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그때의 오늘] 거창한 ‘희망사항’…그런 여자는 없더라

입력 2011-04-12 07: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1990년 변진섭과 노영심의 대담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나오는 여자/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내 고요한 눈빛을 보면서 시력을 맞추는 여자/…/내가 돈이 없을 때에도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자/멋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여자/….’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다면 어떤 남자가 마다할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정말 거창한’ ‘희망사항’일뿐이다. 그래서 여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런 여자한테 너무 잘 어울리는/난 그런 남자가 좋더라’고.

1990년 오늘, 그 ‘거창한 희망사항’을 노래한 남자와 여기에 ‘그런 남자가 좋더라’고 말한 여자가 만났다. 가수 변진섭(사진)과 작사·작곡가 노영심이다. 두 사람은 당시 동아일보가 마련한 대담에서 당시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은 노래 ‘희망사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1990년대 초반 젊은이들의 이성관과 세태를 그대로 드러낸 ‘희망사항’은 얼핏 여성들을 바라보는 남성들의 보수적 시각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이화여대 3학년 재학 시절 이 노래를 만든 노영심은 “노래 속에 담은 여성상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변진섭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변진섭은 “여성이 의식도 갖추되 빨래와 밥도 잘하는 쪽이어야 한다”고 말했으니, 어떤 시각으로 보자면 보수적일 수도 있겠다.

‘희망사항’은 당시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다양한 노랫말의 변주로 퍼져나갔다. 대학가에서는 ‘절망사항’이라는 개사곡이 불리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청바지가 안 어울리는 남자/밥을 조금만 먹어도 배나오는 남자’ 등 재치발랄하게 노랫말을 바꿔부르면서 사회와 세태를 풍자하기도 했다. 어쨌든 변진섭이 노래한 ‘그런 여자’는 대체 세상에 존재하고나 있을까. 그래도 뭇남성들은 여전히 말할 터이다. ‘난 그런 여자가 좋다’고.

윤여수 기자 tadada@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tadada11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