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범근을 만나다] 차범근 “박지성 조기은퇴는 혹사 때문…”

입력 2011-03-23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차범근 SBS해설위원은 최근 유럽에 진출한 어린 후배들이 대견하다면서 슬럼프가 오더라도 스스로 믿음을 갖고 인내할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가끔은 자신의 일에서 눈을 돌려 스트레스를 풀 것을 조언했다.

차위원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차범근 “제2 차붐? 이젠 축구만큼 노는 것도 중요”
지난 해 한국축구는 남아공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원정 16강에 진출, 2002년 이후 8년 만에 또 한번의 감동을 선사했다.감동의 현장은 또 있었다. SNS(소셜네트워킹서비스) 트위터였다.

차범근 SBS해설위원이 스포츠동아를 통해 생생하게 전해준 남아공 소식은 매 순간 팬들을 즐겁게 했다. 차 위원의 트위터에는 진솔과 사랑, 유머, 그리고 진한 감동이 공존했다.

당시 ‘트위터=차붐’이라고 할 정도로 선풍적이었다. 한반도의 트위터 열풍은 그렇게 시작됐다. 월드컵 이후 차 위원은 간간이 마이크를 잡긴 했지만 공식 석상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래서 근황이 궁금했다. 아시아축구를 대표하는 차 위원은 요즘 무엇을 하고 있을까. 16일 서울 한남동 사무실에서 만났다.그는 요즈음 사단법인 차범근축구교실 회장님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놀고 있지는 않죠. 바쁘게 보냅니다. 축구교실 때문에 정신없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아이들이 많이 빠졌어요. 그래서 직접 챙깁니다. 다행히 많이 좋아졌어요.”

차 위원은 독일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하면서 축구교실을 세웠다(1990년 5월 개장). 올해로 21년째다.


-축구교실의 영역을 확대할 생각은 없습니까.

“20년이 지나면서 좀 더 많은 나눔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문화 가정이나 새터민 가정의 자녀들에게도 혜택을 주고 싶어요. 물론 서울시의 협조 등이 필요해요. 소외 계층 어린이들에게 더 많은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1953년생인 차 위원은 우리 나이로 쉰아홉이다. 인터넷 문화와는 거리가 있을 나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SNS에 흥미가 많다.

최근 박지성의 대표팀 은퇴와 관련해 글을 띄웠는데, 반향이 엄청났다. 당시 “박지성의 은퇴는 당연히 해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나 자신의 무능과 무책임함이 그 배경에 있기 때문에 어렴풋이 느끼는 미안함이 아니라 가슴 속에 뭔가가 콕 박혀 들어오는 아픔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당시 왜 그 글을 썼는지 배경이 듣고 싶습니다.

“내가 SNS를 하는 것은 그냥 살아가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예요. 박지성의 은퇴와 관련해서도 같은 이유입니다. 특히 박지성의 은퇴와 내가 축구교실을 운영하는 것에는 상당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축구의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데요. 어릴 때부터 기술을 제대로 익혀야합니다. 우리 시대에는 그렇지 못했는데, 축구 기술은 8∼12세 때 배워야 해요. 어릴 때 배운 기술은 폼이 다릅니다. 박지성 은퇴도 혹사 때문인데요. 아이들에게 맞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코 혹사시키면 안 됩니다. 독일에서 현역으로 뛸 때 일본을 보고 쇼크를 먹었는데, 그 때 후진 양성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죠.”

그가 축구교실을 연 이유 중 하나는 공부였다. 축구만이 아니라 공부와 축구를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공부하는 선수’를 모토로 2009년부터 초중고리그를 실시하고 있다. 20년 전 차범근축구교실의 운영 목표와 같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해야 돼요. 우리 축구교실은 처음부터 방과 후에 했습니다. 엘리트 선수가 될지 안 될 지도 모르는데 공부를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생활체육을 하다가 잘 하면 엘리트로 넘어가면 되는 거죠. 내가 처음 시작할 때도 15년, 20년 후에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 그렇게 됐습니다. 공부뿐만 아니라 연령에 맞는 훈련도 중요해요. 그래야 부상 위험도 줄어듭니다. 박지성 같은 케이스도 안 생길거고요.”

화제를 돌렸다. 요즘 상한가를 치고 있는 아들 두리(셀틱)에 대해 물었다.


-차두리의 CF 인기가 대단합니다. 두리 인기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두리는 막힘이 없어요. 항상 밝고, 항상 웃어요. 웃는 것 싫어하는 사람은 없죠. 또 두리는 긍정적이죠. 사람들이 웃고, 긍정적인 성격의 두리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남아공월드컵 이후 조광래 감독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독일 분데스리가다. 독일하면 차범근이 먼저 떠오르는데, 그의 후계자가 나타난 것이다.


-구자철과 손흥민이 독일에서 뛰고 있는데요.


“대견스럽죠. 그 어린 친구들이 그 정도로 잘하는 것을 보면 정말 좋은 선수들입니다. 굉장히 잘 해요(차 위원은 잘한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했다).”

80년대 분데스리가 레버쿠젠에서 외국인 선수 최고의 스타로 활약할 당시의 차범근. 스포츠동아 DB



-요즘 조금 부진한 것도 사실인데요.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잡을 줄 알아야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해요. 그 친구들은 실력은 있어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려움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인내하면서 기다려야죠.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선수들이니까요. 다만 독일이라는 새로운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힘듭니다. 저도 한 4년 걸렸습니다.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그리 간단치가 않습니다. 늘 불안하죠. 못 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적응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차 위원만의 슬럼프 탈출 비법이 있나요.

“나도 슬럼프 때는 모든 것이 정상이었는데 경기장에만 가면 안됐어요. 난 좀 독특한데, 다른 취미는 없었고, 축구를 위해 살았기 때문에 지금 시대와는 안 맞죠. 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것은 직업에서 조금 벗어나라는 겁니다. 요즘엔 다양한 놀이기구들이 있잖아요. 자기 일에서 시선을 돌려 재미난 거리를 찾아서, 스트레스를 줄였으면 합니다. 또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면서 주위 친구들을 많이 사귈 필요가 있습니다.”


-분데스리가만의 특징이 있나요.


“국민성하고 관계가 있어요. 독일은 사회구조가 굉장히 전문가 돼 있습니다. 축구도 마찬가지죠. 공격은 못 해도 수비수는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합니다. 자기만의 역할이 다 있죠. 포지션의 전문화인데요. 독일에는 맨투맨 수비가 있습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죠. 그런 독특한 수비 때문에 상대는 힘들죠. 하지만 때가 되면 골을 넣는 공격수가 나타납니다. 그림 같은 크로스를 올리는 선수도 있고요. 외국인 선수가 거기서 성공하기가 진짜 어렵습니다. 독일은 월드컵 등에서 항상 최 상위권입니다. 그런데 깔끔하게 올라간 적은 없죠. 하지만 독일은 한쪽 벽이 허물어져도 다른 쪽이 버텨주니까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실속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보기엔 엉성한 것 같지만 실속이 있죠. 또 요즘은 유럽연합(EU)의 소질 있는 선수들이 독일 국적을 가지고 뛰면서 기술도 좋아졌습니다. 다음 월드컵이 기대되는 이유 입니다.”


-유럽에 있는 태극전사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축구를 좋아하고, 축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좋은 경기를 보여주면서 국민들에게 애국을 일깨우고, 축구 위상을 높여줬으면 좋겠네요. 또 축구만 잘 한다는 그런 말 보다는 다른 쪽으로도 잘 하는 선수가 됐으면 합니다. 축구를 위해 일종의 사명감도 좀 가지고 살았으면 하고요. 지금은 시대가 좋아서, 마음껏 나갈 수 있으니까(해외진출). 우리 선배들은 더 어려운 환경에서 축구를 했습니다. 그것이 거름이 됐다고 보죠. 축구를 아끼고 더 좋은 후배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줬으면 합니다.”


-스포츠동아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할게요.

“스포츠동아는 처음부터 일관되게, 상당히 격이 있는 신문을 만들려고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 신문입니다.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신문으로 도약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