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베이스볼] 친구랑 약속은 월요일에…난 야구시계 따라 산다!

입력 2010-12-2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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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을 사로잡은 야구 야구의 매력에 푹 빠진 여인들. 그녀들이 털어놓는 ‘내 애인, 야구’는 어떤 존재일까. 삼성과의 플레이오프 3차전 때 잠실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고 있는 여성팬들.스포츠동아DB

<<선수가 좋아서, 응원문화가 좋아서. 저마다의 계기로 야구에 입문했다. 처음에는 ‘이런 세계도 있구나!’ 호기심이 반이었다.

그러나 이제 야구 없이는 못 사는 ‘야구홀릭’이 돼버렸다. 주위에서 “여자가 야구에 대해 뭘 알아?”라는 아니꼬운 시선으로 바라봐도 마냥 야구가 좋다.

팀당 133경기, 총 532경기를 빠지지 않고 보다보니 어느새 그라운드 위에서 치열한 머리싸움, 8개 구단이 돌아가는 상황까지 한 눈에 들어온다. 심지어 자신들의 인생조차 ‘야구시계’에 맞추고 있다.

이번 주 미스베이스볼 주제는 여성팬들이 바라본 야구의 매력이다. 대체 어떤 매력이 그녀들을 이토록 야구에 빠지게 만들었을까.>>변수 많은 야구, 찰나의 순간 승부 뒤집혀
인생 희로애락 담겨…알수록 새로운 매력


○야구는 다른 스포츠와 다르다


-롯데팬 박현수: 야구는 구기종목 중에서 변수가 가장 많은 스포츠잖아요. 저는 야구를 알게 되면서 평소 자주 안 보던 하늘을 올려다보는 버릇이 생겼어요. 하늘을 원망하거나 감사해하는 일이 빈번해졌거든요. 류현진 선수와 김현수 선수가 선전했던 모 CF의 내용처럼요.


-한화팬 구율화: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 ‘H2’혹시 보셨나요? 주인공이 야구를 무시하는 축구부원들에게 이렇게 말해요. “타임아웃이 없는 시합의 재미를 가르쳐드리죠.” 야구와 다른 스포츠의 차이는 마지막 3아웃을 잡기 전까지는 결코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아무리 큰 스코어차라도 결과를 속단할 수 없다는 것, 9회말 투아웃에서도 한순간에 승기가 뒤집어 질 수 있다는 것. 그 찰나의 순간 야구의 진정한 묘미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KIA팬 김은경: 맞아요. 저도 어릴 때는 농구를 무척 좋아했지만 1분, 1초를 다투는 농구와 달리 야구는 한 방이 있어요.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가 시작’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마지막을 모르니까, 우리 팀이 지고 있어도 끝까지 눈을 떼지 못하는 마력이 있어요.


-LG팬 송주현: 저는 누가 “야구가 왜 좋아요?”라고 물으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재밌잖아요”라고 대답해요. 9회말 1점차 2아웃 만루, 풀카운트 상황. 수많은 경우의 수가 그려지죠. 그런 의미에서 야구는 우리네 인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희로애락을 모두 느끼게 해주는 유일무이한 스포츠가 아닐까요?


-삼성팬 김빛나: 제 주위에 야구 룰이 복잡해서 입문하기 어렵다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경기를 꾸준히 보다 보면 볼과 스트라이크, 직구와 변화구가 구별되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볼배합이라든지, 주루작전까지 눈에 들어와요. 전 20년 동안 매년 100경기 이상씩 챙겨봤는데 아직도 배우는 게 많아요. 알면 알수록 새로운, 그게 야구의 진정한 매력 아닐까요?


-SK팬 박다해: 전 다른 스포츠보다 꼴찌팀이 1위팀을 이길 확률이 큰 스포츠라서 좋아요. 1위팀과 꼴찌팀이 3연전을 한다고 해서 항상 1위팀이 3연승하는 게 아니잖아요. 7점, 8점씩 나는 것보다 1-0 스코어가 더 흥미로운 것이 다른 종목과 다르고요.


-두산팬 최선경: 저는 예전에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방송인 김제동 씨가 한 얘기에 가장 공감했어요. “구기종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이 집(home)으로 들어와야 점수가 나는 따뜻한 경기.” 이 따뜻함을 저 또한 느꼈어요. 예전 질풍노도의 시기 때 아버지와 관계가 소원해졌는데 야구에 대해 얘기를 나누면서 사이가 회복됐거든요. 가족까지 이어주는 따뜻한 야구, 안 좋아할 수가 없어요.


-넥센팬 황선하: 제가 공대 출신이라 분석이나 확률 이런 쪽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다른 스포츠들은 수치로 환산하기 힘든데 야구는 기록표만 봐도 ‘대충 어떤 게임이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 타자의 NP(타자가 상대하는 투수의 총 투구수), 투수의 WHIP(이닝당 출루율), K/BB(삼진/볼넷), GO/AO(땅볼/플라이볼) 기록이 좋아요. GO/AO는 리그와 구장 특성이 다르니 한국야구에선 크게 중요하지 않은 기록일 수도 있지만 투수가 어떤 구질을 구사하는지 알 수 있는 항목이라 재밌거든요.


응원가 숙지·전문프로그램 시청은 필수
야구장 못찾을땐 인터넷 통해 팬과 소통

○야구 장기레이스를 즐기는 나만의 노하우


-롯데팬 박현수: 야구는 해마다 많은 경기를 치르지만 모든 플레이가 숫자로 기록되기 때문에 한 경기, 한 경기가 정말 중요해요. 직접 구장에 가서 보는 게 가장 좋고요. 저는 들쑥날쑥한 프리랜서 스케줄을 이용해서 주로 원정경기를 보러 가요. 도시를 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요.


-KIA팬 김은경: 저는 KIA팬들이 모인 카페 사람들과 함께 야구를 즐기고 있어요. 함께 응원하고 팀이 지면 함께 아쉬워하면서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거든요. 설령 야구를 잘 모르더라도 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다보면 더 즐거워지더라고요.


-두산팬 최선경: 저도 야구를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봐요. 만약 혼자 보게 되는 날이면 TV중계보다는 인터넷중계를 애용하는데요. 제가 자주 가는 커뮤니티사이트에 경기가 열리는 날에 게시판이 열리거든요. 열심히 댓글을 달면서 팬들과 소통하는 거죠. 하지만 무엇보다 야구장에 가는 게 가장 좋아요. 야구장에서는 왜 그렇게 시간이 빨리 가는지….


-LG팬 송주현: 저도 그래요. 처음에는 야구 용어들을 어설프게 인터넷으로 공부했는데 나중에 ‘야구를 글로 배웠습니다’가 되더라고요. 야구를 즐기는 가장 쉬운 방법은 현장에 가서 ‘소리’를 즐기는 거예요. 응원하는 함성소리, 배트에 공이 맞는 소리, 응원가를 부르는 소리들. 각 선수들의 응원가를 숙지하고 야구장을 방문하면 더 즐거워지더라고요.


-한화팬 구율화: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이 공감할 것 같은데, 야구가 길어도 지루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사랑을 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인다고 할까요. 신기하게도 모든 경기가 나름의 묘미가 있거든요. 1위팀과 꼴찌팀이 붙어도 박진감 넘치기도 하고, 스코어만 보면 꽤 시시해 보이는 게임도 내용은 무척 흥미진진한 경기가 많지요. 그 어떤 경기에도 가슴 설레는 순간은 꼭 존재하더라고요.


-삼성팬 김빛나: 저는 경기일정을 프린트해 벽에 붙여두고, 3연전씩 나눠서 우리 팀과 상대팀의 투수로테이션까지 생각해 보면서 즐기고 있어요. 늦은 밤에 방송되는 야구 전문프로그램도 꼭 챙겨보는 편인데, 우리 팀 경기를 보느라 놓친 다른 경기들을 챙겨봐야 다음 3연전 예상도가 그려지니까요.


-넥센팬 황선하: 장기레이스를 위해 팬들도 체력관리가 필요해요. 한 시즌을 보내고 나면 체중이 5kg 정도 빠지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스토브리그 때 시즌을 위해 꾸준히 운동을 해서 체력을 키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넥센팬으로서 오히려 오프시즌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해요. 저희 팀은 스토브리그가 잔인한 팀이라서요.


가을야구 보고싶어서 어학연수도 미뤄
응원하고 수다떨면 쌓인 스트레스 훌훌

○야구를 좋아하면서 내 삶이 달라졌다


-두산팬 최선경: 제 생활리듬이 야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어요. 친구들과의 약속은 무조건 월요일에 잡고, 수업 시간표도 오후 늦은 수업시간은 되도록 배제해서 짜요. 만약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DMB 야구중계가 끊기면 그 역에서 내리기도 하고요. 저 사실 어학연수 일정까지 미뤘어요. 사실 내년 10월에 출국하려고 했었는데 가을야구가 보고 싶어서 12월로 미뤘죠. 물론 귀국일정도 야구시즌이 끝나기 전이에요.


-KIA팬 김은경: 요즘 현대인들 스트레스 해소방법이 많지 않잖아요. 전 야구장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같이 응원하고 스트레스가 많이 풀리더라고요. 뻥 뚫린 야구장에서 KIA 선수들의 멋진 플레이를 보면 기분 최고죠. 그러다보니 어느새 저의 스케줄이 경기일정에 따라 변하고 있어요.


-롯데팬 박현수: 저는 야구를 통해 제 자신이 바뀌었어요.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할 수 있다’고 응원하면서 제 자신도 그런 마음과 생각을 가지게 됐다고나 할까요. 앞으로도 제가 어떻게 달라질지 궁금할 정도예요.


-LG팬 송주현: LG를 응원하면서 인생사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긴다 싶으면 지고, 다 졌네 싶으면 역전에 역전을 거듭해 이기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지를 보여주는 LG 선수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한화팬 구율화: 야구를 좋아한 건 아주 어릴 때부터여서 그로 인해 내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한 가지, 야구를 좋아하지 않았다면 전 아마도 무척 거만한 냉소주의자가 돼있었을 거예요. 야구 덕분에 소중한 사람들,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귀중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어요.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고요.


-SK팬 박다해: 매일 저녁 평균 3∼4시간씩 챙겨봐야 할 게 생기니 핸드폰 여분 배터리 챙기고 다니는 습관이 생겼어요. 친구들과 야구장에 가서 응원도 하고 실컷 수다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있고요. 아직 학생이다 보니 시험기간에 중요한 경기가 겹치면 고민이 많아진답니다. 그래도 야구를 포기하지 못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단단히 빠졌나 봐요.


-삼성팬 김빛나: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인데 스트레스를 확실히 풀어주는 친구, 야구가 있어 다행이에요. 어떤 힘든 일이 있어도 저녁에 야구를 보면서 온 신경을 집중하고 응원하다보면 다음날 아침이 활기차져요.

살면서 인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거나 풀리지 않는 문제에 봉착했을 때도 늘 야구장을 찾았어요. 외야석에 혼자 앉아 탁 트인 그라운드를 보고 있으면 생각지 않은 곳에서 답을 찾고는 했어요.


-넥센팬 황선하:
제가 원래 우울증이 굉장히 심했었는데 지금은 멀쩡합니다. 원래 방콕 기질이 심해서 밖에도 잘 안나왔는데 외출도 자주하게 되었구요. 친구들도 많이 늘었죠.

야구장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3년째인데, 지금은 (자화자찬 같지만) 꽤 잘 찍어요. 근성도 없고 뭐하나 특출하게 잘하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어디 가서 자랑스럽게 내세울 만한 특기가 생겨 좋습니다. 월요일 외엔 여가시간이 없는 게 저 뿐만은 아니겠죠?

정리 | 홍재현 기자 hong927@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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