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만든 ‘상징’의 숲 속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입력 2011-11-01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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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칸영화제 최우수작품상 ‘트리 오브 라이프’ 테런스 맬릭 감독
From. 민병선 기자
데뷔작 ‘황무지’(1973년)를 연출할 당시의 테런스 맬릭 감독. 그는 이 영화와 관련해 인터뷰를 한 뒤 40년 가까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생활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그에게는 ‘은둔의 영상 철학자’라는 별명이 따른다. 진진 제공 (사진 왼쪽) ‘트리 오브 라이프’의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는 생명과 사랑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진진 제공 (사진 오른쪽)

데뷔작 ‘황무지’(1973년)를 연출할 당시의 테런스 맬릭 감독. 그는 이 영화와 관련해 인터뷰를 한 뒤 40년 가까이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사생활도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는 그에게는 ‘은둔의 영상 철학자’라는 별명이 따른다. 진진 제공 (사진 왼쪽) ‘트리 오브 라이프’의 어머니(제시카 차스테인)는 생명과 사랑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진진 제공 (사진 오른쪽)

지난달 27일 한국에서 개봉한 감독의 영화 ‘트리 오브 라이프’의 리뷰를 쓰기 위해 기자는 영화를 두 번 봐야 했습니다. 내러티브는 부족하고 수많은 상징적인 장면으로 채워진 이 영화를 이해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을 때 브래드 피트(아버지 오브라이언 역)는 영화 촬영 과정을 떠올리며 “맬릭은 잠자리채를 들고 서서 진실의 순간이 지나가길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제시카 차스테인(어머니 역)도 “촬영은 순간 일어나는 우연을 포착하는 작업이었다”라고 회상했습니다. 당신은 대본 그대로 연기하는 배우들이 아니라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즉흥적인 상황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런 기법 때문인지 당신의 작품은 모호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오브라이언의 아들인 중년의 건축가 잭(숀 펜)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잭은 어린 시절 세상을 떠난 동생을 떠올리며 생각에 잠깁니다. 잭의 집안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지만 잭과 오브라이언의 갈등으로 서서히 곪아갑니다. 잭은 “착해 빠져서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다”며 권위적인 교육을 강요하는 아버지에게 반항심을 갖습니다.

당신은 미국 하버드대와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철학을 강의했습니다. 1973년 영화 ‘황무지’로 데뷔한 이래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씬레드라인’과 ‘뉴월드’를 포함해 겨우 5편을 연출했지요. 유려한 화면과 깊은 사유를 담아내 ‘영상 철학자’라고 불리며 이번 영화에도 그 특징이 고스란히 배어 있습니다.

영화에는 관념론적 요소와 유물론적 요소가 혼재합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조론과 진화론의 관점이라고 해야겠지요. 초반과 후반부는 종교적인 장면으로 가득합니다. 첫 장면에서는 구약성서 중 하나인 욥기의 구절을 인용합니다. “삶에는 두 가지 길이 있으니 자비와 은총의 삶과 세속적인 삶이 있다.” 아버지 오브라이언과 어머니는 늘 가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영화 내내 가스펠풍의 음악이 깔립니다.

마냥 종교적으로 흐를 것 같던 이야기는 잭이 동생의 죽음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갑자기 시선을 우주로 돌립니다. 한동안 우주의 빅뱅과 지구의 생성 과정을 보여줍니다. 초신성이 폭발해 마그네슘, 철 등 중원소가 쏟아져 지구가 생겨나고 생명이 탄생합니다. 갑작스러운 장면 전환에 관객은 자연사 박물관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당신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양극단을 극복하고 통섭을 주장하는 것 같습니다. 우주의 작은 존재이며 생물학적 한계를 가진 인간은 사랑을 통해 위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생존을 위해 세상에 냉혹한 아버지는 존재론적 한계를, 어려운 여건에도 자식들에게 마냥 자애로운 어머니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려는 인간의 의지를 상징합니다. 또 어머니에게는 거친 세상에서 종교적 구원을 구하는 인간의 모습이 투영돼 있습니다. ‘생명의 나무’라는 영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신은 숱한 역경 속에서도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는 인간 생명과 사랑의 위대함을 예찬합니다.

영화에 대해 미국 언론은 찬사 일색입니다. 뉴욕타임스는 ‘정곡을 찌르는 진실함과 압도적인 세련미가 공존하는 걸작’이라고 했고, USA투데이는 ‘이 영화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아무도 이견을 달 수 없을 것’이라고 극찬했습니다.

이런 찬사에도 관객들은 당신의 영화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무지’ 이후 40년 가까이 인터뷰를 거부해온 당신이 영화에 대해 설명해 주기를 바랍니다. 관객과의 교감은 영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입니다. 기자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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