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 Cafe]신사동호랭이 “히트곡 하나에 10억…큰 부자됐죠, 하하”

입력 2012-03-03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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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블 메이커’는 일주일간 현아, 현승과 함께 살다시피 해 나온 노래죠.” 작곡가 신사동호랭이는 히트곡의 비결을 ‘가수를 꼼꼼히 파악하는 것’으로 꼽았다.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 ‘아이돌 음악의 대부’ 신사동호랭이, 그에 관한 오해와 진실

1. 히트곡 제조기, 영감이 샘솟는다?
가수와 거의 살다시피한 노력의 결과

2. 후배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 얹기?
설마, 공동작곡가 자존심이 있지

3. 아이돌 편애 ‘반쪽 프로듀서’?
이효리·이적·유희열도 좋아하는데…

4. 1년 저작권료가 100억 넘는다?
음반·행사·CF 등 부가가치 포함

5. 어릴 때부터 작곡가가 꿈?
가수 꿈꾸며 상경 웨이터 등 닥치고 일


작곡가 신사동호랭이(이호양·29)는 아침 8시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음악작업 특성상 새벽 4∼5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기상 시간은 어김이 없다. 여행을 가서도 아침 6∼7시면 일어나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어려서부터 그렇게 습관이 들었다. 대개 몸이 피곤하면 집중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몸이 피곤하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일을 많이 한다는 의미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며 피곤함을 즐긴다.

늦게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는 만큼 신사동호랭이의 하루는 길다. 낮에는 자신이 대표인 AB엔터테인먼트의 업무를 보고, 밤에는 프로듀서로 음악 작업을 한다. 그가 음반제작자에서 프로듀서로 바뀌는 시간에 맞춰 서울 청담동에 있는 AB엔터테인먼트 사옥을 찾아갔다.

신사동호랭이는 작년 음원 수익 1위 곡인 티아라의 ‘롤리폴리’를 비롯해 ‘러비더비’ 트러블메이커의 ‘트러블메이커’, ‘핫이슈’ ‘거울아 거울아’ ‘숨’ ‘쇼크’ 등 비스트와 포미닛의 히트곡 대부분을 만들었다. 2일 현재 신사동호랭이로 한국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곡은 136곡. 그는 편곡한 곡까지 합치면 300곡은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신사동호랭이는 용감한형제와 더불어 ‘아이돌 음악의 대부’로 불린다. 작년 6월에는 AB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2월 데뷔한 여성 6인조 그룹 이엑스아이디(EXID)는 그가 제작한 첫 신인이다.


● “작곡가도 한 철…후배들 치고 올라오는 것 보며 늘 나를 채찍질”


- 그 많은 곡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빨리 만들어내는지 신기하다.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발표한 노래들이 대부분 히트하고, 유명 가수들과 작업하다보니 많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오히려 한 곡 만드는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 제작한 노래마다 히트하는 비결은 뭘까.

“의뢰가 오면 먼저 가수를 꼼꼼히 파악한다. 그들이 가진 것을 끄집어내다 보니 히트곡이 많이 나온다. 실제로 가수를 깊게 알지 못한채 만든 노래는 히트 안 된 게 많다. 현아와 현승의 ‘트러블메이커’도 일주일간 두 사람과 거의 함께 살다시피 했다.”


- 공동작곡이 많아 ‘후배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만 올린다’는 말도 있다.

“오해다. 곡을 만드는 데 누가 많이 기여했다는 것은 없다. 서로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완성한다. 단순히 조언 정도로 공동작곡이라고 이름을 올리진 않는다. 편곡은 거의 내가 한다.”


- 작곡가도 트렌드에 뒤떨어지면 수명이 다하는가.

“맞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것을 걱정한다. 그 채찍질이 나를 쉬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 나태해진다 싶으면 ‘니가 언제까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니’라고 자문하며 힘을 내고, 잠을 줄이고 작업한다.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면 나태해질 수가 없다. 나를 넘어서려 하는데, 겉으로야 ‘오냐 오냐’ 하지만, 속으로는 질 수 없다는 경쟁심이 솟는다. 또 선배들을 보면서 타산지석, 반면교사로 삼는다.”


- 아이돌 음악만 하면 사실 ‘반쪽 프로듀서’ 아닌가.

“예전에는 김종국, 김건모, 왁스 앨범에 참여했었다. 앞으로는 이효리 같은 여자 솔로가수도 해보고 싶고, 김동률 이적이나 유희열 루시드폴 같은 가수들과 작업해보고 싶다.”


- 혹 표절에 대한 유혹은 없나.

“없다. ‘이렇게 베껴야 되나’ 하는 건 없다.”


- 무의식적으로 표절하게 되는 경우는.

“맞다. 해놓고 보면 스스로 다른 것과 비슷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그럴 땐 퍼블리싱 업체를 찾아가 이야기 하고 그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수많은 음악을 듣다보면 무의식속에 멜로디가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면 의도치 않게 표절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 프로듀서 지망생들에게 조언 해준다면

“요즘 컴퓨터로 쉽게 작곡하다보니 작곡가 지망생이 매우 많다. 나는 YG처럼 미국식 음악에 소질이 없어 유럽식 일렉트로니카에 집중했다. 차별화가 중요한 것 같다. 누군가를 따라하지 말고, ‘도대체 이거 어떻게 만들었니’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자기 색을 만들어야 한다. 용감한형제 음악은 딱 들으면 한번에 알듯이 말이다.”

● “노래 한 곡으로 1년 수입 최다 10억…6년 사귄 여친 있어”


- 그동안 돈 많이 벌었겠다.

“꽤 벌었다. 내 또래에 벌기 힘든 액수다. 그런데 저작권 수입이란게 어느 달은 몇 천만 원이지만 어느 달은 몇 백만 원 일 정도로 들쑥날쑥하다.”


- ‘용감한형제’는 KBS 2TV ‘승승장구’에서 100억이 넘는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저작권료만 치면 1년에 아무리 많아도 10억 수준이다. 100억은 저작권이 아니라, 노래 한 곡이 잘 되면 음반, 행사, CF 등으로 100억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많은 돈은 어디에 쓰나.

“대부분 자산관리사에 맡긴다. 부모님께도 드리고 작곡가 후배들도 챙겨준다. 그런데 생각만큼 많이 모으진 못했다. 한달에 고정적으로 쓰는 비용도 있고, 후배들 악기 사주고 밥 사주다보면 사실 용돈은 얼마 없다.”


- 여자친구는 있나.

“6년 사귄 친구가 있다. 취업준비생이다. 내가 어려울 때부터 계속 곁에서 지켜준 친구다. 나의 상황을 이해하고 잘 받아준다. 원래 이상형은 ‘시크릿가든’의 길라임(하지원)처럼 터프하고 보이시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심지어 여성 경호원에 대한 로망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 여자친구는 한없이 여성스럽다.”


- 작곡가를 안했다면 뭘 했을까.

“말을 잘하기 때문에 주위에서는 사기꾼이 됐을 거라 한다. 작곡가가 아니더라도 엔터테인먼트계에 있었을 것 같다. 매니저를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어릴 때 7개월쯤 트로트 가수의 로드 매니저를 했다.”

신사동호랭이는 원래 가수지망생이었다. 고2 때 무작정 상경해 기획사 문을 두드리다 한 소형 기획사에 들어갔다. 거기서 음악편집, 리믹스 작업을 돕다 작곡에 관심을 갖게 됐다. 당시 소속사 무명가수의 로드매니저를 했고, 입담이 좋아 지방축제 진행도 맡았다.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많이 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디스코 대회 등의 이벤트 진행을 했고, 가라오케 DJ도 했다. 유흥업소 웨이터, 대부업체 직원도 했고, 화방에서 그림 떼어다 팔고, 복제음반도 팔았다. 가수들 콘서트 시작 전 바람잡이로 무대에 올랐고, 가수 김종국 등의 팬미팅도 진행하고, 일반 회사 워크숍에서 노래하고 사회도 봤다.

“몸은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닥치는 대로 일하면서 사람 대하는 법과 비즈니스를 배웠다. 20대 초반에 여러 일을 해봤기에 작곡가가 된 후 딴 생각 안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작업실에 앉아 작업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한 일이구나.’ 그래서 밤을 새면서 할 수 있는 것이다.”


- 요즘 해외무대에서 케이팝이 주목받는데, 우수한 점은 뭔가.

“치열한 경쟁을 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청소년들 모두 가수로 나온다’고 할 정도로 가수가 계속 나온다. 그만큼 자원이 풍부하다. 사실 케이팝이 우수한 게 아니라 우수해 보이는 컨텐츠가 계속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일부 질 낮은 컨텐츠가 나오더라도 대형기획사에서 질 좋은 콘텐츠가 계속 나오니 전체적으로 좋게 보이는 것 같다.”

■ 신사동호랭이는 누구?

신사동호랭이란 이름은 그가 2000년대 초반 전남 광양에서 상경해 가수를 꿈꾸던 당시 인터넷 게임을 즐기며 사용했던 게임 아이디였다. 게임 아이디를 만들 당시는 자신이 사는 동네에 별명을 붙이는 게 유행이었다.

신사동호랭이도 자신이 살던 동네(신사동)와 본명인 ‘호양’에서 딴 별명(호랭이)을 붙여 지었다. 언젠가 작곡가가 되면 이 아이디를 예명으로 쓰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당시 신사동호랭이는 ‘양재동빡빡이’란 아이디의 가수 김건모와 게임을 즐겼다. 최준영 박근태 김도훈 등이 그의 스승이다. 2005년 자두의 ‘남과 여’란 노래를 만든 뒤 처음 ‘신사동호랭이’로 한국저작권협회에 등록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zioda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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