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은 없다” 남자 프로배구 올해의 선수 석진욱은 2주 전 무릎 수술을 받았음에도 목발을 짚고 시상식에 참석했다. 은퇴를 고민하기도 했다는 그는 “동료들이 준 상을 받으니 동료들과 하루라도 빨리 함께 뛰고 싶다”는 소감으로 감동을 안겼다.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무릎 수술후 은퇴 고민…상 받고 재기 다짐”
석진욱(34·삼성화재)은 느릿느릿 단상에 올랐다. 오른쪽 무릎을 단단하게 지탱한 깁스가 눈에 들어왔다. 왼손으로 트로피와 꽃다발을 받아든 그는 오른팔에 쥔 목발에 몸을 의지한 채 잠시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마이크 앞에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실 제가 지금 굉장히 힘든 시기예요. 광저우아시안게임에 갔다가 무릎 부상을 당해서 얼마 전에 수술을 했고, 그래서 은퇴 생각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어려울 때 동료들이 직접 뽑아주는 귀한 상을 받고 나니, 동료들과 코트에서 하루라도 빨리 함께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열심히 재활해서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눈가가 촉촉해진 석진욱의 얼굴에 벅찬 기운이 서렸다. 동시에 시상식장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은퇴 고민했던 석진욱, “동료들과 다시 뛰고 싶어”
석진욱은 지난 시즌 우승팀 삼성화재의 주장이었다. 삼성화재가 자랑하는 조직 배구의 중심이자 늘 팀이 가장 필요로 하는 선수였다. 정규리그 3연패도 그가 있어 가능했다. 하지만 지난달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출전했다가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됐다.
석진욱은 “수술한 지 2주 정도 됐다. 재활까지는 6개월 정도 걸린다”고 했다. 이번 시즌을 통째로 날린 것은 물론 아직 재활을 시작도 못한 상태다.
30대 중반에 찾아온 큰 부상은 모든 선수에게 좌절의 동의어다. 그는 처음으로 ‘마지막’과 ‘은퇴’라는 단어를 마음에 담았다. 하지만 석진욱의 발길을 돌려세운 건 바로 동료들이었다.
석진욱은 13일 서울 더플라자 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스포츠토토와 함께 하는 2010 동아스포츠대상’ 시상식에서 프로배구 7개 구단 선수 28명이 직접 뽑은 프로배구 올해의 선수로 뽑혔다. ‘끝까지 가보자’는 의지가 새롭게 샘솟은 것은 물론이다.
○김은중과 이대호, 과거의 아픔은 잊었다
석진욱 뿐만이 아니다. 각 부문 올해의 선수 대부분이 특별한 사연을 품은 채 수상대에 올랐다.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로 뽑힌 김은중(31·제주 유나이티드)은 중학교 때 동료 선수의 발에 맞아 왼쪽 시력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2007년에는 반대쪽 눈 아래 뼈가 골절되는 큰 부상을 당했다.
2년 전에는 FC 서울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한데다 해외 진출까지 난항을 겪으면서 마음 고생도 했다. 하지만 제주에 새 둥지를 튼 후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올해는 역대 최고 성적으로 만년 하위팀 제주를 정규리그 2위로 끌어올렸다.
프로야구 올해의 선수 이대호(28·롯데)도 어린 시절 부모님과 헤어져 형과 함께 할머니 손에 자라야 했던 아픔이 있다. 하지만 남다른 의지로 역경을 이겨냈고, 올해 동갑내기 신혜정 씨와 결혼하면서 생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신 씨는 “늘 몸이 아파 끙끙대면서도 롯데 4번 타자라는 자부심과 자존심 때문에 아침 일찍 운동하러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정말 짠하고 자랑스러웠다”는 말로 감동을 안기기도 했다.
○이보미, 그늘 속에서 활짝 피어난 꽃
여자 프로골프의 이보미(22·하이마트)는 아마추어 시절 신지애, 최나연, 박인비 등 쟁쟁한 별들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스스로도 “한국에 골프 잘 치는 선수가 정말 많다는 것을 실감했던 고교 시절이 고비였다”고 털어놨을 정도다. 2008년 프로 데뷔 후에도 신지애, 안선주, 서희경 등이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부모 몰래 태권도 학원에 다녔을 정도로 강단 있는 그녀에게 마침내 봄날이 왔다. 2009년 넵스마스터피스 우승으로 서서히 스타 대열에 합류했고, 올해 KLPGA 대상·상금왕·최저타수·다승왕까지 타이틀 네 개를 휩쓸었다.
강원도 속초 출신인 남자 프로골프 올해의 선수 김경태(24·신한금융그룹)와는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훈련했던 오누이 같은 사이. 이보미는 강원도 인제 출신이다.배영은 기자 yeb@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