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미야코지마 시민구장에서 열린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팔로스의 스프링캠프에서 박찬호가 기사누키로 부터 포크볼 그립 배우고 있다.
■ A급 투수들, 새 구종 연마에 열 올리는 이유
왜 스프링캠프인가?
투수들 ‘다음 시즌 구위 향상’ 강박관념
실전피칭 어렵지만 진정성 담긴 몸부림
연습방법·부작용 없나?
선수끼리 정보교환…시험 후 코치가 조언
투구폼에무리? ‘OK볼’ 등 대안구질 발명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최고 레벨의 투수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신무기를 ‘화두’로 들고 나섰다. 이미 A급인 투수들은 어째서 새 구종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일까? 그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며, 왜 스프링캠프 시기에 이런 발언들이 집중되는 것일까?왜 스프링캠프인가?
투수들 ‘다음 시즌 구위 향상’ 강박관념
실전피칭 어렵지만 진정성 담긴 몸부림
연습방법·부작용 없나?
선수끼리 정보교환…시험 후 코치가 조언
투구폼에무리? ‘OK볼’ 등 대안구질 발명
● 투수의 심리
기업에 비유하자면 검증된 A급 투수들은 이미 ‘확실한 수익모델’을 갖고 있다. 그것만 제대로 유지하면 밥줄이 끊길 염려는 없어 보인다. 자칫 신무기라는 신사업에 눈을 돌리다 역효과가 생길 리스크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거대기업이라도 ‘부도’라는 잠재적 불안을 갖고 있듯, 특급투수들도 ‘다음 시즌 더 나아진 구위’라는 중압감을 갖고 있다.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을 잠재우기 위한 방편으로 투수들은 새 구종을 찾는다는 것이다.
양상문 전 롯데 투수코치는 “투수라면 다 구종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다. 자기가 던지는 공이 확실해도 뭔가 부족하다는 갈증을 느낀다”고 증언한다. 투수의 새 구종 시도는 불안감과 확장욕의 결합물이다.
● 어떻게 익히나?
투수가 특종 구종이 추가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다. 과거 프로야구는 지도자가 투수에게 ‘너. 이 구질 배워’라고 시키는 편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선수 스스로가 원해서 이뤄지는 것이 보편적이다.
“선수가 먼저 코치에게 ‘가르쳐달라’고 얘기하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일단 선수들끼리 얘기를 많이 해서 정보를 교환해 배운다. 이후 연습에서 시험하는 것을 보고 코치가 조언을 해줄 수 있다.”
양 코치가 밝히는 ‘기본적’인 구종 학습 루트다. 코치는 큰 틀에서 투수를 조종하는 쪽보다 투수를 존중하는 바탕 위에 디테일한 부분만 조언해주는 추세다. 가뜩이나 예민한 투수들이 복잡해지지 않도록 배려한다.
다만 배우는 속도는 천차만별이다. 류현진처럼 습득 능력이 비범하게 빠른 투수가 있는가하면 하염없이 걸리는 투수도 있다.
양 코치는 “기본적으로 3년”이라고 했다. 봉중근만 하더라도 양 코치가 LG 투수코치였던 3년 전부터 슬라이더를 익히려고 시도했었다. 3년 이상의 마무리캠프와 봄 캠프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실전에서 뜻한 대로 컨트롤할 수 있는 새 구질의 감이 잡힌다는 얘기다.
류현진처럼 같은 구종에서 속도를 바꾸는 작업은 아예 타 구질을 익히는 것보다는 쉽지만 역시 만만찮다.
투수의 구종은 외국어 습득과 흡사한 메커니즘이라고 한다. 특정 언어를 빨리 익히는 사람이 또 다른 언어도 빨리 익히듯 구종도 마찬가지라는 관점이다. 양 코치는 “직구 커브 슬라이더를 기본구종이라고 봤을 때 이런 구질의 기본기가 잘 잡힌 투수가 다른 구종도 금방 배운다”고 밝혔다.
SK 김광현(左), 한화 류현진(友).
● 부작용은 없나?
이론적으로 따지면 모든 구종을 다 던질 수 있으면 이상적일 것 같다. 그러나 현실에서 모든 구종을 다 잘 던지는 투수는 없다. 구종끼리도 일종의 ‘상극’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커브와 슬라이더를 다 잘 던지는 투수는 희소하다. 강속구 투수는 포크볼이나 SF볼(스플릿핑거드 패스트볼)을 던지면 구속이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래서 투수들은 ‘대안 구질’을 발명해냈는데 대표적인 것이 서클 체인지업이다. 직구와 같은 투구폼에서 나오면서도 완급조절이 가능하기에 구속 저하를 방지할 수 있다. 현재 체인지업하면 소위 OK볼이라 하는 이 서클체인지업을 통칭한다.
김병현은 투구폼 상, 쓰는 근육이나 손목 회전 자체가 슬라이더에 적합하다. 싱커는 정반대의 몸을 써야 돼 무리다. 실제 김병현은 메이저리그 시절, 싱커를 배우려다 포기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싱커를 다시 던지려고 실험한다. 역설적으로 3년의 공백으로 메이저리그에서 만든 몸이 풀어진 탓에 새 구종을 익힐 수 있게 변한 것이다. 또 전성기의 직구 구속이 사라진 상태에서 싱커장착은 절실하다.
오승환은 앞으로 나오면서 던지는 투구폼 때문에 커브 구사가 용이하지 않다. 한창 때는 직구, 슬라이더 2개만으로 됐지만 재활을 겪은 뒤, 새 구종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 결과물이 투심 실험이다.
● 이 시기일 수밖에 없는 이유
사실 이 시기, 스프링캠프에서 투수를 만나면 십중팔구 “새 구질을 연습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이 때 연습한 구질치고 시즌에서 제대로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다. ‘그냥 보여주는 공으로 쓰면 되지 않느냐’라는 의문도 있지만 이는 투수의 심리를 모르는 소리다.
“볼카운트 하나에도 민감한 것이 투수다. 스트라이크와 볼을 의도대로 넣지 못하면 투수는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어도 그 공을 실전에서 던지지 못한다. 투수는 실전에서 가장 자신 있는 구질들만 던진다.” 양 코치의 설명이다.
결론. 봄 캠프에서 투수들의 신무기 운운은 듣기 좋으라는 ‘허풍’이 아니다. 진정성이 담겨있는 절박한 몸부림이다. 이 시기 외에는 새 구종을 시험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양 코치는 투수들의 새 구종 실험을 “흐뭇한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필요가 진보를 낳는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