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경기를 준비하는 감독의 마음은 어떨까. 자진 사퇴를 선언한 LG 박종훈 감독이 LG 사령탑으로서의 마지막 경기인 6일 잠실 삼성전에 앞서 모자를 고쳐 쓰고 있다. 잠실|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트위터@k1isoncut
단장 찾아가 “노고 덜어드리겠다” 사의
선수단 만난 후 기자회견 “좀 쉬고싶다”
“요즘 힘드시죠?”
LG 박종훈(52) 감독은 6일 오후 2시쯤 잠실구장 내 구단사무실로 찾아와 LG 백순길(54) 단장에게 대뜸 이렇게 말했다. 박 감독 특유의 온화한 미소를 지었지만 까칠해진 얼굴에는 고민의 흔적이 묻어났다. 그러면서 박 감독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 힘 덜어드리겠습니다.” 지난주부터 백 단장에게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했던 박 감독은 이날 공식적으로 사퇴의사를 밝힌 것이었다.
LG 프런트는 분주해졌다. 곧바로 홍보팀 직원들은 LG 담당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박종훈 감독이 오후 3시에 기자회견을 한다. 그때까지 잠실구장 기자실 뒤 대회의실로 와 달라”는 부탁을 했다. 감독들은 경기 전 덕아웃에서 기자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일상화돼 있지만, 경기 전 기자회견은 이례적인 일. 내용을 말하지 않아도 누구나 무슨 뜻인지 눈치챌 수 있는 일이었다.
박 감독은 오후 2시 40분쯤 선수단 미팅을 소집해 자신의 사퇴의사를 알렸다. “그동안 고마웠다”는 말을 전하는 순간, 선수들은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는 오후 3시10분에 기자회견을 열어 5분가량 짧은 인터뷰를 이어갔다.
박 감독은 “올시즌 팬들과 구단의 기대에 미치지‘못해서 오늘 사퇴하려고 한다. 좋은 팀이고, 도움도 많이 받고, 사랑도 많이 받았는데 성적이 안 난 것은 나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자진사퇴를 언론에 공식적으로 알렸다. 그러면서 “성적이 떨어지면서 사퇴하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확히 그 시점이 언제였느냐’는 질문에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성적이 떨어지는 시점이었다”며 애써 미소를 지었다. 이어 “지난 2년간 감독이 됐다는 사실에 행복했고, 올시즌 초반 좋은 흐름을 이어가지 못해 아쉽다”며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지난 2년의 세월을 더듬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야구를 사랑하고 계속 야구인으로 살아가야하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한다. 당장은 좀 쉬고 싶다”는 말로 사퇴의 변을 마무리했다.
박 감독은 담당기자들에게 “그동안 고마웠다”며 눈인사를 한 뒤 총총히 감독실로 걸어갔다. 시즌 최종전인 이날 삼성전까지 지휘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는 마지막 라인업을 쓴 뒤 경기 시작 직전 덕아웃에 앉았다.
일부 코치들은 구단으로 찾아와 “우리도 책임을 지고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전했으나 구단의 만류로 일단 박 감독과 함께 시즌 마지막 경기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LG 선수들은 따로 미팅을 하면서 “감독님의 마지막 경기이고, 시즌 최종전이니 최선을 다해 이기도록 하자”고 다짐했다. 최소한 박 감독이 마지막까지 패배를 안고 초라한 모습으로 떠나도록 하지는 말자는 결의였다. 그러나 의욕과는 달리 경기 중반 대량실점을 하면서 힘든 경기를 펼쳤다.
잠실|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 @keystone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