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짭조름한 실치부침개 아삭아삭 파김치…

입력 2011-05-17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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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군산항에서 출발한 연락선을 타고 선유도에 도착한 일행들이 배에서 내려 선착장 램프를 올라오고 있다.
2. 선유도 동네 청년들이 잡은 맛조개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는 필자. 지금까지 본 맛조개 중 가장 큰 놈이었다.
3. 선유도와 다리로 연결되어있는 장자도에서의 점심식사. 날씨가 좋아 식당 바깥의 평상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실치부침개와 파김치, 갓김치는 시원한 바람, 따스한 햇살 아래 더욱 풍부한 미각을 선사했다.

8.보령~ 군산<하>
■ 자연과 하나된 맛…장자도 실치부침개


“도저히 눈에 밟혀 안되겠다, 선유도로 가자”
대장 한마디에…다시 새만금 방조제로 GO  
신선이 놀다갔다는 섬 선유도 도착
썰물 빠진 백사장선 맛조개 사냥 한창인데
당장 뛰어들고 싶건만…아! 마지막 배 오후 4시

“도저히 눈에 밟혀 안 되겠다. 돌아가자.”

변산해변에서 야영을 마치고 이른 새벽부터 백사장을 거닐며 바다 멀리 한 곳을 응시하던 허영만 화백이 아직까지 침낭에서 뭉기적거리고 있는 대원들에게 말했다. 어제 해질 무렵 새만금 방조제를 달릴 때 지나쳤던 섬 선유도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선유도는 새만금 방조제의 서쪽 꼭짓점으로 이제는 방조제로 연결되어 육지로 변한 신시도에서 서쪽으로 3km 지점에 떠있는 섬이다. 고군산군도를 이루고 있는 여러 섬들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데 ‘신선이 놀다갔다’는 이름처럼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선유도의 치명적 유혹에 빠진 대장의 한마디에 나머지 대원들은 모두들 고민스러웠다. 선유도를 가기 위해서는 힘겹게 주파한 34km의 새만금 방조제를 다시 넘어 거꾸로 군산항까지 되짚어간 뒤 여객선을 타야하기 때문이다.

전국 해안선일주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갈 길이 멀고먼데, 고작 섬 하나를 들러 가기 위해 어렵사리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러다가 언제 전국일주를 마치겠느냐는 푸념도 있었으나 대장의 뜻은 이미 확고했다. 오늘 안으로 변산국립공원과 선운산도립공원을 지나 굴비로 유명한 영광까지 진출하려던 계획은 즉석에서 변경되어 오전 9시30분 군산발 선유도행 여객선을 탄 우리들은 한 시간여 후 선착장에 발을 디뎠다.

비좁은 선유도 선착장은 여객선에서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관광객들로 콩나물시루. 게다가 민박집이나 식당 주인들이 예약한 손님을 수송하기 위해 몰고나온 전동카트 수십 대가 인파와 뒤섞여 연출된 아수라장은 자전거를 끌고 통과하기가 버거웠다. 그런 와중에 어제 지났던 새만금 방조제가 다시금 코앞에 있는 것을 보니 힘이 쭉 빠진다. 대체 이런 곳을 왜 굳이 왔던 길을 돌아가면서까지 찾아온 것인지 적이 실망스럽다.

그러나 실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붐비는 선착장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파출소쯤에 이르자 비로소 한적하고 찬란한 고군산군도의 진면목이 마치 대형 스크린에 영화가 시작된 것처럼 눈앞에 시원스럽게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이산을 쏙 빼닮은 장엄한 바위산 망주봉을 바라보며 선유도 해수욕장 모래톱 위로 난 길은 꿈결처럼 달콤했다. 파란 하늘, 그보다 더 파란 바다, 그리고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빛나는 백사장…. 건너편에 떠 있는 대장도와 장자도는 마치 신기루처럼 비현실적이었다.


● 맛조개 잡는 최고 비결은 맛소금!

옥돌해변을 찾아가는 길에 바구니를 들고 가는 한 무리의 청년들을 만났다. 바구니 안을 들여다보니 씨알이 굵어 먹음직스런 맛조개가 그득하다. 아침나절에 썰물이 빠져나간 백사장에서 잠깐 캔 것이 바구니로 한 가득이라니. 맛조개 사냥에 필요한 것은 맛소금 -그냥 소금이 아니고 꼭 화학조미료가 첨가된 맛소금이어야 한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이다.

맛조개가 숨은 곳은 모래밭에 작은 구멍이 나 있어서 알 수 있는데 그 구멍에 소금을 살살 뿌리면 조개가 촉수를 쭈∼욱 내밀고 그 때 잡아채면 되는 것이다. 맛조개로 탕을 끓이면 얼마나 맛있는지 알고 있기에 마음 같아서는 우리도 바짓가랑이를 둥둥 걷어부치고 조개를 캐고 싶었다. 그러나 군산항으로 돌아가는 오후 4시 마지막 배가 떠나기 전 이 아름다운 섬을 몽땅 둘러봐야 했으므로 입맛만 다실 수밖에….

선유도를 한바퀴 휘돈 뒤 다리를 건너 장자도를 지나 대장도로 넘어간다. 섬을 연결한 다리는 폭이 좁은 탓에 자동차는 통행이 어려워 마을 주민들은 자동차 대신 전동카트를 타고 다니는데 대부분 골프장에서 쓰던 것들이어서 ‘OO컨트리클럽’이라는 로고가 그대로 남아있어 눈길을 끈다.

대장도는 지형이 무척이나 험해서 장자도와 교량으로 연결된 초입에만 펜션 몇 채가 있을 뿐 나머지 부분은 울창한 해송 숲인데 양지바른 남쪽 사면 한쪽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펜션들의 모습이 꽤나 이국적이다.

4. 선유도와 망주봉 사이에 길게 형성된 모래톱에서 잠시 페달링을 멈추고 쉬고 있는 자전거식객들.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고, 해변의 고운 모래는 눈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다.
5. 사전에 점검과 정비를 하지만 자전거여행길에서 크고 작은 고장은 피할 수 없다. 허영만 화백이 펑크를 떼운 뒤 펌프로 공기를 주입하고 있다.
선유도의 상징과도 같은 망주봉을 뒤로한 채 섬길을 달리고 있는 허영만 화백, 김경민, 정상욱, 송철웅. (왼쪽부터)



…34km 거꾸로 질주 보람있었네~


장자도 북쪽해안 밥상 기다리며 바라 본 바다엔
동네 청년들 수신호 따라 숭어잡이 그물질
기다리던 실치부침개에 시원한 바지락탕 대령이오

그 볕에, 그 바람, 그 풍경…이것이 완벽한 밥상
캬! 이맛이라면 320km는 못 돌아갈까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헌팅하는데 워낙 작은 섬이어서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선착장을 콩나물시루로 만들었던 인파는 다 어디로 갔는지 텅 빈 섬에 우리들만 덩그렇게 남아있는 듯하다.


● 짭조름한 실치부침개와 바지락탕, 가슴 뭉클한 행복감

장자도 북쪽 해안을 훑어가다 화이트식당이라는, 이 고즈넉한 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간판이 붙은 한 집 앞에서 멈춰 섰다.

안에서 부침개를 부치는지 고소한 기름 냄새가 나는데 그 냄새에 섞인 범상치 않은 ‘그 무엇’이 포착됐기 때문이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자 후덕한 인상의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번철에 부침개를 부치느라 뒤집개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범상치 않은 냄새의 주인공은 뜻밖에도 실치였다.

실치는 몸통이 실처럼 가는 초소형 물고기로 충남 당진 쪽에서 주로 잡혀 봄이면 장고항 등지에서 실치 축제가 열리기도 하는데 잡히는 양이 적고 시즌이 짧아 미식가들이 벼르고 별러 먹는다는 그 실치를 이 곳 고군산군도에서 만날 줄이야. 깔끔한 부엌과 정갈한 식기들, 게다가 밀가루에 실치를 듬뿍 넣고 버무려 납작하게 눌러 바삭하게 익힌 실치부침개를 보자 더 이상 식당을 물색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볕이 좋고 바람이 상쾌해 식당 밖에 마련된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다가 보이는 평상에 앉아 밥을 기다리는 것은 즐겁고 설레는 일이다. 빨리 준비해 빨리 먹고 빨리 일어나야하는 도시의 끼니에 비해 섬의 밥상은 준비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이른바 슬로우 푸드(slow food).

일반 관광객들이 섬의 깊숙한 안쪽인 이곳까지 오는 일이 그다지 없어 갑자기 들이닥친 우리를 위해 솥에 밥을 새로 안쳤으니 뜸들 때까지 기다려야하는 것이다.

밥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바다에서는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숭어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해변 가까이 몰려들었고 동네 청년들이 숭어를 잡기 위해 어선 두 척을 띄우고 그물질을 시작한 것이다.

바닷물이 맑아 한 사람이 높은 곳에 올라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숭어 떼를 내려다보며 위치를 알려주면 어선에 탄 패거리들이 코그물을 쌍끌이로 끌어 포위하려하나 번번이 허탕이다. 청년들의 왁자지껄 유쾌한 숭어사냥은 10여분 만에 숭어 떼가 깊은 곳으로 사라지면서 막을 내렸다.

숭어 떼와 함께 청년들이 탄 어선들도 사라져 바다가 다시금 조용해졌을 때 마침내 기다리던 밥상이 차려졌다. 윤기가 잘잘 흐르는 뜨거운 쌀밥, 오늘 아침에 담근 듯 아직 서슬 퍼렇게 숨이 죽지 않은 파김치, 코를 톡 쏘는 갓김치, 그리고 젓갈 한 종지….

따스한 봄날 바닷가 평상 위에서 받은 밥상은 잡아 올린 생선처럼 생기가 넘쳤다. 특히 우리들을 이 식당으로 끌어들인 실치부침개는 상상하던 바로 그 맛.

3월 실치는 너무 연해 씹는 맛이 덜하고 4월부터 비로소 제 맛이 난다더니 짭조름하게 바닷물간이 배어있는 실치는 뭉클한 행복감을 전해줬다.

잠시 후 나온 바지락탕 한 냄비로 선유도의 점심식사는 더 이상 바랄게 없는 완벽한 밥상이 됐다. 하기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선 여행길, 그 볕, 그 바람, 그 풍경 속에서 뭘 먹은들 맛이 없을까?

무녀도까지 들렀다 다시 선유도 선착장으로 나오니 거리계에 찍힌 주행거리는 24km. 24km는 선유도, 장자도, 대장도, 무녀도 등 다리로 이어진 4개 섬을 자전거로 구석구석까지 연결한 총 거리로 걸어서 하루에 다 소화하기엔 무리다. 때문에 관광객들은 전동카트를 빌려 타고다니기도 하지만 자전거처럼 험한 고갯길, 산길을 가지는 못한다. 결국 선유도 섬투어를 하기엔 자전거가 가장 이상적인 교통수단이었던 셈. 꿈같은 라이딩을 마치고 다시 군산항으로 돌아가는 길, 석양을 배경으로 아련하게 멀어져가는 선유도는 아쉬움과 그리움의 섬이었다.

사진|이진원 포토그래퍼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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