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내려 앉는 저녁, 빌딩의 칙칙한 겉면이 갑자기 형형색색으로 빛난다. 빛깔이 빌딩 벽면을 다 채우고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는가 싶더니, 이내 영화관 스크린처럼 그림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미디어 파사드(Media Façade)’다.
미디어 파사드는 매체(media)와 건물 전면(façade, 프랑스어)의 합성어다. 건물 외벽에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설치해 건물 전체를 하나의 대형 디스플레이로 만드는 방식으로, 건물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옥외 광고의 매개체로 주로 활용된다. 미디어 파사드에는 수천 개에서 수백만 개의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극심할 것 같지만, LED 조명 자체의 소비전력이 낮고 운영 시간 외에는 전력을 사용하지 않아 의외로 운영 비용이 적은 편이다.
미디어파사드의 변천
국내에서는 2004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의 리뉴얼이 미디어 파사드의 효시로 꼽힌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자사 명품관에 미디어 파사드를 도입하면서 LED 조명이 부착된 지름 83cm의 유리디스크 4,330장을 사용했다. 조명 입자가 크기 때문에 디테일한 이미지는 구현하지 못했지만, 알록달록한 그림이 벽면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많은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연인들의 사랑 고백 메시지를 미디어 파사드에 게시하는 이벤트를 전개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미디어 파사드는 시청역 삼성화재빌딩, 역삼동 GS타워, 서울역 서울스퀘어,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사옥 등에 적용되며 진화했다. 이 중 2008년에 완성된 금호 아시아나 신사옥에는 폭 23m, 높이 92m 크기의 벽면에 총 69,000여 개의 LED 조명이 사용됐다. 서울의 영문 알파벳을 소재로 한 26개의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번갈아 전시하며,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 영상을 선보였다.
2009년에는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미디어 파사드가 등장했다. 서울대학교와 디자인회사 디스트릭트(www.dstrict.com)가 산학협동으로 진행한 이 작품은 서울대학교 문화관 건물에서 시연됐다. 이는 벽면에 LED 조명을 부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벽면에 빔 프로젝터로 직접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이미지가 움직이는 수준에서 벗어나 마치 실제 벽면이 튀어나오고 깨지는 듯한 입체 영상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초기에는 높은 설치비용으로 인해 일부 대기업 사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디어 파사드는 현재 많은 중소 빌딩 벽면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또한 단순히 건물 자체의 심미성을 높이는 용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기업 CI를 미디어 파사드에 활용하고 있으며, 갤러리아 백화점은 2007년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를 시연하기도 했다.
글로벌 컴퓨터 기업인 한국 HP도 오는 11일 신촌 밀리오레 빌딩에서 미디어파사드 영상쇼를 상영한다. 오후 6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되는 이 영상쇼는 현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어떤 이에겐 아름답지만 어떤 이에게는 공해다
미디어 파사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빛공해 문제가 제기됐다. 행인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 반짝이는 영상을 상영하다 보니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피로를 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미디어 파사드가 교통 신호기 불빛을 가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빛공해 방지 및 도시조명관리 조례’를 제정하고 2011년 1월 27일부터 시행중이다. 이 조례에 따르면 미디어 파사드는 일몰 후 30분 이후에 점등하고 23시에는 소등해야 한다. 또한 영상 연출 시간은 시간당 10분 이내여야 한다. 단, 야간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의 미디어 파사드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에 따라 표면휘도의 제한을 받는다. 이를테면 도시공원과 녹지지역은 5cd/m2 이하, 중심상업지역은 25cd/m2 이하, 관광특구와 빛축제 지역은 30cd/m2 이하로 허용된다. 문화재 보존지구에서는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할 수 없다.
줄타기는 미디어 파사드의 숙명
미디어 파사드의 태생은 마케팅이다. 기업이 많은 돈을 들여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하는 것은 자사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따라서 미디어 파사드는 다분히 옥외 광고의 성질을 띠고 있다. 하지만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문자와 제품 사진으로 구성된 주입식 광고가 아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팝아트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자의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정부가 시행하는 옥외광고물관리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택한 궁여지책일 가능성이 크다. 의도야 어떻든 미디어 파사드가 광고와 예술의 경계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트와일라잇 존(twilight zone, 어느 쪽이라고 말하기 힘든 중간지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미디어파사드의 숙명이다. 기업에게는 홍보 수단이 되어야 하며, 행인에게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해야 한다. 이제 막 태동기에 접어든 미디어 파사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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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파사드는 매체(media)와 건물 전면(façade, 프랑스어)의 합성어다. 건물 외벽에 LED(발광다이오드) 조명을 설치해 건물 전체를 하나의 대형 디스플레이로 만드는 방식으로, 건물의 시각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거나 옥외 광고의 매개체로 주로 활용된다. 미디어 파사드에는 수천 개에서 수백만 개의 조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력 소모가 극심할 것 같지만, LED 조명 자체의 소비전력이 낮고 운영 시간 외에는 전력을 사용하지 않아 의외로 운영 비용이 적은 편이다.
미디어파사드의 변천
국내에서는 2004년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의 리뉴얼이 미디어 파사드의 효시로 꼽힌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자사 명품관에 미디어 파사드를 도입하면서 LED 조명이 부착된 지름 83cm의 유리디스크 4,330장을 사용했다. 조명 입자가 크기 때문에 디테일한 이미지는 구현하지 못했지만, 알록달록한 그림이 벽면에서 움직이는 모습은 많은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갤러리아 백화점은 연인들의 사랑 고백 메시지를 미디어 파사드에 게시하는 이벤트를 전개해 많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후 미디어 파사드는 시청역 삼성화재빌딩, 역삼동 GS타워, 서울역 서울스퀘어,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사옥 등에 적용되며 진화했다. 이 중 2008년에 완성된 금호 아시아나 신사옥에는 폭 23m, 높이 92m 크기의 벽면에 총 69,000여 개의 LED 조명이 사용됐다. 서울의 영문 알파벳을 소재로 한 26개의 타이포그래피 작품을 번갈아 전시하며, 한 해의 마지막 날에는 새해를 맞는 카운트다운 영상을 선보였다.
2009년에는 입체 영상을 구현하는 미디어 파사드가 등장했다. 서울대학교와 디자인회사 디스트릭트(www.dstrict.com)가 산학협동으로 진행한 이 작품은 서울대학교 문화관 건물에서 시연됐다. 이는 벽면에 LED 조명을 부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벽면에 빔 프로젝터로 직접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이미지가 움직이는 수준에서 벗어나 마치 실제 벽면이 튀어나오고 깨지는 듯한 입체 영상을 선보여 큰 화제를 모았다.
초기에는 높은 설치비용으로 인해 일부 대기업 사옥에서나 볼 수 있었던 미디어 파사드는 현재 많은 중소 빌딩 벽면에서 만날 수 있게 됐다. 또한 단순히 건물 자체의 심미성을 높이는 용도에서 벗어나 다양한 분야로 확산되는 추세다. 많은 기업들이 자사의 기업 CI를 미디어 파사드에 활용하고 있으며, 갤러리아 백화점은 2007년 삼성전자 애니콜 광고를 시연하기도 했다.
글로벌 컴퓨터 기업인 한국 HP도 오는 11일 신촌 밀리오레 빌딩에서 미디어파사드 영상쇼를 상영한다. 오후 6시 30분부터 1시간 가량 진행되는 이 영상쇼는 현장을 찾은 사람들에게 무료로 공개된다.
어떤 이에겐 아름답지만 어떤 이에게는 공해다
미디어 파사드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빛공해 문제가 제기됐다. 행인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해 반짝이는 영상을 상영하다 보니 원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피로를 주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또한 미디어 파사드가 교통 신호기 불빛을 가려 교통의 흐름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에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빛공해 방지 및 도시조명관리 조례’를 제정하고 2011년 1월 27일부터 시행중이다. 이 조례에 따르면 미디어 파사드는 일몰 후 30분 이후에 점등하고 23시에는 소등해야 한다. 또한 영상 연출 시간은 시간당 10분 이내여야 한다. 단, 야간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의 미디어 파사드는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또한 운전자와 보행자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지역에 따라 표면휘도의 제한을 받는다. 이를테면 도시공원과 녹지지역은 5cd/m2 이하, 중심상업지역은 25cd/m2 이하, 관광특구와 빛축제 지역은 30cd/m2 이하로 허용된다. 문화재 보존지구에서는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할 수 없다.
줄타기는 미디어 파사드의 숙명
미디어 파사드의 태생은 마케팅이다. 기업이 많은 돈을 들여 미디어 파사드를 설치하는 것은 자사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따라서 미디어 파사드는 다분히 옥외 광고의 성질을 띠고 있다. 하지만 예술적인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문자와 제품 사진으로 구성된 주입식 광고가 아닌,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팝아트 형식을 빌리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기업의 자의적인 선택이라기보다 정부가 시행하는 옥외광고물관리법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택한 궁여지책일 가능성이 크다. 의도야 어떻든 미디어 파사드가 광고와 예술의 경계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트와일라잇 존(twilight zone, 어느 쪽이라고 말하기 힘든 중간지대)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미디어파사드의 숙명이다. 기업에게는 홍보 수단이 되어야 하며, 행인에게는 시각적 아름다움을 선사해야 한다. 이제 막 태동기에 접어든 미디어 파사드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의 긴밀한 협조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글 / IT동아 서동민(cromdandy@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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