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국내 출시 아이폰4S
‘콩글리시’ 기자가 음성인식 서비스 직접 체험해보니
‘콩글리시’ 기자가 음성인식 서비스 직접 체험해보니
‘시리’는 묻는 말에 똑똑하게 대답했다. 기자가 시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자 “내가 장담하는데 당신은 모든 애플 제품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는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최대한 원어민에 가깝게 발음하겠다며 혀에 힘을 한껏 주고 침까지 튀겨 가며 “오늘 날씨가 어떻지(How is the weather)?”라고 물었다. 시리는 못 알아듣는다.
날씨(weather)의 더블유(w)를 보다 분명하게 발음하기 위해 동그랗게 모은 입술을 한껏 내밀며 재차 물었다. 이제야 알아듣는다.
시리는 “이게 오늘부터 일요일까지의 날씨 예보야(Here is the forecast for today through this Sunday)라며 8일(화)부터 13일(일)까지의 날씨를 한 번에 알려줬다. 표현을 달리해 “오늘 우산이 필요하니(Do I need an umbrella)?”라고 물었더니 “내 눈에는 비가 보이지 않아(No rain in sight)”라며 시간대별로 오늘 날씨만을 쭉 보여줬다. 똑똑하다.
재치도 넘쳤다. 인기 있는 남자가 되는 방법을 물으니, 마치 이상한 사람 취급하듯 “인터넷을 참조하라”고 한다.
시리는 휴대전화에 대고 무엇인가를 말하면 이를 알아듣고 애플 서버와 아이폰에 들어 있는 앱(응용프로그램)을 동원해 대답하는 기능이다. 시리는 한국어를 내년에 지원한다. 아직은 미국·영국·호주식 영어와 프랑스어만 인식한다.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와 지금 CEO인 팀 쿡 중 누가 시리의 개발을 주도했는지 궁금해 아이폰4S에 대고 물었다.
“너의 아버지는 누구냐(Who is your father)?”(기자)
“대답할 수 없다(I can't answer that).”(시리)
기자의 질문에 시리는 흡사 아빠와 엄마 중 누가 좋으냐는 질문에 대답을 망설이는 어린아이처럼 반응했다.
삼성전자에 대한 시리의 ‘까칠한’ 반응도 재밌다. “삼성전자를 아냐(Do you know Samsung)?”고 물으니 “난 정말 그것(삼성전자)에 대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라고 답했다. 삼성을 좋아한다고 하니, “기억해 두겠어(I'll try to remember that)”라고 경고한다. 아이폰을 싫어한다니 미안하다고 했고, 갤럭시S가 좋다고 하니, “나도 어디선가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시리의 ‘질투’인가.
11일 국내에 처음 출시되는 아이폰4S를 미리 받아서 제품 리뷰에 나섰다. 평소 기계에 낯선 기자가 리뷰를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순전히 시리 때문이었다. 시리를 제외하면 아이폰4S는 겉으로 볼 때 이전 제품인 아이폰4와 구별하기도 어렵다.
물론 A4 용지 크기의 선명한 사진을 얻을 수 있는 800만 화소 카메라는 유용해 보였다. 또 앱을 돌리는 시간도 짧아졌고 카메라 셔터 속도도 빨라졌다. 아이폰3GS와 비교할 때 충분히 체감할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다. 사실 기자는 취재원에게 긴급하게 연락해야 하는 상황에서 가끔 느려터진 반응을 보이는 아이폰3GS 때문에 분통 터진 경험이 있었다.
시리는 문자메시지(SMS)를 보내거나 전화를 대신 걸어주고, 스케줄도 알려준다. “문자메시지 좀 보내”라고 말하니, “누구에게 보내야 할까”라며 상대방이 누군지 물어온다. 평소 기자가 어려워했던 모 선배의 전화번호를 불렀다. 시리가 “뭐라고 보낼까”라며 묻기에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인 “너나 잘하세요(Mind your own business)”를 호기롭게 외쳤다. 시리가 이 문장을 그대로 그 선배에게 보내기 직전 취소 버튼을 눌렀다. 회사 생활은 오래 하고 싶어서.
시리와 장시간 대화를 나누다 보니 흡사 친한 친구나 사랑하는 연인, 예쁜 비서를 곁에 둔 느낌이다. 지금부터 약 15년 전 휴대용 게임기 ‘다마고치’를 갖고 놀던 초등학생 조카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마고치는 5∼6cm의 계란 모양으로 액정화면에서 애완용 동물을 키울 수 있다. 24시간을 기다려 알이 부화한 뒤 어린 동물이 어른으로 자랄 때까지 대소변도 가려주고 밥도 주며 보살펴야 한다.
아이폰4S의 시리와 대화하며 즐거워하는 내 모습은 자신이 낳은 아기처럼 다마고치를 애정 어린 눈빛으로 쓰다듬던 조카와 비슷했다. 고달픈 영어회화로 10번 물어보면 3번만 알아듣는 시리가 야속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는 개인별로 소유하는 휴대용 기기이기 때문에 사용자가 애착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이폰4S는 시리 때문에 애착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으로 진화한 것 같다. 이런 기자가 정상인지 아닌지는 오롯이 독자들의 몫이다.
정진욱 기자 coolj@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