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 아시아 투수 최다승이라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남긴 박찬호는 일본 오릭스행을 전격 결정했다. 이미 ‘국민 타자’ 이승엽이 오릭스와 계약한 터라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투타 거물이 일본에서 한솥밥을 먹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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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를 선택한 이유 4가지
1. 우승반지 확신 없는 빅리그 잔류 무의미
2. 해마다 이사 신물…안정적인 가족 희망
3. 선발 보장·교포 많은 연고지 적응 용이
4. ‘무적 1년’ 필수 한국행 걸림돌도 영향
박찬호(38)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청산하고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에 입단하게 됐다. 한국인 최초의 메이저리거로서 17년간 빅리그 무대를 누볐던 박찬호는 왜 오릭스 유니폼을 입게 된 것일까. 미국, 일본, 한국 3가지 갈림길에 서 있던 그는 왜 일본행을 택한 것일까.1. 우승반지 확신 없는 빅리그 잔류 무의미
2. 해마다 이사 신물…안정적인 가족 희망
3. 선발 보장·교포 많은 연고지 적응 용이
4. ‘무적 1년’ 필수 한국행 걸림돌도 영향
○ML 아시아투수 최다승도 기록했고…
박찬호는 올해 메이저리그 개인통산 124승을 기록했다. 일본인 노모 히데오가 보유하고 있던 123승을 넘어 아시아투수 최다승 신기록을 세웠다. 당분간 이 기록을 깰 아시아권 투수가 나타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성취감은 곧바로 목표의 상실감으로 이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빅리그에서 몇 승을 추가한다고 해서 의미있는 기록이 세워지는 것도 아니어서 그에겐 빅리그에 다시 도전할 동기부여가 사실상 없었다.
유일하게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월드시리즈 우승반지인데, 이젠 현실적으로 그를 불러줄 우승권팀이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쉬움은 남지만 ‘메이저리그에서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일본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박찬호의 깜짝 오릭스행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앞으로 안정적인 환경에서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스포츠동아DB
○안정적인 삶과 단란한 가족에 대한 열망
한때 빅리그에서도 손꼽히는 선발투수였던 박찬호지만, 최근 수년간은 ‘저니맨’이었다. 2005년부터 올해까지 최근 6년간만 해도 텍사스∼샌디에이고∼뉴욕 메츠∼휴스턴∼LA 다저스∼필라델피아∼뉴욕 양키스∼피츠버그 등 무려 8개팀 유니폼을 입었다.
처자식이 있는 그로서는 해마다, 혹은 1년에 2번씩 이사를 다니는 것도 신물이 날 만하다. 박찬호와 자주 만나는 국내의 한 측근은 “최근 찬호가 이젠 미국생활이 너무 힘들고 지친다고 털어놓더라.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했다”고 전했다.
아이들도 크면서 이젠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싶은 욕구가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그의 아내는 재일교포 3세 박리혜 씨다. 장인은 일본에서도 굴지의 부동산 재벌로 통하는 박충서 씨. 처가가 있는 일본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간다면 본인에게도 색다른 경험이지만, 아내와 어린 자식들이 안정감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한국과도 가까워 본인도 심리적으로 편할 수 있다.
○구미에 당기는 선발보장
그는 최근 “메이저리그 4개팀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협상과정을 설명했지만 빅리그 25인 로스터를 보장해줄 팀을 현실적으로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내년이면 만 38세. 이미 꿈과 목표를 이뤘고, 부와 명예를 쌓은 그가 스프링캠프에서 기약없이 어린 선수들과 자리다툼을 하는 상황도 지칠 만 하다.
일본행, 그것도 오릭스행을 결심한 데에는 1년간 연봉 2억5000만엔과 인센티브를 별도로 책정하면서 충분히 자존심을 살려준 이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선발보장이 매력적이었다. 그에게 선발은 회귀본능이나 마찬가지다. 등판이 일정하고 충분한 휴식이 보장되기에 베테랑투수인 그로서는 컨디션 조절이 훨씬 유리하다. 쉽지 않은 결정을 오릭스가 선뜻 내려줬다.
오릭스는 재일교포가 유난히 많은 오사카와 고베가 연고지다. 재일교포의 응원을 업을 수 있어 적응하기에 용이한 곳이다. 오릭스는 인기팀은 아니지만 오히려 가족적인 팀이다. 인간미가 넘친다. 성적 지상주의인 요미우리 등과 달리 외국인선수도 기회를 보장하고 참아줄 수 있는 구단이다.
○왜 한국으로 오지 않았는가?
한국프로야구 규약 때문이다. 그가 메이저리그 생활을 접었다고 해도 한국무대에서 뛰기 위해서는 1년을 통째로 쉬어야하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8월 16일 열리는 신인지명 회의 이전에 다른 신인들처럼 드래프트 신청서를 KBO에 제출해야하는데, 이때까지 해외 어떤 리그든 프로에서 뛰고 있는 선수는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없다.
박찬호는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싶다”고 누누이 말해왔지만 현 규약대로라면 사실상 1년을 무적 상태로 쉬지 않는 한 국내 프로야구에서 뛸 수가 없다. 그런 모험까지 할 수는 없는 노릇. 박찬호가 미국생활을 청산했지만 곧바로 한국무대로 오지 못하고 일단 일본에 머물며 기회를 엿보게 된 데에는 이런 제도적 걸림돌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