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38세 하길종감독 뇌출혈
뛰어난 감각과 감성으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작품을 연출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감독들. ‘젊은 나이’의 기준은 무엇일까. 지금은 고인인 영화감독 하길종(사진) 역시 ‘젊은이’였다. 서른여덟의 나이로 세상을 등진 그는 물리적 나이 말고도 영화를 통해 젊음과 함께 호흡하고 젊음의 시선으로 새로운 한국영화를 고민했다.
1979년 오늘, 하길종 감독이 고혈압때문에 뇌출혈로 쓰러진 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잡지 인터뷰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에 쓰러진 그는 닷새 동안 의식을 되찾지 못하고 사경 헤매다 28일 결국 사망했다. 그가 숨져가던 때, 서울 충무로 스카라 극장에서는 유작이 되고만 ‘병태와 영자’가 성황리에 상영되고 있었다. 하 감독이 쓰러진 다음 날 ‘병태와 영자’의 주인공이었던 연세대생이자 배우 손정환도 입대했지만 영화는 주역들의 이런 사정과는 상관없이 관객을 맞았다.
서울대 문리대 불문학과를 나온 하길종 감독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영화미학과 연출을 공부했다. 당시 프란시스 코폴라 감독 등과 교유하며 새로운 영화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그는 귀국해 1970년대 초 실험정신과 현실에 대한 은유적 비판을 담은 ‘화분’으로 데뷔했다.
이후 ‘바보들의 행진’, ‘한네의 승천’ 등을 연출한 하길종 감독은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버리지 않았다. 특히 ‘바보들의 행진’은 세 명의 대학생을 주인공으로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당대 청년들의 고뇌를 낭만적인 이야기로 그렸다. 영화는 코믹했지만 속에 품고 있는 의미는 대단히 날카로운 것이었다. 송창식의 ‘고래사냥’과 ‘왜 불러’ 등 삽입곡은 금지곡이 되었고 하길종 감독은 당대 젊은 감독의 선두에 있었다.
당시 형의 죽음을 지켜본 동생인 연기자 하명중은 “너는 영화를 잘해라, 네가 잘못하면 영화계는 그만이야”라는 고인의 유언을 전했다.(1972년 3월2일 자 동아일보) 그 자신도 “영화를 잘해”야 했던 하길종은 이제 세상에 없다.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