓 감동했다는 듯 한마디 한다.
“야, 만화책을 열심히 봤다니 우리 정상무가 모범생이었구나. 내가 만화가로서 눈물이 앞을 가린다.”
정상욱 선배는 어린 시절에 비해 많이 변한 소래포구의 모습에 씁쓸해했다. 선배가 기억하는 어린 시절의 소래포구는 ‘들쭉날쭉 갯벌로 이뤄진 해안선이 온전하게 살아있었던 아담한 포구’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파트를 비롯해 현대식 건물들이 해안 쪽으로 포구를 포위하듯 바짝 붙어 들어서 있고 주말이면 발디딜 틈이 없을만큼 수도권에서 손꼽히는 인기 관광지가 되면서 옛 정취를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마침 점심시간이어서 포구의 식당에서 꽃게탕을 주문한 자전거 식객들은 실망했다.
꽃게가 제 철인만큼 신선하고 시원한 맛을 기대했으나 대책 없이 매운 맛만 강조된 채 풍미라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것이다. 서둘러 끼니를 때운 우리들은 시화방조제를 향해 자전거를 달리며 사라져가는 소래포구의 옛 모습과 맛을 아쉬워했다.
시화방조제 위를 달리는 자전거 식객들을 멀리 대부도에서 망원렌즈로 당겨 찍었다. 뒤로 보이는 마천루들은 송도국제도시의 고층빌딩들이다.
● 교대 ‘피빨이’로 이겨낸 12km 시화 방조제
안산과 대부도를 잇는 시화방조제의 길이는 약 12km. 우리 팀의 평균 시속이 약 16km이므로 한 시간 이내에 건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그것은 맞바람을 계산하지 않은 오산이었다. 자를 대고 그은 듯 직선으로 뻗은 방조제 길에서 초속 4m의 역풍을 맞자 좀처럼 속도가 붙질 않는다. 바람은 서쪽에서 불어와 팍팍한 콘크리트 길을 달리는 우리들의 가슴팍을 정면에서 밀어붙였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듯 힘겨운 페달링. 끝이 가물가물하게 보이는 일직선 도로는 시각적으로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렇게 바람이 세게 불 때는 이른바 ‘피빨이’를 하게 된다.
앞서가는 자전거의 뒤에 바싹 붙어 달려가면 공기 저항을 덜 받게 되어 훨씬 힘이 적게 드는데 이 것이 바로 자전거 동호인들 사이의 은어로 ‘피빨이’. 뒷사람이 앞사람에게 찰싹 달라붙은 모습이 마치 거머리가 피를 빠는 것 같다는데서 나온 말이다.
피빨이를 처음 시작한 것은 김경민. 한참을 달리다 뭔가 수상한 인기척을 느껴 뒤돌아보니 김경민이 내 자전거의 뒷바퀴에 자신의 앞바퀴를 거의 붙인 채 피를 빨고 있다.
‘아니, 이 녀석… 언제부터 내 뒤에 붙어 있었지?’
눈치를 줬더니 슬그머니 웃으며 나를 추월해 앞장을 선다.
이번엔 나더러 자신의 피를 빨란 뜻이다. 넓적한 김경민의 등 뒤에 숨어보니 앞서 달릴 때와 비교해 확연히 힘이 덜 든다.
피빨이의 효과를 알게 된 우리들은 일렬로 달리며 마치 눈이 내려 발이 푹푹 빠지는 산에서 눈을 헤치고 러셀을 하듯 교대로 선두를 바꿔가며 피를 빨고 빨렸다. 덩치가 좋은 정상욱, 김경민, 김은광의 등 뒤에 숨으면 피빨이의 효율이 좋았으나 허화백은 그렇지 못했다.
차례가 되어 대열의 선두로 나간 허화백의 호리호리하고 가냘픈 몸은 바람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최근 삽화에서 실제보다 뚱뚱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은근히 허화백에게 유감이었던 정상욱 선배는 앞장 선 허화백의 등에 대고 “형님은 피를 빨고 싶어도 빨게 없다. 막아주긴 커녕 바람을 뒤로 흘리고 다니고 있다”며 핀잔을 줬다.
■ 살짝 데친 낙지에 매콤 양념, 부추 한줌 캬! 집나오길 잘했네∼
<삽화=허영만> 최근 몇 년간 오토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시화방조제를 넘어 대부도에 들어선 자전거식객팀은 대부도 북동쪽 구봉도 솔밭야영장에 비박 캠프를 차렸는데 이곳에도 주말을 맞아 10여팀의 오토캠퍼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캠핑장비를 자동차로 싣고 다닐 수 있는 덕분에 장비의 무게와 부피에 구애를 덜 받는 오토캠핑족들은 대형 텐트는 기본이고 접이식 침대, 심지어 장작 난로에 보일러 바닥 난방 장비까지 구비하고 있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침낭과 매트리스만으로 야영을 하는 우리들과는 비록 같은 캠핑장에 있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우리는 나름대로 야생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했으나 한 밤 중에 느닷없이 쏟아진 빗속에서 우왕좌왕할 때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안락한 텐트에서 난로를 피우고 따뜻하게 잠자고 있는 그들이 몹시 부러웠다.
양순배씨가 잡고 그의 아내가 요리한 대부도 뻘낙지무침. 불과 30여초만에 번개처럼 맨손으로 양념을 하고 맛을 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간이 딱 맞아 갯마을 아낙의 음식 다루는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부도 서북 끝단 구봉도
40년 경력 낙지사냥꾼이 산다던데…
장비 하나하나 직접 고안한 수제품
신묘한 낚시솜씨에 화들짝
명인의 아내 요리솜씨도 일품!
허화백도 처음 맛본 ‘낙지 무침’
세상은 넓고 먹을건 많았다
● 대부도에서 만난 갯벌낙지의 달인…거기서 맛본 낙지무침
피빨이로 웃고 떠드는 동안 지겹게 긴 시화방조제는 어느새 끝나 있었다. 구봉도 캠핑장에서의 저녁 식사는 대부도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갯벌낙지 달인 양순배씨(51세 대부남동 중부흥 거주)가 책임졌다.
양씨는 40년 경력의 낙지 사냥꾼이다. 낙지잡이 도구도 기성품이 아니라 손수 쇠를 깎고 다듬어 만든 것을 쓰는 양씨가 밝히는 낙지잡이 방법은 두가지다.
“낙지 구멍에 손을 집어넣어 끄집어 내거나 뻘삽(뻘을 파내기 위해 특수 제작된 날이 작은 삽)으로 파내는게 첫 번째 방법이고, 낚시로 잡는 방법이 두 번째 방법이에요. 나는 주로 낚시로 잡죠.”
낙지 사냥꾼 양순배씨가 사용하는 낙지잡이 도구들. 손잡이가 긴 모종삽처럼 보이는 것이 뻘삽이고 가운데 기다란 쇠막대가 갈고리다. 쇠막대의 끝에는 에깅낚시 바늘이 용접되어있다. 모두 양씨가 직접 제작한 것들이다
양씨의 낙지 낚시는 신묘했다. 생선토막이나 게다리를 미끼삼아 낙지 구멍 근처에서 살살 흔들면 낙지가 가장 가느다란 발을 내밀어 미끼를 건드리며 탐색전을 펼치다 잠시 후 안심하고 미끼를 움켜쥐기 위해 더 많은 다리를 내밀면 갈고리로 찍어내는 것이다.
갈고리는 갑오징어를 낚을 때 쓰는 에깅 낚시바늘에 길다란 철사를 용접해 손잡이를 만든 것으로 역시 양씨가 개발해 직접 제작했다. 잡은 낙지는 양씨의 아내가 이 지역 가정집에서 즐겨 먹는다는 무침으로 요리했다.
산낙지, 연포탕, 볶음은 먹어봤으나 낙지 무침은 음식 취재 경력이 화려한 허화백도 처음.
낙지를 살짝 데친 뒤 식기 전에 바로 간장, 마늘, 깨, 고춧가루, 참기름으로 버무린 것이다. 향긋한 부추와 파를 썰어 넣은 낙지무침은 식감도 뛰어났지만 양념과 잘 어우러져 별미중의 별미였다.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자전거 식객들은 평소와는 달리 낙지무침을 향해 분주히 젓가락질을 하느라 말을 아꼈다.
한적한 해안도로를 라이딩 중 포도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일행. 집단가출호 전국일주 항해 당시 크루로 참가했던 김상덕 대원이 직접 재배해 선물한 포도다.
낙지무침의 감동 속에 날이 저물어가자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이건 좀 심하다 싶어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봤더니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한 무리의 캠퍼들이 대형 텐트를 치고 그 안에 드럼세트와 기타, 키보드, 게다가 고성능 앰프까지 가져다놓고 연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공장소인 캠핑장에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풍경.
해병대 출신인 김상덕 선배와 유도대 출신인 김은광이 평정에 나섰다. 김상덕 선배야 해병 출신이라도 이제 50줄에 접어들어 중후하고 인상이 좋지만 김은광은 다르다. ‘깍두기’ 헤어스타일에 덩치가 산(山)만한 것이다.
왕년의 돌주먹 홍수환 선수의 조카이기도 한 김은광을 대동한 김상덕 선배가 소란의 현장을 방문해 몇 마디를 나누자 다행히 별다른 불상사 없이 음악소리는 곧 멈췄다.
하지만 야영장의 수난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저녁식사 후 잠자리에 누운지 10여분만에 난데 없이 비가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비는 점점 굵어졌고, 설상가상 강풍에 천둥번개까지 가세했다.
매트리스 위에 침낭만 덮은 상태였던 우리들은 차가운 가을비에 젖어가며 허둥지둥 텐트를 쳤으나 텐트를 다 치고 나자 이미 온몸이 젖어버렸다. 자전거를 지키기 위해 4명만 텐트에 남고 모두 인근 민박집으로 철수해야했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