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오재원… 大주자된 代주자

입력 2011-10-06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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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도루왕 예약벤치서 도 닦으며 走生走死… “거친 몸짓은 나의 생존 방식”

대주자로 시작한 선수가 입단 5년 만에 새로운 대도(大盜) 시대를 열었다. 프로 첫 도루왕이 확실시되는 두산 오재원이 3일 잠실야구장에서 베이스를 짚고 포즈를 취했다. 강렬한 눈매와 표정이 눈물 젖은 빵을 씹었던 지난날을 보여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이 남자의 야구 인생, 생각보다 퍽퍽했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수려하지만 거친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이미지는 그의 진짜 속내와는 많이 달랐다. 그에게 야구는 냉엄한 현실 그 자체였다. 생애 첫 도루왕 등극을 앞둔 두산 오재원(26)을 만나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만난 오재원은 담담했다. 생애 첫 개인 타이틀 수상을 눈앞에 둔 설렘은 조금도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재원은 “첫 도루왕 타이틀이 영광스럽긴 하지만 마음이 무겁다. 도루를 의식하다 시즌 중반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기도 했다. 매년 열리는 가을야구를 못한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며 아쉬워했다.

○ 개펄에 처박힌 진주

오재원의 지난 야구 인생은 그의 담담한 소감만큼이나 건조했다. 세상에 드러나 빛을 보지 못한 퍽퍽한 개펄 속 진주 같았다. 그는 학창시절 눈에 확 띄는 선수가 아니었다. 고교 졸업 후 두산의 지명을 받았지만 경희대 진학을 선택했다. 오재원은 “지금만큼 잘할 자신이 없었다. 프로에 갔다가 도태되는 게 두려웠다”고 당시 심경을 말했다.

대학 졸업 후 2007년 두산 유니폼을 입었지만 주로 대주자로 기용됐다. 부상 공백이 생긴 내야수 자리에 투입되는 수비형 멀티플레이어로 자리를 잡았지만 여전히 존재감은 미약했다. 오재원은 “3년 동안 벤치에 앉아 있으면서 도를 많이 닦았다. 주전 공백이 생겨 수비에 들어갈 때마다 사활을 걸고 이 자리를 지켜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오재원은 내야의 전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만능 수비수로 성장하며 지난해 주전으로 발돋움했다.

○ 진주 드디어 빛을 보다

2011년은 오재원이라는 진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해다. 5일 현재 지난해까지 5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LG 이대형(34개)을 12개나 앞서 새 대도(大盜) 시대를 활짝 열었다. 2006년 이종욱 이후 5년 만에 두산의 대도 명맥을 잇게 됐다.

1번부터 3번까지 상위 타선에서 붙박이로 활약할 정도로 타격도 좋아졌다. 지난해까지 1개도 없던 홈런을 6개나 때리며 소총수 이미지도 극복했다. 오재원은 “올해까지 적당한 성적을 못 내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보디빌더처럼 웨이트트레이닝에 매달린 게 적중했다”고 말했다.

오재원의 도루왕 등극에는 김광수 감독대행의 숨은 비법 전수가 있었다. 1루 출루 시 손을 모아 상대 투수에게 혼란을 주는 동작이다. 오재원의 도루 성공률(86.8%)이 이대형(66.7%) 등 경쟁자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 중 하나다.

○ 야구는 현실이다

오재원에겐 거친 남자 이미지가 있다. 몸을 날리는 플레이, 판정에 대한 격렬한 항의, 상대를 자극하는 쇼맨십, 수염 등 튀는 행동과 패션 때문이다. 2일 서울 라이벌 LG와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빈볼에 항의하며 마운드로 다가가 벤치 클리어링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그는 “거친 이미지가 없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김경문 전 감독이 그런 역할을 주문했다”며 “야구는 내게 지독한 현실이었다. 모든 이미지와 행동 하나하나는 생존을 위한 방법이었다”라고 고백했다.

오재원은 “도루왕 2연패가 내년 목표는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그는 “하루하루가 급하다. 한 달 또는 1년 목표를 생각하고 야구를 할 만큼 여유가 없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목표로 할 뿐이다”며 “올해보다 도루, 안타를 하나씩 더 기록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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