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터 놀음이다. 세터의 손놀림에 경기 흐름이 바뀐다. 공격수가 돋보이는 것도 훌륭한 세터 덕분이다. 국내 최고 세터는 흥국생명 김사니(30)다. 주장으로 리더십이 강하다. 시즌 초반 꼴찌였던 흥국생명이 챔피언결정전까지 오른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김사니의 힘’이라고 입을 모은다. 도로공사와의 플레이오프에서 5차전까지 피 말리는 접전에서 살아남은 것도 김사니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8일 김사니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 꼴찌에서 챔프전까지 진출했다. 원동력은.
“초반 4연패로 좌절을 겪고 있을 때, 저희 사장님(흥국생명 대표)께서 큰 격려를 해주셨다.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셨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 바닥을 탈출할 수 있는 힘이었다. 자신감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는 선수층이 두텁지 못하다. 뛰어야할 선수들이 정해져있다. 사장님께서 ‘너희끼리 잘 해내야한다’는 말씀에 모두 똘똘 뭉쳤다.”
- 세터이자 주장이다. 주장으로 산다는 것이 힘들지 않나.
“주장이 흔들리면 안 된다. 책임감이 중요하다. 리더십도 마찬가지고. 모범적으로 행동해야하고, 솔선수범해야한다. 선수와 감독의 중간 역할도 해야 한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그 때는 쇼핑이나 음악 감상도 하지만, 분석관이 전해준 경기 자료를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스트레스가 많긴 하지만 경기를 잘 했을 때 보람도 느낀다. 후배들과의 관계가 중요한데,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다. 지친 후배가 있으면 문자를 보내 격려해준다. 마음을 잡고 다시 활기차졌을 때 기분이 좋다. 감독과도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이 모든 것이 주장의 역할이 아닐까.”
김사니는 지난 시즌 KT&G(인삼공사) 주장을 맡아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했다. 당시 상대가 현대건설이었다. 공교롭게도 올해도 똑 같이 현대건설과 우승을 다툰다.
- 지난 시즌 우승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생겼을 것 같은데.
“지난 해 첫 우승을 경험했다. 장소연 언니가 경기를 이겼을 때와 졌을 때의 대처 방법 등 많은 조언을 해줬다. 맏언니의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플레이오프나 챔프전은 실력차이가 크지 않다. 그래서 팀워크가 가장 중요하다. 같은 마음으로 가느냐아니냐, 욕심을 부리느냐아니냐가 승패를 가를 것이다. 그래서 똘똘 뭉쳐야한다. 우리 선수들은 스스로를 잘 알기 때문에 개인적인 것은 없애고, 하나만 보고 있다.”
흥국생명은 올 시즌 정규리그에서 현대건설에 6전 전패를 당했다.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현대건설 우승을 예상하는 전문가가 많다.
- 현대건설을 상대하게 됐는데.
“현대건설은 강하다. 공격력이 좋다. 파워도 뛰어나다. 높이도 있다. 어떤 팀은 한쪽만 막으면 되지만, 현대건설은 이 선수 저 선수를 마크하면 또 다른 선수가 나타나 괴롭힌다. 그만큼 상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배구는 공격만 잘 한다고 이기는 것은 아니다. 저희 나름대로 작전이 있다. 또 우리는 정규리그 때 보다 좋아지고 있다.”
-나름의 작전이란 게 뭔가.
“외국인 선수 미아는 플레이오프 때 잘 했다. (한)송이가 조금 부진했는데, (공격이) 한쪽으로 몰린 게 사실이다. 이런 식은 해결책이 아니다. 챔프전 때는 국내 선수들을 다양하게 이용할 생각이다. 물론 미아도 적절하게 쓰고. 국내 선수들을 이용해야 현대를 꺾을 수 있다.”
- 미아는 어떤 스타일의 선수인가.
“성격이 좋다. 활발하고, 적극적이다. 또 다른 외국 선수와 달리 보수적인 면도 있다. 자기 몸 관리도 잘한다. 좋은 선수다”
- 솔직히 어떤 결과를 예상하나.
“잘 모르겠다. 현대건설이 어떤 상황인지 파악이 안 된다. 저희 상황도 마찬가지이고. 2번 정도 경기를 해보면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 선수들은 프라이드가 강하다. 후배들은 초년생 때 우승을 해본 경험이 있는 선수들이다(흥국생명은 6차례의 V리그에서 3번 우승했다). 한마디로 우승의 맛을 안다. 그게 강점이다.”
최현길 기자 (트위터@choihg2)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