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 이런 일이] 81년 ‘도시로 간 처녀’ 사상첫 상영중단 ‘안내양 몸수색’ 장면 등 삭제후 재개봉

입력 2010-12-10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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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안내양의 애환과 희망을 그린 김수용 감독의 1981년 영화 ‘도시로 간 처녀’의 한 장면.스포츠동아DB

버스 안내양의 애환과 희망을 그린 김수용 감독의 1981년 영화 ‘도시로 간 처녀’의 한 장면.스포츠동아DB

“가난이 뼈저리게 느껴오는 춘궁기에 접어들면 농촌 처녀들은 방직공장 여공에 대한 꿈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10환짜리 한 장이 귀하기 짝이 없는 농촌에서 연약한 여자의 벌이로 송아지도 사고 옷가지도 장만하고 밭때기를 살 수 있는 길이란 방직공작 직공 벌이가 아니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어서던 서민들의 처지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가파른 길 위에서도 좀체로 나아지지 않았다.

1960년 2월11일자 동아일보에 담긴 시대의 풍경은 1970년대에까지 이어졌고 ‘농촌 처녀’들은 도시로 발길을 향했다. 부잣집 식모, 공단 여공…. 고향집 가계를 책임지고, 어린 동생의 학비를 조달해야 했던 그들 사이에 버스 안내양도 있었다. 1981년 오늘, 버스 안내양들의 애환과 절망, 희망을 그린 영화 ‘도시로 간 처녀’가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상영을 중단해 파문이 일었다.

소설 ‘무진기행’의 작가 김승옥이 쓴 시나리오를 김수용 감독이 연출하고, 유지인과 이영옥, 금보라가 주연한 ‘도시로 간 처녀’는 7일 전 개봉했다. 영화는 크게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당시 ‘호스티스’를 소재로 한 영화들의 홍수 속에서 신선한 소재와 선명한 주제의식이 돋보여 ‘우수영화’로 선정됐다.

하지만 12월7일 전국자동차노조총연맹이 “극중 ‘삥땅’을 의심하는 회사측이 안내양들의 몸을 뒤지는 장면, 마치 안내양들이 남자들과 문란한 생활을 즐기는 듯한 분위기” 등을 문제 삼아 안내양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문화공보부 등에 상영금지 조치를 요구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12월9일 200여명의 안내양들이 영화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고 한국노총도 비난 성명을 냈다. 결국 제작사가 12월10일 ‘도시로 간 처녀’를 극장에서 내리면서 논란은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영화의 상영 중단에 대해 이번에는 시나리오 작가와 감독, 평론가들이 들고 일어섰다. 이들은 상영 중지 조치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지나친 간섭 때문이라며 반발했다. 영화 속 허구의 내용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하는 것을 경계하고 직업에 대한 비하의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님을 주장한 것이다.

결국 파문은 제작사가 몇 개 장면과 대사를 삭제·수정해 이듬해 6월 재개봉하면서 가라앉았다. AP통신과 NHK 등 외신보도로 해외에서도 주목받은 ‘도시로 간 처녀’ 파문은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영화계 안팎의 대표적 논쟁으로 기록됐다.



‘도시로 간 처녀’의 시나리오는 작가 김승옥의 취재에서 출발했다. 당시 버스 안내양들은 새벽 4시부터 자정까지 힘겨운 노동을 이어가야 했다. 이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인식도 낮았다. 승객들의 차비 중 일부를 빼돌리는 ‘삥땅’은 당시 운수업계 은어로 1970년대를 풍미한 유행어가 됐다.

안내양들은 회사 측으로부터 수시로 몸수색을 당해야 했다. 급기야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도 있었고 이에 격렬히 항의하는 시위와 농성도 계속됐다.

인간적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항의였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사라진 버스 안내양들. 돈을 벌기 위해 도시로 나온 이들은 힘겨운 한 시대를 살아낸 우리들의 누이였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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