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3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관훈동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 ‘킵워킹펀드 드림갤러리’에서 고성일 대표가 워크숍공연장 전시물을 배경으로 활짝 웃고 있다(큰 사진). 고 대표(왼쪽)가 심사위원 박광현 영화감독으로부터 우승상을 받고 있다(작은 사진).
■ 조니워커 ‘킵워킹 펀드’ 우승자 고성일
“뮤지컬 ‘간 보는 워크숍 극장’ 만들겠다”
5개월간 공 들인 ‘꿈의 기획서’로 승리
아버지 고우영 화백의 도움? 열정이죠!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건물 지하에 뮤지컬창작소 ‘불과얼음’은 있었다. 조니워커 ‘킵워킹펀드’의 2기 선정자 고성일(41) 씨는 ‘불과얼음’의 대표다. 의자에 앉자마자 “지하라 좀 있으면 추워지실 겁니다”하며 난방기구를 켰다. 밖은 초여름의 날씨였다.“뮤지컬 ‘간 보는 워크숍 극장’ 만들겠다”
5개월간 공 들인 ‘꿈의 기획서’로 승리
아버지 고우영 화백의 도움? 열정이죠!
조니워커에 제시한 고 씨의 꿈은 뮤지컬 워크숍 전용극장의 설립이었다.
뮤지컬 공연장이 아니라, 워크숍 전용극장이다. 워크숍은 정식으로 공연이 제작되기 전, 속되게 표현해 ‘간을 보는’ 작업이다. 과연 작품성이 있을지, 관객의 반응은 어떨지 관계자들 앞에서 선을 보이는 것이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는 워크숍 전용극장이 없다.
“유학(미국 뉴욕대학교 뮤지컬학과)을 마치고 2002년에 돌아왔는데 굉장히 외로웠어요. 우리나라 창작뮤지컬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전문화된 교육과정과 작품을 만들어내는 검증된 시스템인데, 아무리 얘기를 해도 몰라주더라고요. 지금은 ‘리딩(독회·배우들이 대본을 읽는 간이공연)’이 많이 활성화됐지만 사실 우리가 처음으로 한 겁니다.”
고씨는 ‘삼국지’, ‘수호지’를 그린 고(故) 고우영 화백의 아들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예술적 소양은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았다. 한 우물을 파고 또 파는 열정도 닮았다.
뮤지컬 공연 티켓을 사기 위해 밥을 굶으며 대학 시절을 보낸 그는 1997년 중앙대 연극학과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 덕분에 편히 유학생활을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집에서 학비를 원조 받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딱 끊었다. 고씨의 단골식당에서 아내가 아르바이트를 해 학비를 벌었다. 고 씨는 “아버지가 부자지 내가 부자는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고 했다. 고 씨의 목표는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웨스트엔드 작품 못지않은 한국 창작뮤지컬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사람이다.
‘불과얼음’은 배우가 아닌 작곡가, 작사가, 극작가가 단원이다. 고 씨는 ‘킵워킹펀드’에 대해 “기획서 한 장 잘 만든다고 뽑아주는 게 아니라, 5개월이란 긴 시간 동안 자신의 꿈에 대해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고마웠다”고 했다.
“‘이게 돈이 되느냐’가 아닌 ‘당신의 꿈이 무엇이냐’를 묻더군요. 길은 다르지만 각자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것도 너무 좋았어요. 꿈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린애 같고 순수합니다.”
고 씨는 “언젠가 진정한 명작 뮤지컬작품을 만들 겁니다. 1억원의 종잣돈이 생겼으니 이제 시작인 거죠. 앞으로 6개월 동안은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러 다닐 겁니다”라며 손을 내밀었다.
따뜻하면서도 힘이 있는 손이었다.
그 손에 쥐어진 꿈은 목표를 향해 ‘계속에서 나아갈’ 것이다.
● 조니워커 ‘킵워킹 펀드’란
세계적인 위스키 브랜드 조니워커의 글로벌 캠페인 ‘킵워킹(계속해서 걸어가라·Keep Walking) 펀드’는 세상에 도전과 희망의 메시지를 심어줄 다섯 명을 선정해 각각 1억원씩, 총 5억원을 2년간 지원하는 ‘꿈 공모전’이다. 대만, 호주, 태국에 이어 한국에서 진행했으며 2010년 1기에서는 복싱코치 박현성, 영화감독 신우석, 산악사진가 조준, 싱어송라이터 권용범, 다큐멘터리 감독 이진혁이 선정됐다.
2기는 2010년 11월부터 모집을 시작했고 총 1450명의 지원자 중 카레이서 강민재, 정크아티스트 김대진, 작가 김수영, 극작가 고성일, 시각예술가 성태훈이 행운을 안았다. 역경에도 멈추지 않는 진보정신을 뜻하는 ‘킵워킹’은 조니워커의 모토이기도 하다.
사진제공|조니워커
양형모 기자 (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