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아버지 수술비 보태려 경기조작 자원”

입력 2012-03-12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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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망받는 LG의 젊은 에이스가 과연 왜 그랬을까. 박현준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김성현이 아버지의 수술비와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경기조작을 시작한 뒤 브로커의 협박에 시달린다는 말을 듣고, 김성현을 돕기 위해 경기조작에 가담했다”고 주장했다. 스포츠동아DB

‘경기조작’ 박현준, 입 열다…“내가 경기조작에 가담한 이유”

전 LG투수 박현준(26)은 기자와의 만남을 계속 거부했다. 수소문 끝에 11일 전북 전주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수척해진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시내의 한 카페에서 박현준으로부터 지난 1년 간 벌어졌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진 촬영은 극구 사양했다. 박현준은 프로야구 경기조작에 연루돼 지난 6일 LG에서 퇴출된 상태다.


“사례금 500만원 약값에 쓰라고 줬다”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 같다. 그동안 근황은.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냥 멍하게 지내고 있다. 아는 형이 하는 배달 일을 이틀 정도 돕기도 했다. 마스크를 한 지는 3일 됐는데 어제 문득 거울을 보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왜 경기 조작에 손을 댔나.

“(같은 혐의로 구속 중인 팀 동료) 김성현(23)이랑 2010년 대륙간컵에 함께 참가하면서 친해졌다. 지난해 5월 같이 밥을 먹던 성현(당시 넥센 소속)이가 경기 조작 브로커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현이가 경기 조작에 실패하면서 손해 본 돈을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넥센) 구단에 알리겠다는 협박에 성현이가 무척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박현준 선수도 경기 조작에 뛰어들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 성현이 아버지가 몸이 아파 수술을 했다. 성현이는 ‘수술비와 약값이 없어 경기 조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협박 얘기를 듣고는 너무 화가 나 브로커를 직접 만났다. 그랬더니 브로커가 ‘성현이가 돈을 다 갚아야 된다’고 했다. 내가 같이 하면 성현이가 하루라도 빨리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하겠다’고 했다. 멍청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지난해 8월에 두 차례 경기 조작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아니다. 5월 24일 잠실 두산 전에서 처음 했다. 조건은 상대팀보다 먼저 볼넷을 내주는 거였다. 1회 초 처음 두 타자를 잡고 3번 타자 김현수에게 볼넷을 내줬다. 브로커가 그 대가로 성현이한테 500만 원을 주기로 했는데 전화를 해 보니 안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브로커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사흘 후 내 계좌로 500만 원을 보냈다.”


-계좌로 받으면 문제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나. 그리고 500만 원은 어떻게 했나.

“6월 초에 약값에 쓰라며 성현이한테 500만 원을 줬다. 성현이는 안 받겠다고 했지만 억지로 건넸다. 계좌로 받으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은 못 했다.”


-그 후에도 경기 조작을 했나.

“6월 9일 잠실 한화 전에서 한 차례 더 했다. 브로커에게서 먼저 연락이 와 ‘이번에는 성현이의 빚을 줄여주겠다’고 했다. 1회 초 선두타자 강동우에게 볼넷을 내줬다. 이후로는 경기 조작 의뢰가 오지 않았다. 성현이도 (7월 31일) LG로 트레이드된 뒤에는 경기 조작을 안 한 것으로 안다.”


-경기 조작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은 안 했나.

“잘못했다. 생각이 짧았다. 성현이로부터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돈을 빌려서라도 브로커에게 갚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


“야구 못할까 두려워 계속 거짓말 했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뒤에도 계속 거짓말을 했다.

“지난달 중순 ‘야구에도 경기 조작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를 봤다. 바로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나도 곧 잡혀 가는 건 아닐까’ ‘아니야. 나는 안 걸릴거야’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주위에서 ‘니가 (경기 조작을) 안 했으면 웃으면서 다니라’고 해 억지로 웃은 적도 있다.”


-지난달 29일 입국하면서 기자들 앞에서 왜 미소를 지었나.

“공항에 기자가 많이 몰려 깜짝 놀랐다. 그걸 보고 웃은 게 아니다. 마중 나온 구단 직원이 반가워 미소를 띤 것뿐이다. 아주 잠깐이었고 대부분 굳은 표정이었는데 이튿날 신문엔 내가 웃고 있는 사진만 나와서 당혹스러웠다.”


-2일 조사를 받으러 대구지검에 들어갈 때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내가 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용기가 없었다. 한 번 거짓말을 한 뒤 이를 돌이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야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검찰 조사에서 오전까지 협의를 부인하다가 오후에 갑자기 시인을 했다던데.

“오전까지 계속 아니라고 했다. 증거물로 (500만 원이 찍힌) 계좌를 보여줬을 때도 빌린 돈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검사님이 ‘팬들과 부모님께 정말 한점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했다. 30분 정도 혼자 있으면서 더 이상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자백하기로 마음먹고 내 인생에서 야구를 내려놓기로 했다. 정말 슬펐다.”


-한 순간의 실수 때문에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상황인데….

“내가 한 행동은 스포츠 선수로서 절대 해선 안될 짓이었다. 어떤 변명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 처분이든 달게 받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팬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야구팬과 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다.”


“집에 못 들어가고 친구집에서 지낸다”


-부모님도 마음 아프실 것 같다.

“부모님의 얼굴을 차마 못 보겠더라. 부모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를 생각하면 내 가슴도 찢어질 것 같다. 그래서 요즘 집에 안 들어가고 친구 집에서 지낸다. 아버지는 당신이 운영하는 호프집 내부 장식을 온통 못난 아들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는데…. 사건이 난 뒤엔 가게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전주|이헌재 동아일보 기자 un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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