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의 힘은 때로 강하다. 그 힘은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노랫말에서 나오기도 한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일이 있는가/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가왕’ 조용필의 노래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긴 독백의 감성은 강렬했고 노래는 6분이란 길이에도 상당한 인기를 모았다. 듣는 이들은 저마다 삶의 의미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했다. 1998년 오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부른 조용필이 아프리카 탄자니아 정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날 벤자민 음카파 대통령의 방한에 맞춰 탄자니아 정부는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자국의 대표적 관광지인 킬리만자로산을 한국에 널리 알려주었다며 조용필에게 감사패를 선사했다.
조용필은 이듬해 5월 탄자니아 정부의 초청을 받아 부인 안진현 씨와 함께 현지를 방문해 킬리만자로와 세렝게티 국립공원 등을 돌아보기도 했다.
그해 11월에는 탄자니아 명예홍보대사로 위촉됐고, 현지 정부 및 관광청 관료들이 내한해 조용필의 콘서트를 관람하기도 했다. 조용필은 2001년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탄자니아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1986년 2월 세상에 나온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작사가 양인자 씨가 노랫말을 쓰고 남편 김희갑 씨가 곡을 붙인 노래. 이미 대부분의 노래를 자작곡한 조용필은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고 싶다며 김 씨에게 노래를 부탁했다.
양 작가는 헤밍웨이의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 속 킬리만자로 정상에서 죽어간 표범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김 씨는 A4용지 절반을 채우는 노랫말을 독백으로 처리키로 하고 음반사인 지구레코드와 논의했지만 6분의 긴 길이를 음반사 실무진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당시 결단을 내린 사람은 지구레코드 임정수 회장. 그는 노래를 들은 뒤 이를 타이틀곡으로 삼았다.(1997년 11월17일자 경향신문)
이후 노래는 삶의 본질을 물으며 역경과 고난을 딛고 일어서려는 인생의 이야기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조용필은 당시 대학생 등 젊은층에게는 상대적으로 큰 인기를 얻지 못하던 때였다. 하지만 대학생들은 암울한 시국의 뒤켠에서 그 노랫말의 의미를 되새기며 흥얼거렸다. 노랫말을 바꿔부르며 시대를 풍자하기도 했다.
노래가 나온 그해 9월, KBS 라디오가 100명의 연극인을 대상으로 애청곡을 물은 설문조사 결과,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조용필은 더욱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받으며 ‘국민가수’로 떠오르는 한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무리 깊은 밤일지라도 한가닥 불빛으로 나는 남으리/메마르고 타버린 땅일지라도 한 줄기 맑은 물소리로 나는 남으리/거센 폭풍우 초목을 휩쓸어도 꺾이지 않는 한 그루 나무되리/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했기 때문이야.’
‘킬리만자로의 표범’ 후반부 독백 부분이다. 21세기가 그 첫 10년을 보내는 즈음, ‘킬리만자로의 표범’ 속 ‘나’가 되어 지나가는 한 시절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